신생아란 얼마나 뭉클하고 아름다운 존재인지
지인의 귀한 딸이 오늘 태어났다. 갓 태어난 아기 사진을 보니 그저 고맙고 신기하다. 사랑하는 남녀가 만나 둘이 셋이 되고 넷이 되는 것은 생명과학을 알고 있어도 신비롭기만 하다. 신생아 사진을 보면 이유 없이 울컥하며 찬탄이 나온다. 출산 경험이 없을 때도 아기를 참 예뻐했지만 엄마가 되어보니 신생아 사진은 여러 기억을 소환하기 때문이다.
자기 자식에게 쿨 하고 싶고, 관대하고 싶다... 는 꿈과 희망은 늘 품고 있지만 사실 인생에서 이것이 제일 힘들다. 세상 쿨하다고 생각한 내 남편에게 뱃속 아기의 성별을 몰랐을 때, 내가 물었다.
"딸이면 이 험한 세상에서 어떻게 키워야 하지?"
"좀 크면 정조대를 채워야지.."
"(이 양반이 미쳤나..) 그게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리고 역사적으로 정조대는 항상 채우는 놈 따로, 푸는 놈 따로 있었다고!"
"그러니 아주 풀기 어려운 걸 개발해야지. 그 암호를 풀 정도로 똑똑한 놈은 사위를 삼아야지..."
이 말도 안 되는 대화 중에 비장한 남편의 눈빛을 보았다. 다행히 내가 아들만 둘을 낳아 괴랄한 정조대의 개발을 막을 수 있었다. (부부의 대화이니 언 피씨 함, 여성인권 존중 안 함 주의. 그 정도로 자식에게는 맹목적으로 눈이 먼다)
나는 아이를 자유롭게 풀어서 키울 거야..라는 인생 장담은 정말 바보 같은 소리라는 것이 아기를 한 달만 키워보면 알 수 있다. 세상의 모든 부모는 실수 투성이지만 본인이 해왔던 실수를 아이가 줄였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그 마음에서 발현되는 것이 '잔소리'고 이걸 안 할 수는 없지만 모두가 안다. 자기 인생에서 스스로 깨지고 다쳐서 얻는 것이 진리임을. 나는 내 새끼 의사 만들 거야, 나는 우리 애 명문대 보낼 거야.. 는 아무 소용이 없는 공허한 울림이다. 부모가 되어서 뼛속 깊이 깨달았다. 내 인생도 내 맘대로 안 되는데 내가 무슨 힘으로 자식의 인생을 맘대로 할 수 있는가. 그러나 여전히 나는 자식에게 관여하고 싶은 나와 이성적인 나 사이에서 갈등한다.
어린 아기는 너무나 약한 존재라 부모의 손길이 5분만 없어져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아기가 다쳐서 응급실로 업고 뛰던 날의 나의 마음, 밤새도록 설사를 해서 나중에는 축 늘어진 아기를 안고 울면서 씻기던 나의 마음, 찻길로 뛰어들까 항상 잡은 손을 놓지 못하고 관찰하던 아빠의 마음, 동네 놀이터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없어져 온 동네를 미친 여자처럼 뛰어다니며 울던 마음.. 이런 간절함이 아이를 자라게 한다. 방긋방긋 웃는 귀요미만 사랑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애절한 마음이 같이 쌓이면서 부모와 아이의 애착이 형성된다. 아이는 그냥 자라지 않는다. 부모의 걱정과 관심, 사랑과 애정 어린 손길로 자란다. 이런저런 일들을 함께 헤쳐나가며 진짜 가족이 된다. 낳은 정도 무섭지만 키운 정이 더 끈끈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이는 돌 이전까지 자주 아플 수밖에 없고, 조금씩 나아지지만 초등 저학년까지는 각종 전염병에 시달리고 병원을 마트 드나들 듯 다닐 수밖에 없다. 아이가 열이 나면 부모는 아이를 간호하며 두 시간마다 체온을 재고 약을 먹이고 그래도 열이 떨어지지 않으면 미지근한 물에 적신 수건으로 아이를 닦아내며 열을 내리게 한다. 아이가 장염에 걸리면 밤새 토하는 아이 곁에서 뜬눈으로 지키며 옷을 갈아 입히고 이불을 바꿔주고 아이를 안심시키고 아이가 잠에 들면 옷과 이불을 애벌빨래한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몸은 천근만근이지만 아침이 오면 아이를 맡기고 멀쩡하게 일을 나간다. 일을 하는 것, 돈을 버는 것이 부모가 되기 전에는 그냥 나를 증명하는 수단이었다면 아이가 생겨나면 나의 일, 직장이 밥벌이가 된다. 밥을 벌어야 비로소 내가 아이를 부양할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아이는 사랑스러움 그 자체이며 나의 온 우주이지만 아이는 내 몸과 정신을 온통 사로잡아 나를 일으키고 일하게 한다. 윤여정 배우의 수상 소감 중에 '사랑하는 두 아들에게도 고맙다고 말하고 싶네요. 저를 일하게 만든 아이들이요. 사랑하는 아들들아, 이게 엄마가 열심히 일한 결과란다.'를 듣고 목이 메었다. 부모는 자식이 내 등에 올라탄 것을 기꺼이 반기며 그 자식을 위해 자신의 일상을 온전히 함께 나누고 인생을 저당 잡혀준다. 세상 어느 존재에게 한 인간이 이렇게 할 수 있는가, 오직 자식일 뿐이다.
새로 부모가 된 지인을 보며 내가 15년 전에 만난 우리 아기를 생각한다. 산고 끝에 만난 아기를 안아보았을 때의 그 설렘, 떨림이 여전히 생생하다. 아기를 처음 안고 수유를 하던 그 느낌이 여전히 생생하다. 새로 부모가 된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앞으로 만날 수많은 불면의 밤, 아기를 향한 걱정과 두려움, 선물 같은 아기의 웃음과 재롱이 '가족'으로 만들어 줄 거라고. 일 하느라 아기에게 시간을 온전히 쏟지 못하더라도 같이 있는 시간을 온전히 아기에게 집중하고 쏟는다면 아기도 기꺼이 당신에게 통통한 두 팔을 벌려 크게 웃어줄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