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도는 인생, 너그럽게 살고 싶다.
"누나, 이영이가 같이 공연한 배우가 확진자여서 지금 검진하러 가. 누나 하는 일이 중요하니 빨리 알려줄게, 너무 미안해.'
남동생의 전화를 받고 머리에 있는 피가 전부 손끝으로 몰리는 기분이었다.
추석 연휴 끝에 시댁에 다녀온 후에 너무 지쳐 점심만 먹고 친정에서 나오려고 했다. 오랜만에 보는 친정 식구들도 반가웠지만 이제 두 돌이 지난 조카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엄마가 저녁도 먹고 가라고 잡았고 동생도 오랜만에 올케를 보고 가라고 잡았다. 전 날 시댁에서 서울까지 10시간을 운전하고 왔다고 해도 아무도 그 피곤함을 모르는 듯했다. 나도 식구들이 반가웠으니 슬쩍 넘어갔다.
올케는 연극배우다. 그 고단함과 배고픈 처우를 알기에 내가 피곤해 죽겠는데도 얼굴 보고 가라는 말에 붙들리고 말았다. 반갑고 고마운 얼굴 보면서 밥도 먹고 수다도 떨었다. 사실 올케는 마스크를 쓰지 않고 불특정 다수의 관객을 만나는 직업인데 식구들 반가운 마음에 그 사실을 망각하거나 애써 망각하고 싶었을 수 있다. 동동 거리고 시댁에 왔을 올케를 생각하니 이것저것 먹으라고 권하게 되더라. 다음 날 일이 시작되는 나는 저녁만 먹고 얼른 일어섰다.
그렇게 명절을 보내고 나는 일터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수많은 학생들을 만나고 가르치고 웃고 잠시 구석에서 문을 닫고 차를 마시고 그렇게 이틀을 보냈는데 이틀 째 오후에 전화를 받고는 머리가 하얘졌다. 즉시 나는 일터를 동료에게 맡기고 보건소로 출발했다.
내가 확진자일 경우 벌어질 경우의 수를 생각하며 머리가 복잡했고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보건소에 늦지 않게 도착하려고 맘이 급했다.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는데 옆 차선에 들어온 탑차의 문이 풀리며 내 운전석 도어를 쾅 치고 말았다. 내 문은 열지도 못 하고 윈도를 내려 확인했는데 운전자 아저씨가 몹시 당황하며 좌회전 받고 거기서 얘기하자고 하신다.
차를 붐비지 않는 곳에 적당히 대고 한숨을 쉬며 내리니 아저씨는 물티슈를 들고 뛰어와 내 차를 닦으신다.
"이거는 문지르면 지워지네요?" 하면서 세 군데쯤 찍힌 곳을 잘 닦아주신다. 연신 미안하다고 하시는데 두 군데는 지워졌지만 한 군데는 벗겨졌다. 나는 아저씨에게 물티슈를 달라고 해서 열심히 닦아보았다. 제발 지워지기를 바라며...
불행히도 그 상처는 벗겨진 것이 맞았다. 아마 그 상처로 인해 공업사에 갈 일은 없겠지만 아저씨의 전화번호를 받았다. "혹시나 해서 연락처 받습니다. 아마 이걸 일부러 수리하지는 않을 거예요. 아저씨, 서로 바쁘니 앞으로는 문을 잘 잠그고 다니세요.. 저 너무 바빠서 먼저 갑니다~"
아저씨는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잘 부탁드린다고 말씀하신다.
자신이 벌인 일을 먼저 사과부터 하는 사람에겐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속은 쓰리지만 그렇게 보건소에 도착했고 겨우 검사를 받았다. 집에 와서는 끙끙 앓았던 것 같다. 다행히 밤에 올케의 검사 결과가 음성이 나와 한시름 놓았지만 나는 이상하게 몸이 아팠다. 감기 몸살 약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밤새 기억도 나지 않는 꿈을 오래오래 꾸었다.
시댁 귀향길에 오르기 전 날, 남편과 밤 산책을 했다. 명절 귀향은 언제나 여러 의미로 심장이 두근거린다. 결혼하고 처음 만난 시댁 명절은 대한민국에서 며느리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시부모님을 오랜만에 뵈면 반갑고 즐거워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이런 내 심정을 솔직하게 말씀드려보았지만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산책길에 꽃 파는 노점 아주머니를 만나서 반갑기도 했지만 내일 먼 길 가는데 꽃은 사서 뭐하랴.. 하며 지나쳤다. 멀리멀리 걷다 오는 길에 보니 꽃 파는 아주머니에게는 여전히 팔다 남은 꽃이 한아름이었다.
저 꽃들, 내일이면 못 팔 텐데.. 나도 내일 먼 길 떠나지만 괜히 가격을 물어봤다.
백장미 한 단에 만원인데 지금 두 단에 만 이천 원에 주신다고.
공짜로 주셔도 내게는 쓸모가 없을 꽃이었다. 다음 날 이른 아침에 서울을 출발해 이틀 넘게 집을 비우는데 저 꽃이 제대로 예쁘게 유지가 되겠는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명절 전이니 아주머니 발걸음을 가볍게 해드리고 싶었다. 현금도 없어서 남편이 주섬주섬 계좌이체를 했다. 내일 본가에 가는데 뭐하러 꽃을 사냐고 묻지 않았다. 이 꽃을 사는 내 마음을 남편이 알아준 걸까.
장미 두 단을 한 아름 팔에 안고 집에 돌아와 정성스레 가시에 찔려가며 손질을 했다. 예쁘게 화병에 꽂고 기분이 좋아졌다. 명절 전에 발걸음이 가벼워진 쪽은 나였다. 매일 물을 갈아줘야하는데 이를 어쩌나 고민하다 출발 전에 냉장고를 비우고 꽃을 넣었다. 내가 집에 기쁘게 돌아올 이유가 생겼다.
먹지도 않을 음식을 장만하기 싫어서 시댁에 들어가기 전에 전통시장에서 장을 봐서 들어갔다. 여전히 내가 할 일은 있었지만 스스로 많이 줄였다. 사 온 음식도 만든 음식도 먹는 이가 없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 이 명절 음식 장만 의식에 몸도 마음도 피로해졌다. 명절은 그렇게 끝이 나고 차 안에서 괴로운 시간을 견디며 10시간이 걸려 집으로 돌아와 냉장고부터 열었다. 차가운 장미가 나를 반긴다. 추석 당일 저녁에 정작 달을 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베란다에 서서 둥글고 예쁜 달을 마침내 바라본다.
냉장고를 반찬이나 재료 없이 꽃과 와인으로 채우는 허영 가득한 삶을 한 달만 살고 싶다.
내 장미는 향이 없다. 나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