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쌤 Apr 10. 2022

아줌마 유감

드센 소녀는 아줌마가 되어간다.

"어이~ 아줌마!"


"아줌마, 여기 주문이요!"


"아줌마, 왜 운전을 그 따위로 해?!"


아줌마로 시작하는 문장 중에 부드럽고 아름다운 말은 없다. 아줌마는 더 이상 젊지도 예쁘지도 않을뿐더러 지하철 자리 나 탐하고 무거운 물건을 잔뜩 들고 다니면서 손 끝에선 반찬 냄새가 난다. 아줌마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에는 심히 유감이지만 나는 아줌마다.

아줌마! 더 이상 이 단어에 대한 이미지 개선을 할 필요를 못 느낀다.


살림을 한 번 해보면 통칭 아줌마(주부부터 식당, 청소해주시는 분들까지)들에 대해 존경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그걸 모르는 인간들을 설득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예전에 남초 커뮤니티에서 아기가 태어나자 육아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아저씨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아기를 부인이 돌보고 그분이 생필품을 사러 마트에 갔다 혼자 아이 셋을 데리고 장보는 아줌마를 목격했다고 한다. 하나는 업고 하나는 유모차에 태우고 하나는 걸려서 그렇게 장을 보는 그분을 보자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들며 존경심이 절로 생기고 하마터면 그분에게 다가가 엄지 척! 을 할 뻔했다고 한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들어서 아는 것과 경험으로 아는 것은 이렇게 다르다. 거기에 아이를 돌보면서 살림에 집안일을 꾸려가는 아줌마들은 생활의 내공이 보통이 아닌 것이다.


어려서는 아버지께 고분고분하고 학교에 가서는 선생님 지시 사항을 잘 듣고 말썽쟁이 남자아이들이 팽개친 청소를 여학생들이 주도적으로 했다. 우리 할머니는 그런 말씀을 안 하셨지만 어딜 가든 '여자는 남자보다 나서지 말아야 하고 드세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듣고 자랐고 여고에 진학해서도 이런 교육은 계속되었다.


'드세다'는 단어는 여자아이, 여성에게 한정되어 쓰이는 말이다. 아들, 손주에게 드세다는 말을 쓰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소녀는 가족들의 병풍으로 살며 뒤에서 티 안 나게 살림을 도우며 고분고분 말을 듣고 뒤처지지 않게 그러나 너무 두각을 나타내지는 않게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 미덕이었다. 견고한 가부장제를 뒤흔드는 행동을 하는 순간 '저 계집애  참 드세다.'는 평을 듣게 되는 것이다


소녀 시절, 가끔 가정이 아닌 밖에서 이런 평을 들으며 그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드세다는 말로 어린 소녀, 어린 여성, 며느리를 조정하려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들의 기준으로는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자신의 의견을 내는 여자라는 성별을 참을 수 없는 것이다.

나는 그리하여 더욱 드세게 살기로 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하고 강사를 겸업하며 아침부터 새벽까지 이어지는 그 힘든 일을 버틴 원동력은 '남자는 군대도 가는데 뭐..'였다. 친구들에게도 가족들에게도 특히 나 자신에게 이 말을 하며 나를 다독이고 버텼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일을 할 때도 여러 난관이 있었다. 특히 자주 사람이 교체되는 곳에서 오래 근무할 수 있는 힘은 '내가 아이들 키우느라 잠 못 자며 버텼는데 이 정도쯤이야...'였다.

자기주장 강하던 소녀는 이렇게 버티고 버티고 버티며 드센 아줌마로 진화했다.


'드세다+아줌마'의 조합을 좋아한다. 여성은 왜 모두에게 다정하며 상냥해야 하는가. '너는 드세다'라고 말하며 내 삶의 방식을 맘에 드는 대로 바꾸려 하는 사람의 말을 왜 들어야 하나?


아줌마는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 독립한 어엿한 성인이며 아이들을 키우며 일하고 살림을 하는 대단한 사람이다. 스스로 음식을 해 먹으며 본인을 돌볼 줄 알고 주변을 정리하며 남을 돕고 먹이는데 어려움이 없는 사람이다. 자신의 의식주를 남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사람이 함부로 무례하게 입에 올릴 단어가 아니다.


나는 내 새끼를 키움에 있어 드세져야 할 일이 생기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거침없이 드세질 예정이다. 누군가 나를 조종하고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이게 하려 한다면 바로 드센 아줌마 모드로 변경할 예정이다.

그 외의 시간은 아기, 동물, 사람을 좋아하는 인자한 아줌마 모드로 살려고 애쓸 것이다.


*‘드세다 표현에 불편 제기하신 분이 있어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그 노련한 협상의 기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