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 구조를 확 바꾸고 난 이후의 삶
결혼하고서 발견한 내 취미는 요리였다. 뭘 해도 내가 스스로 기특하고 신통했다.
남편도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한 편이어서 친구들이 대부분 자취하는 총각들이었는데, 참 많이도 불러서 밥 먹이고, 술상 봐주고 했었다. 지금은 그렇게 못 하지만 그때는 진심으로 즐거워서 손님들을 치렀다.
아이를 낳고 어린 아기들을 위한 요리를 하면서부터 요리가 '일'이 되어갔다. 해도 해도 끝나지 않고, 미룰 수도 없는 일. 청소나 빨래는 미룰 수 있지만 아기들 먹이는 일은 미룰 수가 없다. 특히, 우리 아들들은 더욱 그러했다. (내 얼굴만 보면 '배고파요'를 달고 사는 아들이 둘!)
주방에서 헤어 나오질 못 하는 느낌이 드니, 더 이상 취미가 아니라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한국사람들의 보편적인 주거형태 '아파트'. 이 천편일률적인 구조가 정말 답답한데, 특히 주방이 그렇다. 설계자가 살림하는 사람이 아닌 게 분명한 구조. 가장 많이 주방에서 시간을 보내는 조리대와 가스레인지는 제일 구석에 위치해 있어 거실에 있는 식구들과 등을 지게 만든다.
식재료 다듬고 가스레인지 앞에서 조리하면서 아이들을 볼 수가 없으니, 아이들이 엄마를 찾으면 대답하랴 밥하랴, 혼이 쏙 빠진다.
아기들이 어렸을 땐 외식 자체가 민폐인 동시에 나 자신도 괴로운 일이어서 주말 이틀간 6끼를 내리 집에서 해 먹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이 때도 식구들과 등을 지고 밥을 하고 있으면 '인간소외에 관한 고찰' 같은 연구 논문을 쓸 수 있을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2년 전 이사할 때 과감히 주방을 전면 리모델링하기로 결정했다. 싱크대만 바꾸는 수준이 아닌 동선을 생각해 구조를 확 바꾸기로 한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잘 먹는데, 앞으로 10년은 더더욱 잘 먹을 것이고, 나는 주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줄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과감한 투자를 결심한 것이다.
먼저, 거실 가까이 있는 냉장고 자리를 제일 안쪽 벽으로 밀어 넣었고, 그 자리 즈음에 있는 가스 렌지대를 아일랜드 주방에 인덕션을 설치해 만들어 거실 가까이로 자리를 바꾸었다.
아일랜드를 설치하느라 거실 공간이 많이 줄었지만, 우리 가족의 라이프 스타일은 먹는게 중요한 스타일이라 전혀 상관 없었다. 식탁도 8인용 큼직한 것으로 제작했다.
이제 대면형 주방이 완성되었다.
요리하면서 아이들도 왔다 갔다 고기도 같이 볶고, 소금도 톡톡 쳐주고 나도 아이들 보는 티비를 같이 보기도 하고 더 이상 소외감을 느끼지 않는다.
혼자 요리할 때는 맥주잔이나 와인 글라스를 왼손에 들고,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요리하는 중간중간 맛본다고 안주삼아 집어 먹으며, 멋들어진 음악에 한 바퀴 돌기도 하면서 즐겁게 요리한다. (남들이 보면 미친 아주머니 같아도 나만 즐거우면 고마 됐습니다.)
얼마전, 양파를 카라멜라이징 하느라 아들들 보고 교대로 볶으라고 했다. 작은 아들이 맵다고 불평하며 그래도 잘 볶는다.
'아들, 나중에 색시가 요리를 잘 못 하면 어떡할 거야?' 하고 물으니,
"제가 요리를 하면 되죠~'하는 스위트한 답을 한다.
곧이어 교대로 볶는 큰 아들에게 같은 질문을 했더니, 이 놈 하는 말,
'저는 결혼 안 할 건데요!'
'왜?'
'결혼하면 힘들잖아요, 돈도 많이 쓰고..'
하하하... 우리 아들 클리앙하니?
(*클리앙:3~40대 남자들이 많은 남초 사이트. 재밌는 공간이라 나도 가끔 들여다보는데, 항상 유부남들이 '늬들은 결혼하지 마라~' 하면서 엄살을 피운다.)
시답잖은 시시콜콜한 대화를 하면서 자연스레 아이들은 식탁도 닦고, 수저도 세팅(하게)한다.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한 힘은 구조의 변경이다.
대기업 아파트 설계팀은 반드시 구력 높은 살림꾼들을 포함시켜야 한다. 이런 주방이 전국적으로 확대된다고 생각해보라.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밥상을 마주하게 될 거라는 상상만으로 이미 포만감이 들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