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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쌤 Aug 19. 2019

집밥, 엄마 밥...

이제는 내가 엄마라서 해야 하는 집밥에 관한 이야기

'야야..., 니 혼자 우찌 그걸 담글래? 열무 한 단 사다가 내 하는 거 보고 한 통 들고 가라'


시어머니의 열무김치가 너무 맛있어서 어떻게 담그셨는지 여쭈었다. 설명을 찬찬히 해 주시다가 나 혼자서는 못 할 거라고, 당신이 담가주실 테니 옆에서 지켜보고 그다음에 혼자 해보라고 하신다.

어머니는 아직도 내가 새아기인 줄 아신다.


해산물이 풍부한 고장에서 자란 남편은 좋은 재료에 솜씨까지 더해진 시어머니의 집밥을 먹고 자랐다. 항상 갓 지은 밥에 새 국, 새 반찬을 먹고살다 대학을 서울로 오면서 집밥에 대한 그리움이 커져만 간 듯했다. 결혼을 해서 내가 한 밥을 잘 먹다가도, 시댁만 가면 걸신들린 것처럼 먹어대니 시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불쌍해하셨고, 나는 그런 남편이 미웠다. 시댁에는 보통 명절이나 생신 때 방문하니, 항상 주방에 대기상태로 손에 물 마를 새 없이 온몸이 피곤했다. 식사 때 남편이 시어머니의 대구탕이나, 아가미젓 김치, 방아잎 된장찌개, 정구지 찌짐 등을 감탄을 하며 먹었고, 어머니는 흐뭇해하셨다.  남편이 내게 음식을 권하며 맛있지? 하면 나는 아무 맛도 느끼지 못할뿐더러 살짝 짜증이 났다. 어쩌라고, 나보고 이걸 집에서 하라고?


그렇게 부산의 음식, 남편의 소울푸드는 내 주방에 동화되지 못하는 애증의 음식이 되었다.

시간은 흐르고, 나의 아기들은 청소년이 되고 시어머니도 아줌마에서 할머니가 되셨다. 이제 나도 듣기만 하는 며느리에서 대꾸도 곧잘 하는 며느리가 되었다. 요새 어머니가 기운이 많이 떨어지셔서 이제는 음식을 한 상 가득 차리는 일을 하지 않으신다. 내심 양과 종류가 줄어서 반갑기도 했다.


시댁 밥상 위가 단출해지니, 오히려 이것저것 늘어놓고 먹을 때 보다 먹어보고 싶은 게 보인다. 식구들 숟가락이 들락날락하는 게 싫어서 안 먹던 열무 물김치를 덜어서 먹어보았다.


아삭한 열무의 식감에 새콤하고 시원한 국물. 그런데, 국물이 독특하다. 맑으면서도 진득하다. 어머니께 여쭈었더니 감자를 삶아서 갈아 넣는다고 하셨다. 처음 들어보는 방법이다. 검색을 좀 해보니, 강원도 지역에서 이렇게 김치를 한다고 한다. 이 김치만 있으면 건더기 건져 밥도 비비고, 국물에 말아 냉국수도 해 먹을 수 있겠다.

국수도 말아먹고, 우뭇가사리 콩국에 반찬으로도 먹고.

서울로 다시 올라와 어머니가 불러주신 방법과 강원도식 김치 담그는 법을 섞어 나름대로 담가보았더니, 비슷한 맛이 난다. 나도 기쁘지만, 더운 여름에 기운 빠진 남편이 더 반가워한다. 만원 지하철에 시달리며 퇴근해 집에서 어머니 김치를 비슷하게 재현한 시원한 김치를 먹으니 피로가 풀리나 보다.


집밥... 그놈의 집밥... 먹는 사람이나 좋지, 하는 사람은 힘들어.. 그래도 꾸역꾸역 하게 되니 이상하지..

파트로, 풀타임으로 직장에 다닐 때도 내 몸이 피곤하지만 아이들 때문에라도 가능한 한 집밥을 해 먹였다.


큰 아들이 4살 때, 정말 어렵게 구한 부산행 KTX 기차표를 들고 설 전날 잠자리에 들었다. 큰 아이가 먹은 게 잘못되었는지 자다가 구토를 시작했고, 밤새 5번을 토하느라 이불, 옷, 베개를 끝도 없이 바꾸고 아이를 보살폈다. 나도 육체적으로 힘들었지만, 구토를 계속하는 아이를 보는 심정은 너무 괴로웠다.


그 귀한 기차표를 끊었으니(명절 왕복 기차표는 내한 공연 당시 '콜드플레이'의 티켓만큼 구하기 힘들다), 일단 서울역 앞에 있는 '소화 아동병원'에 새벽같이 가서 진단을 받기로 했다.


명절 연휴에도 아픈 아이들이 얼마나 많던지.. 오랜 기다림 끝에 밤새 토하느라 축 쳐진 아이를 데리고 진찰을 받았다. 선생님은 아주 심플하게 '당장 일주일 정도 입원해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거기서 바보 같이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그럼 설 명절에 못 가나요?'였다. (명절에 시댁에 못 가면 맘이 불편하니까)


선생님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얘를 데리고 어딜 가냐고 말씀하셔서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돌이 겨우 지난 둘째와 큰 여행가방만 남기고 남편은 서울역으로 기차표를 환불하러 뛰어갔다. 아이는 어차피 며칠은 굶어야 했고, 그 밥을 좋아하는 아이는 토하는 두려움에 먹는 것을 거부했다. 쓸쓸한 명절을 병원에서 맞이하고, 아기였던 큰 아이를 입원실 창가에 안아 올려 서울역에 드나드는 기차를 보여줬다.


'기차 타고 부산에 가고 싶어요..' 하는 아이를 안고 병원에 있으려니 쓸쓸하기는 했지만 기름 냄새 안 맡고 동동거리지 않으니 나는 살 거 같았다. 증세가 호전되어 아이는 흰 죽을 시작으로 일반식을 먹게 되었는데, 아픈 끝에는 항상 왕성한 식욕을 보이던 아기가 이번에는 영 입맛이 없어 보이고, 기운을 못 차린다.


'우리 어린이 불편한 데가 있어요? 얘기해 보세요~' 회진 중에 담당 선생님이 아기에게 친절하게 물으신다.

'어.. 어.. 병원밥이 너무 맛이 없어요, 우리 집에 가서 엄마 밥이 먹고 싶어요..'

회진 중이던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들이 다 같이 웃는다. 나도 웃음이 터졌다.


이렇게 어린 아기도 집밥 회귀 본능이 있구나..


퇴원하고 집에 돌아와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해주었다. 반가운 표정으로 아이가 밥을 먹으니 그걸 보고 웃음이 나는데, 갑자기 시어머니가 아들이 잘 먹는 모습 보고 너무 좋아하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내 새끼 입으로 들어가는 집밥, 내 새끼가 너무너무 잘 먹는 엄마 밥.

시어머니도 나도 같은 엄마다.

나도 나이 들고 어머니는 늙어 힘이 빠지시니 이제야 시어머니의 마음이 조금 이해된다.


집밥, 그놈의 집밥. 우리는 모두 밥에서 휴식을 얻는다.


밥이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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