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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쌤 May 06. 2019

모성애는 본능이 아니다

모성,  그 두려움에 관하여 초보 엄마들에게 주는 위로

큰 일 났다, 정말 큰 일이다....


가슴에 무거운 돌을 얹어 놓은 것처럼 마음이 답답했다.


첫 생리를 시작하고 생경한 복통에 시달리다 겨우 잠자리에 누웠다.

이제까지 옆으로 누워 자던 어린 소녀는 혹시 이불에 묻을까 걱정이 되어

천장을 바라보고 똑바로 누워 잠을 청했다.

몸은 무겁고 졸린데, 자세를 바꾸어 잠을 자려니 잘 수가 없었다.


자다 깨서 시계를 보면 20분이나 흘렀을까. 뒤척이지도 못 하고 관에 누운 것처럼 천장을 바라보고

밤새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든 생각은 '남은 평생, 3주를 보내면 1주일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구나..'

였다. 무섭고 두려웠다.


여자라기보다는 아이에 가까운 어린 소녀에게, 엄마가 될 수 있는 모성의 시작은 '두려움'이었다.


첫 아이를 출산하고 아기와 집으로 돌아온 첫날.

예정보다 3주나 먼저 아기가 태어나, 산후조리를 해주실 아주머니는 열흘 후에나 오실 수 있었고,

시어머니가 지방에서 올라오셔서 친정어머니는 머물 곳이 없었다.

 

모든 일이 꼬여서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엄마는 혼자 밤새 우는 아기를 달래고, 젖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었다. 아기가 잠이 들면 나도 살포시 잠이 들었다가 아기가 다시 울면 일어나서 모든 것을 반복했다.


아기가 다시 울어 비몽사몽 시계를 바라보니 겨우 20분이 흘렀을 뿐이다.

게다가 아이가 왜 우는지 도대체 알 길이 없었다.


그때,  오래전 어린 소녀가 느꼈던 두려움이 다시 다가왔다.


큰 일 났다.. 내 인생은 정말 큰 일 났구나..


잠들 수 없는 초보 엄마에게 밤은, 너무나 긴 전쟁이었다.


아기가 태어나면 저절로 모성애가 넘쳐나 오롯이 아기만 걱정하게 될 줄 알았지만,

잠을 자지 못 하고 내 몸이 괴로우니 아기보다는 내 걱정이 앞섰다.


그렇게 전쟁같은 한 밤을 더 보내고, 신생아 정기검진을 받으러 갔다.

너무 작은 아기 발에서 채혈을 할 때 아기가 울기 시작했고, 당황한 나도 같이 울었다.

아기의 황달 수치가 너무 높아 종합병원으로 전원을 하고, 바로 입원을 시켜야 했다.


신생아 집중치료실 앞에서 간단하게 설명을 하고는 간호사가 아기를 안고 들어가 버렸다.

내 팔에는 아기를 감싸던 겉싸개만 남았다.


아기 없이 빈 이불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니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도 잠을 끊기지 않고 잘 수 있다는 생각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나는 모성애가 없나.. 하는 죄책감이 들었다.

 

우는 아기가 없으니 잠을 주욱 잘 수 있었지만 새벽에 한기가 들어 일찍 눈이 떠졌다.

축축하게 잠옷의 가슴팍이 젖어있었다.

이제 내 몸도 내 마음대로 조절이 안 되는 젖먹이 엄마가 된 것이다.


그 어색한 몸으로 아기 먹일 모유를 유축하고, 보냉백에 담아 면회를 갔다.


열 달을 품었지만, 얼굴을 본지는 일주일이 채 안 된 초보 엄마.

아기도 나도 초면이라 어색한 거야...라고 되뇌며 병실로 들어갔다.


우리 아기는 광선치료를 받느라 눈에 안대를 고정하고 있었는데, 아무것도 못 보는 상태에서

'엄마 왔어~' 하는 내 목소리를 듣자 꿈틀대며 온 몸으로 반응했다.


 

그때였다. 내 몸을 온통 흐르는 모성애를 처음 느낀 순간이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여리고 작은 존재가 온전히 나란 인간을 의지하는 그 순간,

엄마가 되어간다.


모성애를 강요하지 말라.


방긋방긋 웃는 예쁜 아기를 볼 때만 모성애가 샘솟지 않는다. 아픈 아기 둘러업고 병원 응급실로 뛰어다니며 고열로 축 늘어진 아기를 어루만질 때, 장염으로 밤 새 설사하는 아기를 1시간 간격으로 자다 깨서 물로 엉덩이 닦아주고 기저귀를 갈아줄 때, 새벽에 깨서 이유 없이 대성통곡하는 아기를 업고 달랠 때 모성애는 천천히 쌓여간다.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여전히 내게는 두려움이다.

내가 눈을 감는 그 날까지 이 두려움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니, 세상의 모든 초보 엄마들에게 위로한다.

어린 소녀일 때부터 우리는 조금씩 두려움에 준비를 해왔으니, 미안해하지도, 마음을 조급하게 먹지도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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