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수록 빛이 나는 무쇠 이야기
내가 프라이팬을 사용하기 시작한 중학생 이후부터의 기억으로, 프라이팬은 코팅 팬이었다. 새 코팅 팬을 사면 기름을 적게 두르고도 달걀이나 고기가 또르르 굴러다니는 게 아주 기분 좋았다.
결혼을 하며 내 살림을 마련했을 때도 코팅이 잘 된 브랜드 제품을 샀다. 그러나 코팅 팬은 잘 닦고 관리해도 2~3년이 지나면 교체해야 하는 소모품이었다. 게다가 염분이 많은 음식을 조리하면 1년을 겨우 쓰기 일쑤였다. 그래도 대안이 없으므로 최대한 교체 시기를 늦추며 코팅 팬을 써왔다.
어느 날, 코팅 팬의 코팅이 몸에 좋지 않으며 그 성분이 요리할 때 조금씩 녹아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대안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스테인리스 프라이팬도 많은 사람들이 쓰고 있었으나 이건 이미 있는 데다 전 부치는 용도로는 그다지 만만치 않았다. 자주 가는 요리 사이트에서 당시 무쇠 바람이 불고 있었는데, 무겁고 관리가 까다로운데도 인기가 있었다. 궁금한 것은 반드시 경험해 봐야 하는 성격에 덜컥 첫 무쇠 팬 두 종류를 주문했다.
국산 브랜드 무쇠 나라의 28cm 팬과 사각 팬.
주문할 때 '길들이기'한 것과 아닌 것을 고르는데 길들이는 것이 5천 원 정도 비싸서 작은 사각 팬은 내가 길들여보자... 하고 용감히 주문을 했는데..
'길들이기'는 기름을 팬에 먹이고 토치나 가스레인지의 불로 일종의 코팅을 하는 과정인데, 아무리 작은 팬이어도 회색 빛의 무쇠 팬을 처음 보니 당황했다. 당시 둘째를 임신 중이라 배도 제법 불렀는데 토치로 불을 쏘고 있자니 웃음이 나와서 기름칠을 잘하고 온 집안 문을 열어놓고 오븐에 고온으로 두 시간을 구웠다.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집은 온통 냄새 투성이었지만, 결과물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큰 팬에서 먼저 부침개를 부쳐보았더니 프라이팬보다 열 전도가 좋고 지속성이 좋아 두 번째 부침개부터는 정말 바삭하고 맛있게 구워진다. 금세 식지 않아 더 좋았다.
작은 팬에서는 주로 달걀말이나 김밥용 달걀지단을 부치는데 길이가 김밥에 딱 맞아서 편리하다.
이것도 중불에 오래 달군 후 달걀을 잘 섞어 기포를 없애주며 부치면 결과물이 매끈하다.
이 무쇠 팬은 사용 후 주방세제로 닦지 말고 열이 남아 있을 때, 새 기름을 두르고 키친타월로 닦아주면 끝!!
가끔 제육볶음이나 닭갈비 등 양념이 있는 것은 물에 불린 후 수세미로 닦아주는데, 기름 코팅이 가끔 벗겨질 때가 오면 철수세미로 박박 닦아 잘 말린 후 다시 기름칠을 하고 가스불에 앞 뒤로 구워주면 된다.
사용을 하면 할수록 반짝반짝 길이 드는 데다 코팅 팬 사는 일이 없어지니 다른 무쇠 팬도 눈이 간다.
그다음에 구매한 미국산과 프랑스산 무쇠 팬.
22cm의 롯지 스킬렛과 드부이에의 달걀 프라이용 미니 팬.
오믈렛 할 때는 왼쪽의 팬을 쓰고, 달걀 프라이 한 개만 할 때는 동그랗게 부쳐지는 오른쪽 팬을 쓴다. 이것들도 구매한 지 9년 정도 되었는데, 쓸수록 성능이 좋아진다.
무쇠로 뭉근하게 오래 끓이면 무조건 맛있다는 말에 산 비싼 무쇠 냄비와 무쇠 그릴 팬.
우리나라 국이나 찌개는 오~래 끓일수록 맛있는 것들이 있다.
미역국, 김치찌개는 최소 1시간 이상, 곰국, 감자탕은 3시간 이상 끓이면 솜씨가 조금 부족해도 맛있어진다.
그런데, 이 명품 무쇠 냄비는 뚜껑까지 무쇠라 무거워도 너무 무거움.
그래서 일단 꺼내는데 큰 결심을 해야 함! 그리고, 곰솥에 끓여도 1시간 이상 끓이면 다 맛있으니 굳이 비싸고 무거운 냄비는 사지 마시길. 우리의 손목은 소중하니까.
근데, 저 그릴 팬은 진짜 강추. 고기 구우면 그릴 자국 쫙!!
무쇠는 닳지도 않고 녹이 슬어도 수세미로 박박 밀고 길들이면 다시 새것으로 탄생한다.
코팅 팬보다는 살짝 번거로울 수 있지만 이렇게 생명력이 길고 쓸수록 빛나는 무쇠를 한 번 들여서 사용해보자.
그 매력에 그 맛에 반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