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와 오페라 아리아에 그려진 그 지독한 사랑에 대하여
사랑하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걸고 그 사람만 따르겠다는 그 절절함, 그 지독한 사랑이야말로 오페라를 포함한 모든 극음악의 원동력이다.
한국 드라마는 사랑 빼고는 이야기가 안 되냐고 하는 사람들에게 고개를 들어 서양의 극음악을 보라고 하고 싶다. 대부분의 오페라 스토리를 보면 한국의 막장 드라마가 울고 간다.
그 진부한 '사랑'은 누구에게나 일어나지만 벼락같은 충격을 받는 일이며 이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가슴 저미는 일이다.
한국의 판소리, 민요를 보면 화자가 여성인 경우가 많이 있다.
그 당시 여성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집을 떠나 님을 따라가는 일 밖에 없으니 그 가사야말로 처연하기 그지없다.
갈까부다. 갈까부다. 임 따라서 갈까부다.
바람도 수여 넘고, 구름도 수여 넘는,
수진이, 날진이, 해동청, 보라매 다 수여 넘는 동설령 고개라도
임 따라 갈까부다.
<판소리 춘향가> 중 갈까부다.
수진은 길들인 매, 날진은 길들이지 않은 매, 해동청은 송골매를 뜻한다.
그 험한 고개를 바람도 구름도 새들도 맘대로 넘는데 나도 임 따라가겠다는 여인의 의지와 절절함에 마음 아프다. 가족도 버리고 모든 것을 버리고 새 처럼 바람처럼 따라가겠다는 여인을 누가 막을 수 있으랴.
이 판소리의 한 대목을 내가 사랑하는 재즈 밴드 'The Near East Quartet'의 연주로 들어보자.
공연을 보러 가서 그 가사와 멜로디에 저절로 눈물이 흐르는 경험을 했다.
<갈까부다의 공연 실황>
음원으로도 들어보자.
https://music.apple.com/kr/album/near-east-quartet/1413345370
카탈리니의 오페라 'La Wally' 는 모든 막장 드라마의 요소를 다 갖추고 있다.
부잣집 외동딸의 재산을 노리며 접근하는 남자, 그 남자 대신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여주인공, 그 여주인공을 사랑하지만 다른 여인과 결혼하려는 남자 주인공. 그 남주가 미워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에게 결혼을 미끼로 살인교사를 명하는 여주. 이 모든 것을 딛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두 주인공에게 해피엔딩은 없다.
남주는 눈사태로 죽음을 맞이하고, 여주는 울면서 계곡에서 몸을 던지고 만다.
이 오페라에서 가장 유명한 아리아 '나는 이제 떠나가리라'는 프랑스 영화 'Diva'에서 더욱 널리 알려졌다.
그럼... 여기서 멀리 떠나갑니다.
마치 경건한 종소리가
저 흰 눈 사이로 흘러가듯이
저 금빛 구름 사이로 흘러가듯이.
허나 그 희망도
아쉽고 괴롭습니다.
오 어머님의 즐거운 집에서
왈리는 아득히 멀리 떠나가겠습니다.
그리고 아마, 그리고 아마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고,
다시 만나는 일도 없을 겁니다.
결코, 결코 없을 겁니다.
여기서 홀로 멀리 떠나갑니다.
마치 경건한 종소리가
저 흰 눈 사이로 흘러가듯이.
여기서 홀로 멀리 떠나갑니다, 저 금빛 구름 사이로 흘러가듯이.
발이 움직이지 않아도 가겠습니다.
길이 멀어도 가겠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잘 있거라, 고향 집이여 - 카탈라니, [라 왈리] (내 마음의 아리아, 안동림)
여러 소프라노의 음반을 들어봤지만 이 아리아는 마리아 칼라스의 음성이 가장 절절하고 아름답다.
동서양을 아우르는 공감대, 그 지독한 사랑을 느껴보자.
형식도 공간도 시대도 다른 이 두 곡의 노래가 내게는 같은 정서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