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이 피어나는 소리는 바람을 닮았다. 머물지도 않고, 잡을 수도 없는 시간의 속도로 가만히 피어나 수면을 수놓는다. 꽃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고 싶어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본다. 좁은 길 사이, 내 발자국 소리에 놀란 개구리들이 일제히 못으로 뛰어드는 느른한 날, 지금은 빗방울에 놀란 꽃잎들이 어떤 모습으로 숨 죽이고 있을까?
늦게 찾아왔는가 보다. 경주 대릉원 근처 연꽃밭, 잎이 진 꽃들과 피어나는 꽃들 사이를 걷는다. 오후의 햇살아래 속살처럼 드러난 꽃술까지 그림자로 선명하게 내려앉은 연꽃을 바라보다 <먼지 속으로 사라지다-은입진연>(2022)란 영화가 떠오른다. 지금은 중국에서 상영 금지된 영화이다. 소설 <딩씨 마을의 꿈>을 읽고 중국의 농촌에서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던 차였는데 지극한 서정으로 현실을 고발한 한 편의 시와 같은 영화이다.
지난 7월 정식 개봉 이후 입소문을 타면서 9월엔 중국박스오피스 1위에도 올랐던 영화지만 이후로 온라인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영화가 되어버렸다.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한다. 농촌환경 개선이 현재 중국 당 정책의 커다란 화두인데 현대화란 미명하에 내몰린 이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영화인지라 상영금지 처분을 받았다는 게 가장 설득력 있는 설이다. 미추를 떠나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었을 때 외면하며 그걸 보게 만들었다고 비난하는 이들은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왜, 굳이 돈을 내서 이런 것까지 봐야 하나란 성토까지 중국 내에서 있었다 한다. 결국 직시도 용기가 필요한 일인가 보다.
영화 속 배경이 되는 중국 서북부의 농촌은 사막처럼 황량하다. 그곳에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평생 일만 하던 마유테란 노총각이 구이잉이란 여성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는데 배변장애를 갖고 있던 여인은 결혼 첫날밤에 이불에 실례를 해버린다. 당황한 그녀는 혹여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할까 봐 선채로 이불에 기대 잠을 청한다. 그렇게 시작된 그들의 결혼 생활. 세상 어색한 모습으로 하루 일과를 소화하던 그들이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빈 집을 철거하고 보상금을 주는 식으로 농촌환경 개선을 외치는 정부로 인해 이들은 현재 살고 있는 신혼집을 급하게 비워주게 된다. 그 집 역시 버려진 빈 집을 고쳐가며 살고 있었는데 집주인이 정부 정책에 적극 협조하며 철거비를 받기 위해 이들을 내쫓은 것이다. 또 다른 빈 집으로 급하게 이사를 하며 마유테는 집을 짓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것도 진흙벽돌로 말이다. 흙을 이겨 모양을 내고, 햇볕 아래 말리고 또 말리고. 수백 장의 벽돌을 만드는 와중에 마을의 모든 민원들을 처리하는 지주가 병에 걸려 입원하자 지주를 위해 엄청난 양의 헌혈까지 해주는 마유테. 그런 남편의 모습을 보며 애잔한 마음을 갖게 되던 구이잉은 폭우가 몰아치던 밤, 벽돌을 지키다 패잔병의 모습으로 날을 꼬박 새우며 본격적으로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자신의 당나귀가 학대받는 걸 안타깝게 바라보는 마유테의 눈빛이 구이잉의 마음 문을 열게 된 열쇠였다는 조심스러운 고백과 함께 같이 접는 밀껍질 인형들의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서로 바투 앉아 나누는 이야기들과 은은하게 번지는 미소를 통해 서로에게 얼마나 많이 마음이 열렸는지를 엿보는 내내 내 마음까지 그 온기가 스며들었다.
영화 초반부 급작스레 찍게 된 결혼사진 속 표정 없던 밀랍인형 구이잉이 달라져 간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남편에게 다가가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그녀의 모습은 사랑이란 감정의 온도가 무르익는 과정을 가만히 따라가게 만드는 설렘이었다. 밀수확 과정에서 피부에 발진이 생긴 부인을 데리고 밤늦게 수로에 가서 씻겨주던 장면까지. 둘이 만드는 정말 느리고 답답하고 어쩌면 한없이 빈곤한 하루들이 보고 있는 내내 마음을 두드렸다.
이들의 사랑이야기가 담긴 영화제목이 왜 <먼지 속으로 사라지다>일까? 영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마지막은 감춰두련다. 그들이 만들던 집 앞에서 나란히 서 있던 장면이 계속 떠오른다. 그리고 마지막 포르르 숨이 죽던 밀 껍질의 가느다란 촉수, 그 줄기가 내가 내려다보는 연꽃의 술 위로 겹쳐진다.
오버랩되는 장면 속에서 지고 있는 계절, 여름을 들여다본다. 이 여름, 여러분은 어떤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지. 당신 안의 꽃들이 소리없이 피고, 지는 고요한 소리를 듣고 있는지, 문득 안부가 궁금한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