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생각나는 얼굴이 있습니다. 얼굴선이나 눈썹, 콧방울도 흐릿해졌는데 둥글게 휘어 올라가던 입매는 또렷하게 기억나요. 무릎에 저를 앉히고 제가 좋아하는 계란 부침에 장조림, 콩장을 숟가락에 얹어주며 천천히 꼭꼭 씹으라 당부하던 목소리도 귀에 선합니다. 목소리가 점점 더 선명해지면 머리칼을 흩트리던 손길의 짓궂은 박자에 까르르 웃던 제 웃음소리도 같이 기억나죠. 지금은 낯설어진 톤, 솔과 라 음의 웃음소리가 어떤 장면 속에서는 폴카처럼 톡톡, 떠오른다는 것이신기해요.
기억의 주인공은 어릴 적 서울에 살 때 세 들어 살던 집 막내아들입니다. 이리 말하니 어쩐지 마름집 점순이(막내아들)와 나(똥오기)로 이어지는 현대판 동백꽃 같은걸요? 감자 대신 계란부침을 쑥 내미는 귀족적으로 생긴 막내아들 등판이요. 하지만 저의 緣이 아닙니다. 전 요 막내아들이 제 고모랑 어떻게든 홍연으로 얽혔으면 하고 열심히 노력했던 아무도 모르는 사랑의 전령인 셈이죠. 삼촌이 에버랜드 데리고 간다기에 고모도 같이 가 둘을 커피컵에 몰아놓고 빙글 뱅글 돌게 해서 훈풍에 취하게도 해보고, 바이킹에선 저를 가운데 놓고 좀 손 끝 좀 닿게 해 보느라 속엣것 요동쳐도 입 꾹 막고 버티고, 자장면 면발을 줄다리기하듯 팽팽히 입술로 당겨도 좀 보게 하고... 제가 먹고 싶던 자장면 한 젓가락 양보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이었을까요. 어린 제가 얼마나 바동댔는지 신만이 아실 일.
주인집 막내아들이 제 고모부로 승격되는 순간만을 기다리며 오매불망 눈 똥그랗게 뜬 장화 신은 고양이가 돼서 발버둥 쳤건만 홍연은 엉뚱한데 걸린 꼬리 끊어진 가오리연이 되어 휘리릭 막내아들을 다른 곳으로 낚아채갔죠. (고모... 더 노력 좀 하지 그랬어.) 원망해도 소용없겠죠. 어디 사람인연이 인력으로 되겠어요.
삼촌 결혼한다는 소식에 보름달이 허옇게 야위도록 울었던 기억이 나요. 하얀 눈밭 위로 사과를 자르다 베인 손에서 흘러나오는 핏방울이 종모양의 화산이 되어가는 걸 보면서도 혼자 어찌할 바 몰라 허둥대고 있을 때 퇴근하다 이 모습을 보고 달려와 응급실로 안고 뛰던 삼촌 모습이 제게는 십자군 기사들보다 더 용맹하고 위대해 보였거든요. 삼촌이 지켜 줄 다음 대의 우리 집안의 생기지도 않은 조카들의 내일이 든든해 혼자 흐뭇해했건만!
월하노이 이 이이인, 실을 잇던 날. 돋보기든, 거울이든 무엇이든 간에 잘 못 본 게 틀림없어요! 아니면 삼신할미랑 바둑 두다 깜박 잊은 거예요. 짝 지어줄 인연을 말이죠. 직무태만에 귀까지 살짝 어두웠던 이 날의 월하노인과 심신할머니는 '그날이 알고 싶다'에서 추적하는 걸로요.
시간이 지나 기억들이 희미해지고, 몇 년 치의 하루들이 압축되어 뚜껑에 구멍이 난 통조림 안에 몰아넣어져 한 번씩 누군가의 흔들림을 따라 흘러나오는 걸로 간간히 그날을 떠올려보는 어른이 된 오늘. 마음의 빗장을 열어주는 영화를 만났습니다.
터키어로 달빛이란 뜻의 "아일라", 영화 제목입니다. 1950년 6ㆍ25 전쟁 당시 맥아더 장군의 회고록에 따르면 미국의 요청에 제일 먼저 한국으로 군인들을 파병한 나라가 바로 한국을 형제의 나라라 부르는 터키죠. 이 나라와는 인연이 깊습니다. 여자배구 8강전에서 우리 상대였던 터키팀이 지고 나서 정말 서럽게 우는 장면이 방송에 나왔던 적이 있었죠. 산불이 나 고통받고 있는 국민들에게 승전보로 위로를 하고 싶었는데 우리에게 지고 말아 슬프다는 그들의 눈물에 감동한 우리나라 네티즌들이 터키에 묘목을 기부하기 시작했는데, 그 소식이 전해지며 감사를 표하는 터키국민들 인터뷰를 보며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꼈던 적이 있습니다.
영화는 멋 내기 좋아하는 슐레이만이 친구인 부대 내 최고의 저격수 알리와 함께 한국이란 나라에 대해 궁금해하는 걸 보여줍니다. 한창때의 멋진 청년들이 모여있는 말끔하고 세련된 모습의 사교현장이 나옵니다. 그런 그들이 터키에서 한 달 넘게 배를 타고 와 부산에 도착한 뒤 그가 바라보는 한국의 모습이 이로 인해 얼마나 참담했을지 더 잘 느끼게 되죠. 북한군의 기습적인 침입으로 순식간에 피폐해진 한국의 모습을 보며 유엔군의 이동경로를 따라 함경도까지 진군한 터키군. 그곳에서 주인공 슐레이만은 북한군 공습으로 마을사람들이 몰살당한 상태에서 혼자 살아남은 아이를 만나게 됩니다.
추위로 온몸이 언 아이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손을 내미는 슐레이만에게 말을 잊은 아이가 매달리죠. 작은 손으로 옷깃을 붙들고 그대로 잠이 든 아이. 바가지 머리에 보름달을 닮은 아이에게 "아일라"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자신의 부대로 데려옵니다. 전쟁의 충격으로 말을 잊은 아이를 살뜰한 보살핌으로 온기를 건네는 슐레이만과 그에게 천천히 마음을 여는 아이의 모습이 참 따뜻하게 그려져요. 어느 날 아침, 아침 조회 중 씩씩하게 터키어로 "54번, 번호 끝!" 곧이어 "좌향좌, 우향우" 발맞춰 외치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몰라요.
수많은 젊은이들이 포화로 죽고 다치는 중에도 시간이 흘러갑니다. 병사들의 지친 마음과 향수병을 달래주는 존재가 바로 아일라였죠. 그들에게 귀여운 이 소녀를 보호하는 건 어쩌면 이 나라 전쟁의 승기를 잡는 것이 아닌 그들의 인간성을 지키는 일 그 자체였는지도 모릅니다. 아이가 웃길, 한 번이라도 무언가를 더 먹기를, 소리 내 단 한마디라도 말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뜰히 살피는 모습을 통해 전쟁에 억지로 내몰린 이들이 겪게 되는 비인간적 모습들에 대한 깊은 회의가 더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동화가 아니라 실화인 걸 알기에 더 뭉클해지던 장면들이었습니다.
1차 파병된 군인들이 돌아갈 때 슐레이만은 약혼자의 재촉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남습니다. 오로지 슐레이만을 파바라 부르는 아일라를 위해서였죠. 그렇게 미룬 귀환으로 생사를 오가는 위험한 순간들을 만나지만 그래도 아일라와 함께 있는 이곳에서의 시간에 더 큰 비중을 두죠. 마음으로 낳는다는 말을 그를 통해 배웁니다. 눈빛 하나, 손길 하나에 스며있는 아이에 대한 애정이 온전히 전해져요. 하지만 더 이상 복귀를 미룰 수 없게 되자 터키에서 세운 보육원에 아일라를 맡기게 됩니다.
당시에 전쟁고아들이 터키로, 또 세계로 입양된 사례가 많지만 슐레이만은 아일라가 자신이 태어난 환경에서 사람들의 보호를 받고 잘 자라길 바라는 마음이 컸습니다. 부모를 잃은 아이가 낯선 환경 속에서 이방인들의 눈초리와 편견을 견디며 커가는 것에 대한 걱정이 앞서서였죠. 하지만 그와 같이 있고 싶어 하는 아이의 완강한 거부로 슐레이만은 아일라를 커다란 가방에 넣어 터키로 데려갈 무모할 결심을 하죠. 쫓아 온 보육원 사람들에게 발각되어 결국 곧 돌아오겠단 약속과 함께 한국을 떠나게 되지만요. 그렇게 헤어진 뒤 다시 만나기까지 60년이 걸려요. 서로의 기억으로 애타게 찾고 그리워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이름을 바꾼 아이를 찾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었죠. 터키의 방송국에서 수교기념으로 그의 사연을 듣고 직접 나서 주기 전까지 말이죠.
60년이란 세월이 서로의 얼굴도, 목소리도 다 바꿔놓았지만 멀리서부터 알아보고 달려가 얼싸안아주는 모습에서 혼자 눈물, 콧물 흘려가며 박수를 쳤습니다. 온기가 만드는 물길은 막을 수가 없는 거예요. 이런 영화 볼 때는 울 준비 하고 보는 게 예의이죠. 일상이 건조해 마음이 서늘했던 한 주시라면 추천해 드립니다. 달빛 아래 가만히 느린 걸음으로 걸어보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