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재능만 믿고, 팀원들을 존중하지 않는 고등학교 미식축구팀의 유망주 선수에게 감독이 신발을 집어던집니다. 선수가 아닌 신발장에 던진 건데 벽에 맞고 튀어나온 신발이 선수의 얼굴을 치면서 감독은 경질되죠. 다방면으로 일자리를 수소문하다 멕시코인들이 모여 사는 캘리포니아주 작은 소도시 맥팔랜드로 오게 된 감독 짐 화이트.
케빈 코스트너가 영화 속 주인공 짐 화이트를 연기하죠. 얼굴에 주름이 가득하고 거북목으로 구부정하게 걷는 그가 휘트니 휴스턴을 지키겠다 몸을 던지던 그그그 보디가드라니. 하아, 세월은 정말 비켜가질 않아요. 그런데 그의 얼굴에 묻어있는 세월의 흔적들이 정말 좋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깊어지는 눈매 때문인가 봐요. 눈빛 덕분에 연기에 진정성이 더해진달까요? 주름이 더해져 아름다운 건 버섯 말고, 나무도 말고 사람도 가능하죠. (거기에 슬쩍 저도 끼어 볼래요.)
맥팔랜드 고등학교 축구감독 보조로 부임하게 된 그에게 동네는 온통 낯선 것들 투성이죠. 새벽부터 울어대는 옆집에서 선물해 준 닭, 집 거실의 벽지 한가운데 자리한 멕시코 민속화, 틈만 나면 치고받고 싸우는 학생들, 수업에 도통 열의가 없는 아이들까지 혼란투성이의 나날이었쥬. 그러던 어느 날 짐 화이트는 딸과의 아침 등굣길에서 들판을 달리고 있는 한 아이를 보게 돼요. 아스라이 퍼지는 아침 안갯속을 등에서 피어오르는 체온의 아지랑이와 함께 달리는 이 녀석은 동생이 임신을 했다고 교장선생님과 맞짱 뜨며 항의하던 토마스 발레 스였어라. 아이가 달리는 속도를 확인해 본 그는 낙후된 환경 속에 살아가는 아이들에게서 새로운 희망을 찾아내죠. 저들만의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서 단련된 체력, 끈기, 오기, 그리고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마음속에 내재된 갈망까지도요.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곳,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그가 권하는 크로스컨트리 운동은 부자들의 취미활동인 골프만큼이나 낯설었죠. 크로스컨트리가 끈기와 협동을 보여주는 운동이라 미국인들에게 인기 있는 종목인데도 말이죠. 이민자들이 많은 동네여서 그런지도 몰라요. 꾸준한 짐의 설득과 노력으로 7명의 팀이 구성되고, 처음 갖는 새운동화를 신어 보기 위해 들어오기도 한 아이들을 데리고 그는 길 위를 달리기 시작해요. 수업 중에도 농장일을 위해 아이들을 픽업해 데려가던 학부모를 설득하기 위해 땡볕에 농장일을 돕다 쓰러진 짐은 자기 생애 최악을 만난 것 같았다며 회상해요. 그런 최악의 날들을 이곳 주민들은 매일같이 하고 있고,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죽을 때까지도 이 일을 할 사람들이란 걸 알게 되며 그들의 삶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돼요. 그리고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더욱 온기가 실려라.
편견을 깨고 들여다보는 일, 가까이 다가가야 가능한 일이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누군가에게 이렇게 열정을 다해 다가서는 일은 두렵고 낯선 일이 되어가죠. 아무 이해관계없이 그렇게 하는 경우는 더더욱 드물고요. 짐 화이트 역시 자신의 또 다른 경력을 위한 도전일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에게서 특출 난 재능을 뽑아내는 시선을 갖는 일은 애정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일이기에 그들 삶 깊숙이 파고드는 짐 화이트의 노력이 그래서 더 마음 깊이 와닿아요.
그의 노력으로 마음이 열린 동네주민들은 바자회도 열어가며 아이들의 운동복과 운동화 등 필요한 물품들을 지원해 줍니다. 마을 주민들도 처음으로 동일한 희망을 갖게 된 거예요. 신문기사에 매번 동네의 사건사고 소식들(갱단의 싸움 같은)로 마을 이름이 오르락내리락했는데, 이 아이들로 인해서 자신들이 사는 공간이 다르게 알려지기 시작하거든요.
아이들은 묵묵히 달립니다. 자신들이 까던 산더미같이 쌓인 아몬드 껍질 위를,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농장의 밭 사이 흙길을, 자신들의 인생에 놓인 어두운 터널을 달리고 또 달려요. 그리고 마침내 엄청난 일들을 만들어내죠. 단 한 명도 9학년까지 정상적으로 졸업을 한 학생이 없던 맥팔랜드에서 팀 전원이 대학진학을 하고, 그들이 또다시 돌아와 맥팔랜드의 각 요소에서 사회를 이끌어가는 멋진 구성원이 되도록 이끌어준 화이트, 정말 멋진 선생님 아녀라?
그의 딸을 위해 동네 주민들이 멕시코식의 성년식 "킨세아녜라"를 치러주는 장면을 보다 코 끝이 찡해졌어라. 어쩌면 딸을 위한 자리가 아닌, 그 공간에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그를 위한 파티로 보였어라. 제게는요. 그리고 지금도 그는 맥팔랜드에 살고 있대요. 가족들과 함께요. 실화여서 더 감동인 이야기여라.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오래도록 머릿속에 남는 장면들이 또 있어라. 아이들이 대회를 치르고 처음 바다를 마주할 때 일에 지쳐 한 번도 여가 시간을 따로 가져본 적 없는 아이들이 땀에 절은 채 바다로 뛰어드는 활기 가득한 장면이 그 하나죠. 늘 바다를 가까이 두고 살고 있기에 삶의 무게를 저만치 던져놓고 천진한 어린아이들이 되어 바다로 뛰어드는 모습이 정말 좋았어라.
그리고 마지막 팀원 중 제일 느린 대니가 대역전극을 펼칠 때죠. 늘 꼴찌였어요. 연습 중에도 다른 대회에서도. 항상 맨 뒤에서 달리면서 느릿한 황소처럼 묵묵히 콧김을 뿜으며 달리던 대니가 마지막 질주를 할 때는 저도 모르게 주먹 쥐고 외치고 있었어라. 달려, 달려!!! 이렇게요. 결승선을 통과한 후에는 같이 펑펑 울었어라. 믿고 기다려준 이에게 보여주는 그의 진심이 얼마나 벅찬 감동으로 다가오던지요.
영화 속 호세 카르데나스가 지은 시를 읽어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우리는 찌르레기처럼 하늘을 난다
따뜻한 바람을 타고
오렌지 숲을 지난다
달릴 때 우리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다
온 땅이 우리 것이다
우리는 새의 언어로 말하고
더 이상 이민자가 아니다
더 이상 멍청한 멕시코인이 아니다
달릴 때 우리의 영혼이 하늘을 날고
신의 언어로 말한다
달릴 땐 우리가 신이 된다
달릴 때 신이 된다는 아이들, 그들이 흘린 진솔한 땀방울의 이야기 같이 보실래요? 준비되셨음 운동화 끈 한번 더 조여 묶고 요기 요기 나란히 서주셔요. (일단 준비 운동으로 사진 속 고복저수지 한 바퀴 돌고 가시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