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이 되어 시골동네에서 이사 나와 제가 살게 된 동네는 한내천천변주차장 옆 낮은 경사로를 따 라 조성된 단층의 주택들이 즐비했던 곳이었죠. 응팔의 쌍문동보다 이웃들 간의 거리가 더 가깝던 곳이라 낮은 담벼락 넘어각 집의 사정들을 다 공유하는 사이가 되어 명절날에만 한 상에 둘러앉게 되는 먼 친척들보다 더 가깝게 느껴질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 곳에서 한 할아버지께서 고립사로 세상을 떠나셨어요. 그것도 돌아가신 지무려 1달이나 지나서 발견이 되었는데, 마을 주민들에게 할아버지께서 큰아들댁에 가신다는 말씀을 하셨 던지라 거기 가셔서 안 내려오시는 줄로만 알고 있었지 이런 일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어요. 나중에 들은 풍문으로는 아들이 할아버지를 찾아와 자신이 아버지를 모시겠다며 대신 조건으로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달랬다고 합니다. 그래놓고 모셔가지는 않고 계속 날아드는 여러 가지 독촉장으로 인해서 생활고를 견디다 못한 할아버지께서 그만 홀로 먼 길을 가는 걸 선택하신 거였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된 뒤 한 마음으로 장례를 치르고유품까지 정리했던 기억이 납니다. 뒤늦게 장례식장에 나타나 엎드린 채 고개도 못 들던 할아버지 아들 등짝을 세게 후려치던 아주머니들의 울음소리가 아직도 귀에 선합니다.
그렇게 한 생이 사라진 자리, 무성하게돋아 오르는 마당의 풀들과 바람에덜컹대는 대문의 헛기침 소리가 그곳을 지날 때마다 제 뒷목을 잡아끄는 기분이 들어서 한참 동안을 그 집 앞을 지날 때마다 전력질주를했었죠. 아직도 할아버지의 일부가 그곳에 남아있는 것 같아 살짝 등골이 서늘해지곤 했거든요. 어쩌면 아무도 모르는 죽음 이후의 시간 을 처음으로 촉각으로 느꼈던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근래 <죽은 자의 집청소>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삶, 죽는 자가 늘어날수록 활기를 띠는 비즈니스. 그 직업적인
아이러니를 떼어놓고는 이 일을 설명할 수 없다. 죄책감이 내가 발을 디디고 선 땅이다. 뒤돌아보면 언제나 죄책감 위에 새겨진 기나긴 발자국이 저 멀 리에서 나를 따라오고 있다. 움푹 들어간 자국이 깊고 선명하다.
금파리가 공중에서 윙윙거리고, 살 오른 구더기가 모퉁이마다 꾸물거리고, 송장벌레와 진드기가 기어 다니는 곳에서 ‘특별함’이라는 왜소하고 부질없는 조각들을 찾아서 줍느니, 태풍이라도 소환해서 남겨진 발자국을 지우고 싶다. 누구도 묻지 않은 죄를 스스로 지우도록,나는 매일 밤 꿈속에서나마 용서의 순례 길을 나서야 한다."
- 죽은 자의 집 청소 | 김완 저
독특한 직업을 갖고 있는 이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자신의 일을수행하는 이가 갖고 있는, 삶에 대한 진중한 철학과 생각들에 매료된 시간이었습니다. 경제공황으로 인한 가난으로 고립사가 늘어가고 있는 요즈음. 홀로 남겨져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사람들의 마지막머문 자리를 치우며 느끼는 여러 가지 삶에 대한 생각들이 차분한어조로 펼쳐지죠. 전반부에는 자신이 한 일들 중 기억에 남았던 청소지들에 대한 일화를,후반부에는 직업에 대한 자세한피력과 자신의 삶에서 마주하게되는 다양한 일상의 순간들에 대한 소회들을 수더분하고 유려한 문장들로 소개하고 있더군요.
책을 읽고 나니 영화 "Still-Life"가 떠오릅니다. 아,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이어지는 날이 위험해요. 글로 쓰지 않으면 마음속 생각의 방이 부풀어 올라 터져버릴 수 있으니까 말이죠. 늦은 밤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이후 죽음과 삶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했던 매우 인상적인 영화입니다. 주인공 존 메이는 영국케닝턴 구청의 공무원으로 22년이나 근무를 한 베테랑이죠. 그의 직업은 고립사를 당한 이들의 장례를 치러주고, 추도사까지 직접 작성해 정성스럽게 그들의마지막을 준비해 주는 일이죠.
매일 똑같은 일과, 똑같은 저녁,똑같은 옷차림. 정말로 박제된것만 같은 생기 없는 표정의 그가 고인들을 대할 때만큼은 손끝하나조차 정성스럽게 움직여요. 장례가 끝나면 앨범을 펼쳐서 자신이 보내 준 이들의 살아생전의모습이 담긴 사진을 한 장씩 정리해 붙여둡니다. 그렇게 여러 권의앨범이 22년간의 발자취로 남겨져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집 맞은편에 살던 빌리 스토크라는 남자가 고립사를 당해서 시신이 존 메이에게 인계되어 도착하게 되는데 장례식을 앞둔 시점에서 새로 부임한 상사가그에게 해고 통지를 합니다.
말끔한 양복의 젊고 유능한 그의상사는 쓸데없이 일처리가 느린존이 마땅치 않습니다. 장례식은 살아있는 이들을 위한 거라고 말하며, 죽은 자를 위해서 그렇게정성을 쏟는 존은 구청의 예산을 낭비하는 존재로 이곳에 있으면안 된다고 이야기하죠. 그 말을 들은존은 마지막으로 3일만 달라고 요청을 하고, 자신의 직업상 마지막 장례식에 해당되는 빌리 스토크의 마지막을 최선을 다해서 준비합니다.
여태까지 알코올 중독자인 줄 알았던빌리의 삶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존을 통해 한때는 젊고 활기찬노동자로, 동료의 생명을 살렸던위대한 군인으로, 사랑하는 딸이 있으나 참전 후의외상 후 스트레스로 인해 가족들과 멀어진 아버지로... 한 개인의 삶을 다채롭게 바라보게 만듭니다. 어렵게 찾은 딸에게 아버지의 장례식에 대해서 설명을 할 때, 생면부지의 타인에 대해 이렇게 열성을 다해 노력해 주는 그의 성실한 모습에 매력을 느끼게 된 빌리의 딸이 장례식 후 만나자면서 데이트를
신청하게 됩니다. 존이 갖고 있는 진심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 드디어 등장했구나 싶어 좋아했죠.
하지만 영화는 제가 보았던 어떤 결말보다 더 충격적인 반전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항상 신에게 한 가지를 바라요. 알 수 없는 내일을 위해 오늘의 내 욕망을 참으며 선한 뜻대로 세상이 돌아가는 걸 바라고 마지막엔 그렇게 산 삶에 대한 보상 같은 축 복을 받기를 바라죠. 인내한 시간들에 대해서 언젠가는 신의 축복이 임할 거라는 마음으로 때론
불합리한 현실에 대한 터져 나오는 분노를 달래 가며 살아가죠. 그래서 오늘을 좀 더 버티면서 살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영화 속 신은 어디에 있는가란 질문을 하게 만드는 정말 무자비한 존재입니다. 너무 무심해서 화가 나는. (감독님이 나쁜 거겠죠? 나아쁜 사람, 이래놓고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도 받았어요.)
장례식 후 그녀와의 데이트를 위해 정성스럽게 컵을 고르며 하나하나 준비하던 존은 상점을 나와 버스를 타기 위해 길을 건너다 트럭에 치입니다. 뭐 이래!라는 격한 외침이 제 입에서 순식간에
터져 나왔어요. 그가 정성스레 고른 음악과 추도사, 그리고 그가 찾아낸 빌리의 인연들이 가득 자리를 메우고 외롭게 죽은 빌리를 위해 성대한 장례식이 치러지고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곧 하늘을 향해 텅 빈 눈을 한 채 누워 죽어가는 그의 모습이 교차가 되죠. 그렇게 그는 쓸쓸히 묻히는데, 그의 무덤 앞으로 수많은 이들이 몰려옵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을 이들이 그의 무덤을 둘러싸고 그를 위해 축복을 해주는 걸로 영화는 끝이 나요.
그 마지막 장면을 지켜보고 있자니, <죽은 자의 집청소> 속 한 구절이 떠오르더군요.
"수도꼭지의 아이러니는 누군가가 씻는 데 도움이 되고자 만들어졌지만 결코 스스로 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죽은 자의 집이라면 그가 누구든 그곳이 어디든 가서 군말 없이 치우는 것이 제 일입니다만 정작 제가 죽었을 때 스스로 그 자리를 치울 도리가 없다는 점이 수도꼭지를닮았습니다. 언젠가 죽은 이가숨을 거두고 한참 뒤에 발견된화장실에서 수도꼭지에 낀 얼룩을 닦으며 이런 생각을 했습 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없다고."
영화 "Still-life"의 제목의 뜻이단어적으로는 정물화를 뜻해요. 정말 정물화처럼 생기 없이 주어 진 루틴대로만 살아가던 존이 타인의 마지막을 위해 발 벗고 나서자 개개인들의 삶이제목의 하이픈처럼 연결이 되어생기를 얻고 서사를 이루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갑작스레 사라지게 되어도 그가 남긴 유산들이 연결된 고리는 강물처럼 유기적으로흐르며 저마다의 삶으로 분화 되어가요.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삶이라고 말해주는 영화와 책을 여러분들과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