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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o Nov 08. 2023

Bob and the Trees





서른아홉    


사십이 되면

더 이상 투덜대지 않겠다

이제 세상 엉망인 이유에

내 책임도 있으니

나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무조건 미안하다

아침이면 목 잘리는 꿈을 깨고

멍하니 생각한다

ㅜ가 나를 고발했을까

더 나빠지기 전에

거사 한 번 해보자던 일당들은 사라지고

나 혼자 남아

하루 세 시간 출퇴근하고

열두 시간 일하고

여섯 시간 자고

남은 세 시간으로

처자식을 보살핀다

혁명도 없이 지나가는 서른아홉

지루하기도 하다.


                        - 전윤호













밤이 깊다. 달의 숨소리가 짙어져 창문에 내려앉고, 먼 데서 전해오는 안부처럼 아련한 달빛은 쉽사리 창을 넘지 못하고 까무룩 잦아든 풀벌레 소리와 함께 창가에 매달리는 밤이다. 내내 불던 바람이 잦아든 대신 깊어진 어둠의 여울이 사방으로 흐르고 있는 지금 말똥말똥 눈을 뜬 난 전윤호 시인의 시에 그만 붙들려 버렸다.



혁명도 없이 지나가는 서른아홉의 지루한 날들 속 시인은 시를 쓴다. 아침마다 창가에 머리를 부딪히며 부족한 쪽잠을 자며 출근을 한다. 온몸으로 부딪혀 종을 울린 까치는 은혜라도 갚았다지만 매일 밀폐된 통조림 속 반쯤 무른 옥수수 알갱이처럼 우겨든 채 출근을 하는 이들은 누구를 위한 하루를 여는지 다가가 묻고 싶다. 아니다. 묻기 전에 가만히 도닥도닥 이래야겠다.



 수능을 앞두고 고3 아이들에게 나누어 줄 요점정리본과 기출문제 오답을 위한 프린트를 만들고 나니 집에 갈 기운이 남지 않아 의자에 널브러진다. 내일이란 보이지 않는 시간을 위해 시계초침에 심장이 두근거려 잠이 오지 않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막막해진다. 끊임없이 싸우고 이겨내고, 만들어 가야 할 저들의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이 안타까워서일까?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한다는 스스로의 거창한 이유로 정성스레 제조한 하이볼과 함께 느른하게 소파에 기대 영화를 재생한다. 선댄스 채널에서 만났던 <밥 앤 더 트리즈>. 그림 그리는 밥 아저씨와 동명인 영화 속 밥은 벌목을 해서 생계를 꾸려가는 50대 중년의 가장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오른 거대한 침엽수들과 매일 전기톱 하나로 맞서는 벌목꾼인 그의 일상을 영화는 잔잔하게 시작된다.










 그가 손을 대면 몇백 년이 된 거목들도 거대한 충돌음과 함께 허연 밑동만 남기고 쓰러진다. 흰 눈보라와 함께 쓰러지는 나무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나무의 상태를 가늠하고 지속적으로 톱질을 하며 당기고 밀며 인내심을 발휘해야만 하는 작업 속 끝내 시간을 베어 낸 승리자로 그들을 처리하는 밥이지만 사양 산업이 되어버린 자신 일로 부쩍 힘에 부치는 요즘, 이런 고민들을 아내에게조차 말하지 못한 채 혼자 삭히는 중이다.



 자신처럼 벌목꾼의 길을 걷게 된 아들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끝내 말다툼을 벌이고, 집에 손님이 와도 그들과 대화를 하기보다는 혼자 골프채널을 보거나 아무도 없는 들판을 운전하며 에미넴 버금가는 랩을 쏟아내며 마음을 달래는 홀로 외로움에 골몰하는 인물인 밥. 그에게 유일한 위로가 되어주던 소 진저가 이유 없이 피를 흘리며 아파하자 어떤 유행성 질병에 노출이 되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료를 주고 한참을 쓰다듬어 준다. 그 손길이 얼마나 부드러운지, 그리고 얼마나 따뜻한지 화면 속에서 전해지는 마음이 애틋해 안타까울 정도였다.



 그런데 곧 총을 들고 온 그는 진저를 죽인다. 머뭇거림 없이 총으로 진저를 쏜 그는 이제 정말 무심한 표정으로 가죽을 벗겨내고 살코기와 뼈를 분리한다. 쉼 없이 이어진 작업 끝 지쳐 널브러진 밥의 모습이란. 낭만이란 이름으로 진저를 땅에 묻기보다는 현실적인 선택으로 직접 그 몸에 칼을 대야만 하는 밥의 선택에 격한 감정 이입이 되어 칼날이 지나는 곳마다 내 마음까지 서걱서걱 베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시종일관 어둡던 영화는 팔이 아픈 밥을 대신해 벌목일을 나선 아들이 생각보다 훨씬 더 맡은 일을 잘 해내며 지금의 밥보다는 조금 더 나은 내일을 꾸려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암시로 조금 밝아진다. 아들이 아버지가 쉬는 동안 새로 발견한 벌목지로 밥을 데려가고, 그곳에서 오랜만에 일을 나선 밥은 나무 한 그루와 마주한다. 클로즈업으로 담긴 나무는 가지만으로도 하늘을 가득 채울 정도로 거대하다. 바람에 잔잔히 가지를 흔들며 그를 맞이하는 나 화면을 가득 채우는 장면을 일시정지하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나뭇가지가 하늘에 닿아있는 모습을 참 좋아한다. 나란한 지평선, 그 사이 한 점으로 자리한 나무를 보는 것도 좋아한다. 어릴 적 시골집에 있던 커다란 살구나무에 틈만 나면 올라가 동네를 내려다보던 순간의 평온함이 기억에 남아서인지도 모른다. 바람이 내 발끝에서 노닐고, 동네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집의 위치 덕분에 굵은 가지에 올라가 앉아있노라면 내 발아래 온 동네가 레고블록으로 만들어진 스페셜 한정판처럼 펼쳐졌다. 그곳에서 온갖 꿈을 꾸며 나무와 노래하던 시간의 기억 때문일까? 밥 앞에 놓여있던 어쩌면 꼭 넘어서야 할 현실의 장애물 같은 베기 힘든 거대한 나무들도, 영화의 말미 그를 위로하듯 가지를 흔들던 거대한 나무들도 모두 내 마음에 남는다.



 아들과 헤어져 집에 오던 밥은 트럭의 성에 낀 유리창 사이로 좁아든 시야로 힘들게 운전을 하다가 음악을 틀었다. 쇼미더머니에 나왔다면 상위권에 크 될 엄청난 실력으로 주변인들에게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쏟아내는 밥. 얼굴의 주름과 희끗한 그의 수염은 열정적으로 토해내는 랩 가사와 큰 괴리감을 준다. 그렇게 겨울이 가고 다시 봄이 오는데 눈이 녹아버리자 뜻밖에도 진저의 몸에서 피를 흘리게 만들던 것이 걱정하던 질병이나 신체적 요인이 아닌 울타리의 튀어나온 못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튀어나온 나사못을 쇠톱으로 잘라내고 묵묵히 운전을 하고 가는 그의 눈앞 유리창엔 보석 같은 물방울들이 가득 맺힌다.



 영화의 엔딩크레디트가 나오는데도 그대로 한참을 앉아있었다. 저 조용한 영화가 오늘 이렇게 내 심장을 조인다. 누군가 하루, 모두 다 똑같을 것만 같은 하루에도 이렇게 다른 공간과 다른 선택지로 갈라진 수많은 삶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계의 최전선에서 고군분투 중인 세상의 많은 아버지들의 이름이 더욱 애틋해지는 순간이다. 어느새 저 나이대를 향해 점점 더 빨리 달려가고 있는 거울 속 나를 보며 나를 좀 더 사랑하고 좀 더 아껴보자는 다짐도 하게 된다. 별 탈 없이 지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란 누군가의 위로와 같은 영화로 하루를 닫는다.



영화포스터








* 같이 듣고 싶은 곡


카더 가든 : 나무








축전에 꽃 피었다고 구경나온 토토로들
청짜보 : 똥오기 트리즈







#선댄스영화

#Bobandtrees

#청짜보키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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