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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o Dec 15. 2023

무한육면체로 쓰고 싶은 말









 관계에 대해 생각합니다. 우리들이 맺고 살아가는 인연이 만드는 파동에 대해서 말이죠. 어떤 주파수로 닿아 서로에게 공명하며 자신의 소리를 낼 수 있는지. 이 모든 순간이 늘 경이롭습니다. 인다라의 구슬로 반짝이는 우리들의 그물을 가만히 손으로 만져봅니다.








 가르치는 아이 중 한 명이 타 지역 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제가 사는 곳은 뺑뺑이(참, 정겨운 추억의 언어랄까요?)로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아요. 인문계와 실업계, 이분법의 진로 선택지에서 한번 나뉘고 또 정원수에 따라 다시 합격과 불합격이 나뉘며 고등학교에 진학하죠. 올해도 진로가 갑자기 바뀐 아이들로 인해 원서접수가 혼란스러웠다 들었죠. 이렇게 진로를 아직 정하지 못한 아이라면 첫 번째 거름망에서 벌써 혼란을 겪죠. 내가 아직 무엇이 되고 싶은지 결정도 못했는데 고등학교를 선택함으로써 진로를 강요당하는 이상한 구조에 놓이게 된 셈이죠.


 전 실업계로 진학해 어서 취업을 하기를 바라던 엄마의 바람에 반기를 들고 기를 쓰고 인문계에 입학을 했어요. 보충수업비에 수업료에 급식비까지 다양한 기타 품목들로 이루어진 수업비에 엄마로부터 엄청난 잔소리를 들으며 버텨낸 시기들이 있었죠. 지금은 우리 고여사, '내가 언제 그랬니?' 이러시면서 국회 청문회 출석한 국회의원들 버금가는 코멘트를 제게 시전 하시지만 그때는 한 번씩 꽂히는 말에 휘청대며 방황하던 저였습니다. 합격한 대학교들을 등록금을 내지 못해서 다 놓치고 제일가기 싫었던 곳으로 진학했을 때, 신입생 오리엔테이션도 가지 않고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기 위해 분주했었죠. 그렇게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되어 학교에 가니 이미 무리 지어진 친구들 사이 제가 서 있을 곳이 마땅히 없었어요.


 그때 제 동생이 제게 준 주사위 열쇠고리를 주머니 안에 넣고 다니며 혼잣말을 했었죠. '오늘 짝수가 나오면 버티자! 모르는 친구에게 인사 한번 더 건네자. 홀수가 나오면 발표 한번 더 하자.' 등등의 작은 주문들이었죠. 이유가 필요했던 거 같아요. 그저 지금 내게 주어진 하루를 버틸 단 한 가지의 이유가요. 그렇게 차츰차츰 열어간 시간들이 있어서 무사히 졸업도 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제 꿈도 지킬 수 있었죠. 대학등록금을 내주셨던 분께 그 돈을 갚고 온 날 저녁, 동생과 같이 술을 마셨죠. 동생에게 마음이 빈곤하고 시리던 98년의 3월을 이야기를 하니 자신이 주사위를 준 것도 기억하지 못하더라고요. 그게 저를 버티게 해 준 힘이었는데 말입니다.


 제게 오는 녀석은 본인이 원해서 외부의 고등학교로 진학했지만, 하루하루가 너무도 버거운가 봅니다. 부쩍 어두워진 표정과 살이 내린 얼굴이 안타까워 무슨 일인지 물어봅니다. 가만히 상담실로 데리고 들어가 무슨 일인지 물으니 학교에 가는 게 너무너무 싫다더군요. 친구들도 싫고, 배우는 내용들도 싫고,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다 싫답니다. 다시 이 지역으로 전학 오는 방법은 아이가 간 인문계가 아닌 실업계 고등학교 입학만 가능한데 그런 곳에 가면 강아지풀처럼 보드랍기만 한 녀석이 어떻게 버틸까 하는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와요. 공부만 하기도 버겁고, 진로에 대해 고민만 하는 것도 1년은 걸릴 나이에 왜 이런 고민에 빠져있게 만드는 걸까요? 말을 하다가 터져버린 아이의 눈물샘을 콕콕 찍어 닦아주다 닦아주는 제 손길이 되려 더 미안해서 손이 곱아듭니다. 아직 안 펴졌습니다. 오타가 있다면 그 때문이에요.








 
 선택은, 어떤 순간에서 방향을 결정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가보지 못한 길을 항해 발을 딛는 일이죠. 선구자들은 그 일로 역사서에 남아 오래 회자되겠지만 우리는 우리 인생의, 어떤 누구도 살아보지 못한 날들을 열어가는 선구자들이기에 늘 두렵고 불안하죠.



 우는 아이를 바라보다 간절히 되뇌어 봅니다.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못할 결정들을 종용하는 사회구조에 변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작은 바람에도 사정없이 흔들리는 여린 나무들에게 양치기 소년처럼 분기별로 바뀌는 것만 같은 교육정책들도 답답하기 그지없는데 모든 책임은 당사자가 지라고 하니 얼마나 무책임한 제도이며 또 그것에 순응해 나도 이랬으니, 너도 이렇게 하는 게 맞아라고 말하는 어른인 저는 얼마나 못된 사람인지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그래서 도망치듯 노을 지는 어항으로 달려갔습니다. 오늘은 날개 편 갈매기들도 다 어디로 숨었는지 보이지 않았어요. 그저 부두로 몰려든 물결 위에 세워진 못 보던 부표들만이 작은 파동에도 긴 그림자를 만들며 움직이고 있었죠. 그들이 물결 위로 만들어 내는 선들이 마치 제 상념의 그림자 같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이고 있는 마음의 짐 같았어요. 저도 아직 내려놓지 못한 짐이지만 어른의 옷을 입은 제게는 배에 실리는 바닥짐이 되어 삶의 균형을 잡게 해 주니 다행이라 생각하며 공존 중입니다.








 아직 내려놓거나 균형 잡는 일이 버거울 아이들에겐 무어라 말해 줄 수 있을까요? 제 앞의 작은 도토리, 이 녀석의 내일이 조금 더 편안해지길 바랍니다. 낯선 환경에서 피부를 찔러오는 시선의 창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길, 적응하지 못해 오게 된다면 부디 좋은 선택지가 자리하기를... 마음 깊이 기원하며 바다 앞에 오래 서 있습니다. 제가 건네는 정말 작은 진심 한 조각이 아이에게 주사위가 되면 좋겠습니다. 6면체의 모든 방향에 적힐 문구도 생각해 두었죠.



"졸지 마!"
"별 거 아녀!"
"어린아이? 안 인나?"
"밥부터 먹어"
"뭣이 됐는 혀봐."
"말혀. 혼구녕을 내줄탱게."



아, 쓰다 보니 이것 갖고는 부족해요. 통일신라시대 썼었다는 12면체 주사위로 바꿀까 봐요. 녀석 힘내게요. 무어라 적으면 좋을지 같이 고민해 주세요. 세상 든든한 응원을 기대합니다.










*같이 듣고 싶은 곡


Curtis Harding :
I won't let You down
  
https://youtu.be/8eKPdLUP_w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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