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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o Mar 10. 2024

너의 계절을 기다리며







산다는 건 날개를 잃은 우리가 떠나온 곳을 향해 날마다 오체투지로 걸어야만 하는 일은 아닐까?






 때론 설명하기 어려운 일들이 있다. 저마다의 계절이 언제쯤인지, 얼마나 잠들어 있어야 우화가 가능한지, 네가 꽃 필 때는 언제인지... 나의 계절도 가늠하기 어려운데 그걸 묻는 아이들의 눈동자를 바라보면 가끔 질문의 무게로 내 숨이 막혀올 때가 있다.








 고등학교 1학년 아이가 수업을 마치고 일어서 나가려다 돌아와 내 앞에 앉는다. 수업 시작 전부터 어둡던 얼굴이 안 그래도 신경 쓰이던 차였는데, 다른 아이들 시선도 뒤로 물리고 내 앞에 앉은 아이가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선생님, 요즘 어떤 것에도 집중이 잘 안 돼요. 수학문제도 잘 못 풀겠고, 계속 드는 생각은 제가 무얼 해도 잘 못할 거 같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무것도 못하겠어요. 저 어떻게 하죠?"


 자신이 하는 말을 다른 아이들이 들을 수도 있는데 따로 상담실에서 이야기했으면 하고 요청하는 것도 아닌 공개된 장소에서 말을 꺼내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그만큼 아이가 절실하다는 뜻이기에 가만히 말을 꺼낸 아이의 눈을 바라본다.  



 선천적으로 신경이 예민한 아이다. 어떤 날에는 하늘을 날듯한 표정으로 수업에 집중하다 어떤 날은 세상 무기력한 표정으로 앉아 문제집 위에 혹시 분신사바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내가 확인하게 만드는 녀석이 입학을 한 뒤 느끼는 심리적 부담감이 드디어 쌓이다 폭발하는가 보다.


 글을 쓰는 나는 감수성이 한없이 풍부한 똥오기이지만 현실의 나는 극강의 INTJ형의 인간으로 실패요소가 뻔히 보이는 학습태도와 반복적 실수등을 용납하지 못하는 강철의 조련사다. 어느 정도 아이에 대한 공감적 수용상태가 쌓여있지 않다면 보통의 경우 이러한 하소연은 게으르고 노력하지 않는 자의 뻔한 핑계라 생각해 내 입에서 나오는 조언들은 아이의 게으름과 나태를 단칼에 쪼개놓을 독침들을 우지 기관총처럼 뿜어내며 혼을 분쇄해 버린다. 예리한 연마만이 돌 안에 갇힌 원석을 뽑아낼 수 있기에 달래고 어르다 뽑아 드는 조각칼은 가차 없고, 손속없이 정확하게 의도만큼 영혼의 재정비를 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번에는 가만히 바라만 본다. 아이의 불안감이 뻗어있는 마음의 공간이 너무 크기에 섣불리 어떤 조언이나 질책 등은 삼간다. 무엇이 불안한지, 왜 불안한지를 물어보았다. 등급으로 구별되는 고등학교 생활 전반에서 능력치가 가늠되지 않는 동급생들 속 자신은 어떤 것도 잘하는 게 없는 너무나 평범한 캐릭터라는 생각이 전반에 깔려있다. 게임이라면 아이들이 말하는 현질을 해서라도 아이템 장착이라도 해보고 풀부팅하고 달려들 텐데, 현실에서는 어떻게 할 방도를 모르고 초조함만 더해갈 뿐인 아이에게 학교는 극심한 두통과 위장장애를 동반하는 작디작은 우리가 되어 아이를 옥죄고 있는 모양이다.





 원론적인 이야기만 해버렸다.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던 고등학교 시절의 선생님들이 하시던 레퍼토리를 내가 읊고 있을 줄이야. 수업을 마치고 귀가한 뒤 계속 아이 얼굴과 말이 생각이 나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한다. 아이에게 오일러의 곡선의 미학적 관점을 이야기 한대도 수능 문제를 풀 수 없다면 들리지 않을 것이고, 수열의 완벽한 규칙성을 찾아낼 때의 희열을 말하고 싶어도 일반항을 찾지 못하는 아이에게 자신을 수장시키는 돌무더기 같은 숫자들의 행진은 보기만 해도 멀미 나는 존재이기에 어떤 말로 달래줄 수 있는지 고민하다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나는 도시락 가방 2개를 메고 언덕길을 달리고 있었다. 그런 내 옆에는 어릴 적 집에서 기르던 시고르자브종 중 달리기 시합에서 질 거 같으면 아예 굴러버리던 밍구가 달리고 있다. 쟤는 왜 갑자기 등장한 건지. 굴러도 항상 꼴등이던 저 녀석이 지금 내 옆에 있다는 것이 심히 불안한 징조다. 저 버스를 놓치면 학교에 지각을 할 테고 그럼 또 담임선생님한테 엉덩이 불나게 맞을 것이며 벌칙으로 주어진 청소 등을 하다 보면 또 다른 일과들에 연쇄적인 부진이 일어날 테니 나는 기필코 저 버스에 올라야만 했다. 입에서 쇠맛이 느껴질 정도로 달리다 허망하게 놓쳐버린 버스를 향해 나는 비장하게 도시락 한 개를 던졌다. 그러자 버스 뒤꽁무니 번호판에 맞은 도시락이 흰 연기와 함께 터지더니 연분홍의 벚꽃잎들이 흩어지며 순식간에 주변이 환해졌다. 만개한 벚나무 아래 내가 서 있는 것처럼 황홀경을 느끼던 찰나, 꿈에서 깨어났다. 아... 이런 것이 바로 개꿈인 건지. 그렇지. 제대로 된 개꿈이다.  





 덕분에 평소보다 이른 기상에 나의 메카로 달려왔더니 여유롭게 하루를 시작한다. 청소와 소독을 마치고 아침볕이 두드리는 베란다 창가로 나갔다. 그제 오랜만에 준 물로 잎장이 통통하게 부풀어 오른 나의 꼬꼬미들을 접사렌즈 아래 담는다. 긴 겨울을 이겨 낸 식물들이 나보다 먼저 봄을 알아차리고 준비하고 있다. 묵은 잎을 떨어뜨리고, 아주 조그맣게 돋는 새 순을 있는 힘을 다해 밀어내고 있다.



 너의 봄인데, 네가 준비해 있는 힘 다해 피워내는 봄인데 바라보는 내가 더 설레는 이유는 뭘까? 토실한 토끼 귀를 뽐내던 녀석이 겨우내 엎드려 있다 이제 다시 기지개를 켠다. 한참을 꼬물이들과 눈 맞춤을 하며 기록한 뒤 옮겨놓은 사진을 보다, 한 장을 골라 문자창을 연다.









 마음을 다해 한 글자씩 고르고 골라 적어본다.


 
 00아, 오늘 아침에 찍은 사진이야. 베란다에 있던 녀석이 이만큼 봄 온다고 기지개 켜면서 올라오더라. 기다리고 준비하면 때가 되었을 때 이 녀석들처럼 꽃을 피우고 또 다른 계절을 맞이할 거야.

 얘네가 견딘 겨울이 길고 힘들었어도 이렇게 피어나잖아. 네가 지금 불안해하고 힘들어하는 시간들이 겨울이라면. 그 겨울의 끝은 반드시 올 거고. 그날을 위해서 마음을 다독이고, 불안감을 없애는 연습을 했으면 좋겠다.

 우리 같이 하자. 함께 찾아보자.











 누군가의 계절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이 봄을 부른다. 어디에 있든 가장 먼저 따뜻한 봄을 맞이한다는 기분이 든다면 그건 당신을 생각하는 사람이 보낸 숨결이 담겨서란 걸. 당신은 알고 있을까?












* 같이 듣고 싶은 곡


스텔라장 : 파리는 바게트 사랑빵이래요


https://youtu.be/XtYGk-kvWP0?si=AFApu0A2rEmLOq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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