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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o May 25. 2024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문을 두드리는 서풍의 바람, 스산한 스침 속 거친 숨소리가 들립니다. 서걱대는 시트의 마찰음 사이 다른 결의 호흡이 섞여드는 공기의 밀도에 심장이 두근거리죠. 얼굴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그들이  나누고 있는 서로의 온도가 제게 전이된 듯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릅니다. 솜털이 보스스 일어나며 온몸의 감각이 깨어납니다.

"뿌꾸와pourquoi?

 가라앉은 남자의 목소리에 담긴 머뭇거림, 걱정, 염려를 읽습니다. 왜냐고 묻는 남자의 물음에 조그맣게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여인의 슬픈 눈빛이 보입니다. 아누크 에메의 높은 콧날과 짙은 눈망울이 눈앞에 있는 장이 아닌 자신의 곁을 떠나간 남편을 떠올리며 흐려지는 것이 보이죠. 사라진 사랑에 대한 그리움이 두 연인 사이를 떠돌며 그들은 한동안 침묵 속에 빠지게 됩니다.  


 잊히지 않는 영화 음악과 함께 소음까지도 배경이 되던 녹음으로 클로드 를루슈 감독에게 20대 후반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게 한 영화 <남과 여>(1966)의 한 장면입니다. 제게 사랑의 떨림에 대한 장면을 말해보라면 영화 <연인>에서 제인마치와 나란히 앉아있던 양가휘의 손끝이 닿을 듯 말 듯 스치는 순간과 이 장면을 꼽게 됩니다. 영화 속 주인공 장과 안느, 그들의 사랑은 어떻게 완성되어 갈까요?








 클로드 를루슈 감독은 <남과 여>를 주제로 총 3편을 제작합니다. 그리고 마치 두 거장의 대화처럼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아무르>(2012)가 2편과 3편 사이에 발표가 됩니다. 끌림과 밀어냄, 그리움과 죄책감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감정들이 한 편의 뮤직비디오처럼 담겨있던 <남과 여>의 남자 주인공 장 루이 트린티냥과 아누크 에메 대신 남자 주인공 장은 그대로, 여주인공은 같은 이름인 안느이지만 엠마누엘 리바로 바뀐 채 나오는 <아무르>에서 보통의, 어쩌면 모두가 피하고 싶을지 모르는 사랑의 끝을 보여줍니다.



 냉정한 시선으로 정평이 난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아무르>에서는 어떤 음악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엔딩 크레디트에서조차 음악이 흐르지 않는 영화는 철저한 침묵 속에서 등장인물들에게 집중하게 만들죠. 젊은 시절 음악가였던 두 노부부는 아내 안느가 뇌졸중으로 인해 반신불수가 되어 남편인 조르주가 힘겹게 간호를 하는 일상을 보여줍니다. 병원이나 요양원에 절대로 자신을 보내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 안느의 말 때문에 딸의 비난을 감수하며 안느 곁을 지키는 조르주는 점점 지쳐가죠.


 화장실 가는 일도 혼자서는 할 수 없어 그녀를 부축해 가는 모습은 서로의 호흡이 반주가 되어 그들만의 느릿한 생의 왈츠를 추고 있는 듯 슬프게 다가옵니다. 축 처진 몸의 곡선, 버석거리며 일어난 주름살 가득한 살갗의 허물어짐. 노년의 사랑은 언제 떠날지 모르는 서로에 대한 염려와 불안으로 가득합니다. 한 폭의 묵화처럼 펼쳐지는 그들의 일상에서 김종삼 시인의 시가 떠오릅니다.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 <묵화> 전문,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안고 달래주는 모습이 음악도 없는 영화 속 장면 뒤로 그려집니다. 우리 주변에 지금 이러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분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그들의 느릿한 시간은 뇌졸중의 후유증으로 안느에게 치매증상까지 찾아오며 위기에 처합니다. 안느의 존엄과 그녀의 고통스러운 날들을 지켜주고 싶었던 조르주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십자가를 어깨에 집니다. 그의 선택 앞에 저는 가만히 얼굴을 감쌌더랬죠. 그리고 외롭게 남아 집안으로 찾아든 비둘기를 이불보로 감싸 소중히 감싸안는 모습을 바라보았어요. 마치 자신이 닫아 둔 안느의 기억처럼 안아 든 그의 무너진 어깨선을요. 








 계절이 지나갑니다. 생의 비약적인 성장이 이루어지는 계절을 따라 피어나는 수많은 꽃들이 바람에 흔들려요. 흔들리며 피는 생들이 색을 잃고 떨어지는 가을에서 겨울로 이어지는 시간들이 꽃잎에 머무는 햇살 사이 그려지네요. 탄생과 소멸, 만남과 이별, 사랑과 상실. 우리 삶에 찾아드는 수많은 존재의 순환 사이에서 우리가 필연적으로 겪어가며 때로는 가슴에 묻고 그리워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장과 안느가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 생의 허무까지 치유할 수 있는 사랑. 여러분은 마음속에 그런 이름이 있습니까?
















* 같이 듣고 싶은 곡


영화 남과 여(1966년) o.s.t


https://youtu.be/9tMd8n_eXQU?si=DYTqdHXOfqgptbb4











#남과여1966

#아무르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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