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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o Aug 09. 2024

안야, 그녀의 시선 속으로



Anja Niedringhaus


 : born 1965 in Hoxter, Germany,

died 2014 in Khost, Afghanistan.







 한 장의 사진이 세상을 바꿉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앞으로 살아갈 시간에 대한 기준도 바꿀 수 있죠.


 그런 사진들을 골라서 상을 수여하는 "퓰리처상"에서도 역대 수상작들을 전시하는 퓰리처 사진전이 해마다 열리죠. 몇 해 전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회는 특히 안야 니드랑하우스의 특별 회고전도 함께 열렸었죠. 제가 그녀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건 연을 날리는 소년의 모습을 담은 사진 한 장 때문이었어요.









 파키스탄 분쟁지역에서 그녀가 찍은 사진이죠. 이 한 장의 사진을 보고 작가가 궁금해 검색을 했습니다.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이미지들을 통해 저는 모자이크처럼 이미지들을 맞춰가며 그녀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그녀는 제 마음에 스며들었죠.



"분쟁의 본질은 같다. 영토, 권력, 이념을 위해 싸우는 양 진영이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





 그녀가 담은 세상입니다. 이 말로 나뉜 진영들과 그 사이에 놓인 사람들. 특히 어린아이들, 그중에서도 여자 아이들이요. 이분된 공간에서 선택권은 사라진 채 고통스러운 삶의 가장자리로 내몰리고 잊힌 이들을 가까이에서 바라보고 기록해 온 안야 니드랑하우스.



 그녀는 여성 인권이 사라진 공간에서 불안과 보이지 않는 음습한 손길들의 위협으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여인들에게 자립할 힘을 불어넣어줍니다. 전쟁의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아이들에게 그럼에도 빛나는 너의 미래가 있을 거란 걸 알려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총을 들고 서로를 겨누고 있는 이들에게는 당신과 같이 총을 겨누고 선 이가 같은 문화를 나누고 자라 온 공동체 일원이란 걸 잊지 말라며 사진을 통해 일깨워 주었습니다.







"나의 직업은 사진기와 심장으로 사람들의 용기를 취재하는 것이다."

                             - 안야 니드랑하우스



 그들에 대한 섣부른 선입견이나 과한 연민으로 인한 포장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그들의 삶을. 가장 아름다운 서사기법으로 기록해 온 안야의 사진들이 한 장, 한 장 제게 스며듭니다.



 그녀는 고향의 지방신문사에서 17살 때부터 프리랜서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대학에서는 독일 문학과 철학, 저널리즘을 공부했죠.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순간을 취재를 하기도 했으며 이듬해 EPA통산(프랑크푸르트지부)의 사진기자가 됩니다. 이후 2001년까지 EPA의 수석 사진가로 활동하며 유고분쟁을 취재하다 2002년부터는 AP통신으로 이직하여 중동지역의 분쟁과 갈등을 중점적으로 취재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국제적인 시사문제 외에도 스포츠 뉴스를 취재하는 일을 즐겼다고 하는데, 그녀가 담았던 여러 가지 스포츠 명장면 중에 정말 좋아하는 사진이 있습니다. 자메이카 육상선수가 자신이 달려야 할 트랙을 가만히 응시하며 서 있는 모습이죠. 그녀가 달려야 할 앞으로의 몇 분을 응시하며 서 있는 모습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여태까지 연습하며 흘려 온 그녀의 땀방울들처럼 생생하게 다가왔어요. 이렇게 매혹적인 인물사진 본 적 있으세요?




  2001년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서 이슬람 무장 정치 단체인 탈레반의 몰락을 취재하며 중동지역 취재에 몰두하던 그녀는 2005년 퓰리처상 수상과 함께 국제여성미디어재단으로부터, "Courage in Journalism Award(용기 있는 언론인)"상도 받습니다. 꾸준한 활동이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는 순간이었죠.




 2014년 4월 4일, 안야와 동료들은 아프가니스탄의 대선을 하루 앞둔 날, 수도인 카불 남쪽의 Khost지역을 둘러보게 됩니다. AP통신의 오랜 동료인 Kathy Gannon기자와 함께 기자단의 안전을 위해 투표용지를 운반하는 호송대열에 합류해서 같이 이동을 하게 되었죠.





카불 지역에서 촬영한 안야의 흑백 사진들






 아프가니스탄 최초의 민주적인 방식으로 치러지는 선거취재에 나선 안야와 동료들은 검문소를 지키던 탈레반 경찰 중 한 명에 의해 살해당합니다. "신은 위대하다."를 외치며 그는 총을 난사했고, 가족들의 죽음이 NATO군 때문이라 생각한 이 테러범은 서방의 기자들을 죽이는 것이 자신의 가족들의 원한을 풀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뒷좌석에 앉아있던 그들에게 더욱 집중해서 총탄이 쏟아졌고, 이 일로 그녀는 세상을 떠납니다.



 유품으로 남겨진 그녀의 구멍 뚫린 카메라가 제 눈에 화석처럼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나는 화약 냄새나는 사진들을 찾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더 많은 것들을 전달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오랜 전쟁 기간 동안 이곳의 민간인들이 어떻게 생존하고, 일상을 영위하는지를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그녀의 사진 속에는 전쟁을 겪으면서도 잃지 않은 인간의 희망과 마음의 온기, 내일에 대한 희망이 반짝입니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스스로의 존엄을 잃지 않는 이들에 대한 그녀의 마음 깊은 찬사가 사진에 담겨있죠.



 얼마 전 우크라이나 선수들이 펜싱 사브르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장면을 보았습니다. 파리 올림픽 펜싱 사브르 결승전에서 한국 팀과 맞붙은 우크라이나 팀이 42-45로 승리하며 금메달을 차지했습니다.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올하 하를란은 "실력이 뛰어난 한국 팀과 결승을 치를 수 있어 즐거웠다"라고 말하더군요.  하를란의 말은 올림픽을 하는 이유를 떠올려 보게 만듭니다. 진정한 스포츠맨십이 무엇인지도요. 특히나 러시아 선수와의 악수를 거부한 탓에 경기자격을 박탈당해 올림픽 출전이 불투명했던 올하 하를란이었기에 그녀의 역전승은 아직도 진행 중인 전쟁에서 국민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고 합니다. 환하게 빛나는 그녀의 아름다운 미소가 눈에 선합니다. 다시 안야의 글과 사진이 제 기억 속에서 이렇게 글로 기록되게 된 것도 그 선수의 눈물 어린 미소 때문이었죠.

 


박지환기자 사진


서울신문 뉴스기사 발췌







"당신의 운명이 되어 줄 대양의 단 한 방울의 물, 당신의 인생에서 오직 한 번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호프 레만




 안야의 가방 속 메모 사이 기록되어 있던 글귀입니다. 대양의 단 한 방울. 인생에서 오직 한 번만 찾을 수 있는 한 방울을 발견했기에 달려갔을 그녀의 걸음이 영원히 잊히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아직도 전쟁이 진행 중인 안야의 프레임 속 세상에 갇혀있는 그들의 세상에도 진정한 평화가 함께 하길. 마음 다해 기원합니다.













* 같이 듣고 싶은 곡


Beethoven, Emperor

- Adagio un poco mosso. 임윤찬&광주시향연주

https://youtu.be/B0jls9_kGPU?si=bM_IIhOga8HApZ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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