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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o Nov 26. 2024

빌트, 우리가 지어 올린 모든 것들의 과학

로마 아그라왈







 지난봄 주산 벚꽃축제를 보러 갔었죠. 보령댐으로 이어지는 길 앞쪽에 설치된 전망대로 나와 몸을 오른쪽으로 기울이면 마을을 지나 길게 이어진 길이 한눈에 보입니다. 45도의 각도에서 길의 곡선이 더 아름답게 그려져요.  신부가 걷는다는 버진로드처럼 꽃잎 조명이 밝게 켜진 눈부신 벚꽃길을 감상할 수 있죠. 이때쯤에는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벚꽃을 구경하죠. 길 가에 옹기종기 모여 기념사진을 찍고 간이 매장에서 파는 다양한 먹거리도 먹어보고 흥성거리는 축제 현장에서 울려 퍼지는 구성진 각설이 타령 노래에 어깨춤도 추며 다녀요. 개화 시기 예측이 어려워진 덕에 축제날을 잡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란 말도 들었죠. 이런 축제가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혼자 곰곰하며 보령댐 둘레길로 돌아 나오는데, 댐을 보고 흠칫 놀라 멈춰서 버렸어요.




 여태까지 제가 본 수위 중 가장 낮은 상태였거든요. 이탈리아에서도 가뭄으로 인해 저수지 안에 잠겨있던 고대 석상이 드러났다죠. 석상의 발 밑에 가뭄으로 인해 고통받는 당시 사회 모습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있었다고 하는데, 댐 바닥에 죽은 채 누워있는 고사목이 제 눈에는 고대 문자의 경고 같았어요. 물이 없으면 3일도 버티기 힘들다고 하는데, 아침까지 머리를 감고, 화장실에 다녀오고, 식사를 준비하고, 청소를 하는데 아무런 불편함 없이 썼던 물이 이렇게 다 바닥나 있다는 것이 충격이었죠. 우리는 어떤 대책을 갖고 물부족 시대를 준비할 수 있을까요?



 <빌트, 우리가 지어 올린 모든 것들의 과학>이라는 책에서 그 해법을 엿봅니다. 구조 공학자 로마 아그라왈은 물리학자에서 구조공학자로 전과를 한 뒤 2019년 당시 서유럽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더 샤드(The Shard)를 포함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더욱 다양하게 만들고 있는 사람이죠. 그녀의 책에서 싱가포르 사람들의 현명한 수자원 확보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2020년 싱가포르에 갔을 때, 가든스 바이 더 베이라는 거대한 식물원과 센토사섬의 유니버셜 스튜디오, 시원하게 물을 뿜고 있던 머라이언 파크의 거대 사자상, 싱가포르 플라이어의 눈부신 야경, 클락키의 강변 산책로까지 모두 아름답고 화려해 눈을 뗄 수 없었더랬죠.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며 하늘로 쏘아 올리는 축포 같은 분수쇼도 백미였어요. 도시의 이미지가 모두 풍족하고 반짝거리더군요. 올드타운에서도 고풍스러운 색감들이 돋보이는 곳들이 많아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렀어요. 그런데 이 도시에 천연 수원이 없다는 걸 나중에 알았어요. 최초의 수자원이 개울과 우물이었는데 인구가 1000명 일 때는 이걸로 버틸 수 있었다네요. 1819년 스탬퍼드 래플스(Stamford Raffles) 경이 대영제국의 일부로 이곳을 편입시킨 뒤 급증하는 인구로 인해 이들을 위한 수자원 확보가 이 나라의 가장 큰 사업이 되었답니다.









 1927년 이웃 국가인 말레이시아와 합의를 통해 조호르강을 임대하는데 가공하지 않은 물을 강에서 끌어올려 수처리 한 뒤 파이프를 통해 싱가포르로 공급해 왔죠. 하지만 일본의 침공으로 파이프가 파괴되자 2주 분량의 물 밖에 남지 않은 상태로 그들과 맞서 계속 싸우다 그만 굴욕적인 항복을 하고 말았죠. 이런 역사를 갖고 있는 싱가포르인들이기에 그들에게 물은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한 국가적으로 관리하는 자원이 됩니다. 그리고 또 하나 당면한 큰 문제는 강물의 임대협약이 2061년에 만료될 예정이라는 것이죠. 인간 생활의 필수요소인 물을 타국에 의존해야 하는 불안전한 상황에서 싱가포르 국립수자원공사는 '국가 4대 수돗물'이라는 전략을 개발하죠.



 연간 강수량이 2미터가 넘는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 첫 번째 국가 수돗물 '빗물'을 모읍니다. 상수원을 오염시키는 공해기업을 이전하고, 운하 네트워크를 구축해 싱가포르 면적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장소들에서 빗물을 모으고 저장하고 있죠. 두 번째는 말레이시아에서 수입해 오는 물이고, 세 번째 국가 수돗물이 재활용 또는 재생된 물이죠. 가정, 식당, 사업장에서 폐수를 모아 미세한 막인 멤브레인으로 불순물을 거르는 공정을 거친 물들입니다.



 뉴워터라 부르는 이 물은 반투과성 막을 거쳐 고형물, 세균, 바이러스, 원생동물 포낭 등을 걸러내는 '미세 여과'를 거칩니다. 이후 소금과 유기분자가 녹아 있는 물을 재활용하기 위해 '역삼투법'을 통해 이 물질들을 제거하죠. 담수가 소금물과 섞이는 삼투 현상은 저절로 일어나지만 역삼투압은 쉽지 않아요. 큰 압력으로 소금물을 눌러 다시 반투과성막을 통과해야 하거든요. 그림 보시면 쉽게 이해되실 거예요.



p.235-236 삽화




 역삼투 과정을 통해 최대 99퍼센트까지 제거된 오염물질 사이 아직 남아있는 몇몇 세균이나 원생동물을 자외선 소독으로 처리한 뒤 드디어 필요한 곳으로 보내 사용합니다. 2003년 싱가포르 37번째 건국기념일에 처음으로 대중에게 공개되며 시음식을 한 뉴워터의 생산과정이 흥미롭죠? 무려 10만 건이 넘는 테스트를 통과한 뉴워터는 세계보건기구의 식수 시준보다 더 엄격한 관리를 받는 중이랍니다. 근원이 무엇이었든지 간에 이 시스템에 들어오면 무조건 환골탈태인 거죠.



 마지막 네 번째 국가 수돗물은 지구상 70% 이상의 면적을 차지하는 바닷물입니다. 싱가포르는 투아스에 최초의 해수담수화 시설을 설치하고 생산된 순수한 물에 필수 무기질을 첨가해 가정과 산업 시설에 공급하죠. 3 번째와 4 번째 국가 수돗물이 전국 물 수요의 50퍼센트 이상을 충당하고 있으며 2060년에는 최대 85퍼센트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죠. 싱가포르는 진보된 기술로 생존문제의 자치권을 획득했어요. 꾸준한 노력과 다양한 과학기술의 시도로 말이죠. 이제 어느 나라든 그들에게 물을 갖고 협상을 할 수 없죠. 오히려 우리가 그들에게 물을 나누어 달라 부탁을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연간 강수량이 여름에 집중되어 물 부족 국가로 분류되는 우리나라에서도 주목해 보아야 할 점이라 생각합니다.




 

 <빌트, 우리가 지어 올린 모든 것들의 과학>은 층, 힘, 화재, 벽돌, 금속, 바위, 하늘, 땅, 지하, 물, 하수도, 우상, 다리, 꿈. 총 14개의 제시어를 통해 다양한 인류 문명 속 공학구조의 역할에 대해 톺아보고 있죠. 특히 미국의 브루클린에 설치된 현수교를 완성하는데 큰 역할을 한 에밀리 워런 로블링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죠. 단순히 공학과 건축이 어떤 것들이 좋다는 설명이 아닌 공학기술이 건축물에 접목된 이유와 그러한 시도가 갖고 있는 의미에 대해 말하며, 우리가 과학을 배우고 공학에 대해 관심을 갖아야 할 이유를 강조하고 있어요.






내 생애를 훨씬 뛰어넘는 미래를 생각해 본다면 내 후손들이 물속에서 깨지지 않는, 종이 두께의 유리로 만들어진 유선형 공간에 사는 것을 상상하게 된다. 미래에는 '슈퍼 재료'인 그래핀으로 다리를 만들 것이므로 오늘날보다 10배나 더 먼 거리도 건널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필요에 맞게 모양을 만들고 바꿀 수 있는 생물학적 재료를 이용해 집도 '성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오래된 빅토리아풍 직사각형 벽돌 바닥이 팔 벌려 환영하는 집에 들어선다. 나는 불을 끄고 (뉴욕에서 가져온 다시 꾀죄죄한 고양이 봉제인형을 여전히 안고) 졸면서 미래의 비트루비우스와 에밀리 로블링이 무엇을 만들어낼지 궁금해한다.

 상상력만이 가능성을 제한한다. 우리가 무엇을 꿈꾸든 엔지니어는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빌트, 우리가 지어 올린 모든 것들의 과학>, p. 319 중에서














 아이들 대학 진학과 관련한 뉴스들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상위권 등급의 학생들의 선택지가 갈수록 더 좁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 많은 선택지와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는 아이들이 좁은 문틈 사이로 몰려가 자기 몸을 던지고 있는 것만 같아요. 그들의 눈이 열리게 만들 수 있는 다양한 시도 중 하나가 이런 책들을 소개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건설하고, 만들고, 유지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일들에 대한 관심을 갖는 아이들이 많아지면 좋겠어요.



 로마 아그라왈의 열정으로 자신이 속한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 어릴 이채로 좁은 문 틈이 아닌, 벽 너머의 세상을 꿈꾸는 어린아이들을 저는 바라고 꿈꿔 보렵니다. 여러분도 꿈꾸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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