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드 칼리의 그림책 <적>을 펼칩니다. 서로를 겨누는 총구와 깊게 파인 참호. 포성이 오가는 전쟁터에서 그들은 서로의 얼굴이나 모습은 모른 채 매일 총을 쏘고 대포를 쏘죠. 계절이 흘러갑니다. 그들은 그 안에서 세상으로부터 잊혀 갑니다. 생존의 신호는 상대방이 피워 올리는 모닥불이죠. 먹을 것은 점점 바닥나고 있습니다. 그는 참호에 들어오기 전 나라에서 준 교본에 적힌 적에 대한 글을 읽어봅니다. 도대체 저들이 누구인가에 대해 집중하지만 더 이상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그는 야수입니다. 동정심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는 여자와 어린아이들을 죽입니다. 아무 이유도 없이 말입니다. 바로 그의 잘못 때문에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그 사실을 모를 만큼 나는 어리석지 않습니다. 전투 지침서에서 다 읽었으니까요.
몇 주 아니 몇 달째 대포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전쟁이 끝났는지도 모르겠고, 적과 나 이렇게 둘만 남아 전쟁을 치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죠.
때로는 더 이상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가 저 별을 바라본다면 깨달을 수 있을 텐데요. 별을 보면 누구나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되니까요.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처음 전쟁을 시작한 이들에 대한 의문까지 들기 시작할 즈음, 드디어 한쪽 병사가 어둠을 지원군 삼아 참호 밖으로 기어 나옵니다. 마침 알맞은 변장도구도 있어 작은 야생늑대 한 마리가 된 그는 상대편 참호로 다가갑니다. 오랜 시간 총구만 겨누던 상대를 알아야만 했죠. 자신이 가족을 떠나와 지키고 있는 이 구역의 침입자를 몰아내고 승자가 되어 어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 상대편 참호 안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가 이쪽으로 오는 동안 상대편 참호 속 군인도 그의 참호를 향해 오고 있던 것이었죠. 이 둘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이 책을 읽고 난 뒤 어리석고 맹목적인 적의가 향한 화살 끝이 우리를 겨눌 때 우리들이 보인 모습들을 가만히 떠올려 보게 됩니다. 한 아버지는 군인인 아들에게 총의 공이를 빼어 갖고 있으라고 말했다죠. 누군가는 대포 앞 길을 막고 주저앉아 더 이상 진군하지 못하게 했다죠. 누군가는 담을 넘어 투표를 하러 달려갔다죠. 누군가는 자전거를 타고 국회로 달려갔다죠. 누군가는 총부리를 움켜쥐고 쏘아보라 외쳤다죠. 누군가는...
적을 처단하라는 명령이 내려오기를 기다리며 인간성을 상실해 가던 한 병사의 이야기의 결말과 그가 취할 행동에 대한 답을 저는 3일 전의 우리들에게서 찾았습니다. 옳다고 믿는 일에 대해 목소리를 내며 달려가 행동하는 수많은 시민들을 보며 말이죠. 있던 자리를 박차고 나와위험을 무릅쓰고 달려가 직접 확인하고 막아선 시민들.우리들의 의지나 선택과 무관하게 처하게 된 상황 속에서 폭력적인 사태가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한 수많은 시민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 책 속 우화 같은 전쟁터의 상황이 황망한 사건을 만나게 된 지금 우리의 현실과 나란히 병치됩니다. 성숙한 시민의식을 갖고 있는 병사들이기에 참호 밖으로 나온 우리들이 만날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을 품으며 책장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한 편의 소설 같은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연설문을 여러 번 정독했습니다. 어릴 적 썼던 일기장 속 작은 질문에 지금 그녀가 답합니다.
지난해 1월 낡은 구두 상자에서 찾아낸 중철 제본에서, 1979년 4월의 나는 두 개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었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사랑은 무얼까?
한편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2021년 가을까지, 나는 줄곧 다음의 두 질문이 나의 핵심이라고 생각해 왔었다.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이 두 질문 사이의 긴장과 내적 투쟁이 내 글쓰기를 밀고 온 동력이었다고 오랫동안 믿어왔다. 첫 장편소설부터 최근의 장편소설까지 내 질문들의 국면은 계속해서 변하며 앞으로 나아갔지만, 이 질문들만은 변하지 않은 일관된 것이었다고. 그러나 이삼 년 전부터 그 생각을 의심하게 되었다. 정말 나는 2014년 봄 <소년이 온다>를 출간하고 난 뒤에야 처음으로 사랑에 대해- 우리를 연결하는 고통에 대해- 질문했던 것일까? 첫 소설부터 최근의 소설까지, 어쩌면 내 모든 질문들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그것이 내 삶의 가장 오래고 근원적인 배음이었던 것은 아닐까?
사랑은 ‘나의 심장’이라는 개인적인 장소에 위치한다고 1979년 4월의 아이는 썼다.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속에 있지.) 그 사랑의 정체에 대해서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 주는 금실이지.)
다비드 칼리의 책 <적>과 한강 작가의 수상연설을 통해 마음을 다시 다독여 봅니다. 우리의 마음을 이어주는 언어의 실로 진정한 평화와 자유. 정의. 행복. 등등의 단어들을 수놓습니다. 비록 고통스러운 현실을 직시하며 울분을 참아내야만 하는 인고의 시간이지만요. 우리가 한 땀, 한 땀, 수놓는 글자들이 서로의 마음을 잇는 다리가 되고, 서로를 함께 묶어주는 울타리가 되어 흔들리지 않고 다시 일상을 되찾고 더 밝은 내일을 꿈꿀 수 있는 시간을 확신하면서 다시 힘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