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빛

by Bono






새벽이 머물다 가는 시간이 빨라졌다. 알폰소 무하의 그림 속 Dawn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곡선을 그리며 누워있는 아름다운 여인이 막 잠에서 깨어나 혼몽한 표정으로 밝아오는 햇살을 마주할 때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배경의 미묘한 사암빛의 그라데이션으로 시간을 표현한 화가의 능력에 새삼 감탄하던 순간이었다.




알폰소 무하의 Dawn



오늘 새벽 난 밝아오는 태양을 바라보는 옆모습, 각도만을 아주 살짝 흉내만 내보며 아침햇살을 마주한다. 도시가 깨어나기 직전의 긴장감을 오롯이 누려본다. 곧 무대의 막이 오르듯 고요하게 어둠을 밀어내며 세상을 밝히는 빛 앞에서 루이스 보르헤스의 <그림자에 대한 찬양> 한 구절을 적어본다.







거울을 마주하지 않아도
거울의 법칙을 이해하게 되고,
잠에 들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그저 기꺼이 어둠을 받아들이게 된다.

하루는 더 이상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마치 신이 하나씩 건네는 선물처럼 다가온다.

나는 이미 본 것들을 다시 보고,
이미 들었던 말들을 다시 듣고,
이미 했던 말,
이미 써 내려간 문장들을
되풀이해서 마주한다.

세월은 내게
오직 단순한 것들만 남겼다.

불완전한 몇 마디 말,
몇 권의 책,
몇 사람의 얼굴들,
그리고 잊히지 않는
몇 곳의 장소들.

나는,
지금,
그 모든 것을
사랑한다.


- Jorge Luis Borges, Elogio de la sombra (1969) 중











시력을 잃고 깊은 어둠 속에서 더 이상의 새로운 빛은 만나지 못한 채 살아가던 그. 머릿속에서 어렵게 재생해 가던 지난 시간들로 버텨 오던 그가 말년에는 그마저도 여러 번 걸러내어 몇 개의 순간들만 남겨놓았고, 그리고 그것들을 가슴 깊이 사랑한다는 고백을 한다. 체념이 아닌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진심 어린 고백 앞에 나는 그만 먹먹해지고 말았다.


지금 내가 볼 수 있는 모든 것들에, 새로 저장할 수 있는 모든 빛들이 한없이 감사하게 되는 순간이다. 꽃이 진 자리에 층위를 더하는 녹빛의 순연함에 마음을 뺏긴다. 눈부시다. 자신이 때를 알고 있는 힘껏 틔워낸 생명은 그저 찬란하다. 당신과 나의 한 때도 이렇게 찬란할 수 있기를, 마음 다해 기원해 본다.


















* 같이 듣고 싶은 곡


첼로댁 - Song from a Secret garden

https://youtu.be/MfwJ4X7lx4k?si=vAOkkCPU0ACY7JQ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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