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

16화

by Bono





사선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빛의 화환을 만든 자리에 앉아 있는 아이. 시무룩한 얼굴로 무릎을 감싸고 왼쪽 볼을 무릎 위에 올려두고 있다. 앞뒤로 흔드는 몸의 움직임이 잦아들 즈음 목소리가 들린다.


“그래서 몽아, 넌 어떻게 하고 싶은데?”


목소리가 들리자 아이는 움직임을 멈추고 양반다리로 고쳐 앉아 선언하듯 말을 한다.


“난 나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싫으면 싫은 거지. 왜 내가 서희한테 맞춰야 돼? 걔가 나 좋아한다고 나도 좋아할 이유는 없잖아.”


입술을 삐죽 내밀고 고개를 몰로 돌린 아이는 생각만 해도 싫은지 미간을 찌푸리며 한숨을 쉰다.


“표현 방식이 중요하겠지. 상대방의 마음을 거절하는. 사람들 앞에서 네가 싫다고 표현하는 마음을 다 보여주지 않아도 되잖아. 서희는 상처받지 않을까?”

목소리에 아이는 생각에 잠긴다. 보드란 머리칼을 타고 내려와 무릎 위 백색의 인장을 만드는 빛, 그 아래 아이는 한없이 순결하고 아름다운 존재처럼 빛나고 있다.


“상처받는다는 건 뭔데? 어떤 느낌이야?”


감정의 깊이나 결에 대해 아이는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영역을 상상하는 듯 눈매가 깊어진다.


“엄마나 아빠가 몽이 네가 준 편지를 일이 바빠서 조금 있다가 보겠다고 미뤄놓을 때, 빨리 오셨으면 좋겠는데 늦게 오실 때, 또는 오늘처럼 동생 만들어야 한다고 아빠가 너한테 혼자 놀고 있으라고 할 때. 너는 어떤 기분이 들어?”


질문을 듣자 아이의 눈에 순식간에 물기가 차오른다. 분한 듯 아랫입술을 깨물고 콧김을 내뿜던 아이는 발을 앞으로 쭉 뻗고 팔다리를 퍼덕이며 말을 한다.


“정말 좋지 않아. 동생은 있었으면 좋겠지만, 왜 내가 그 자리에 없어야 돼? 나랑 똑같은 아기가 태어난다는 건데. 아, 나는 지금은 엄마 쭈쭈 안 먹어. 그거 꼭 알아둬.”


단호하게 말을 하며 허공에 X자를 긋는 짧은 팔다리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목소리는 아이의 행동에 부드러운 웃음소리를 낸다.


“그치만 나도 진짜 진짜 궁금하잖아. 어떻게 여기 오는지. 엄마 말로는 미끄럼틀이래. 엄마 뱃속에 있는 나팔에서 미끄러져야 된대. 그럼 어떻게 미끄럼틀을 타는지 나도 봐야 알 거 아니야. 아빠는 나빠. 맨날 중요한 건 혼자만 하려고 그래. 엄마랑만. 내가 필요 없는 거 같아. 그럴 때는.”


순식간에 쏟아내는 아이의 화난 말투를 듣더니 부드럽게 어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나중에 알게 될 일들이라 못 볼 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돼. 생각해 보니까 지금 몽이가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어서 슬프잖아. 필요 없는 사람 같다고 말하는 네 마음이 너무 아프지? 그런 게 바로 상처를 받는 느낌과 비슷해. 네가 서희한테 나는 너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을 아이들 많은 데서 해버리면 서희는 그런 감정을 더 크게 느낄 거고. 그럼 더 많이 아프지 않을까?”


목소리를 들은 아이는 어쩌면 알 것도 같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곧 부드러운 음악이 흐른다. 슈만의 트로이메라이가 아이를 감싼다. 포근하게 번져오는 음악에 솟아있던 어깨가 내려오며 곧 한결 차분해진 표정으로 등을 대고 눕는다.

“있지, 나는 지금이 너무 좋아. 이렇게 말하고 나면 배도 안 아파. 기분이 좋아지고. 맨날 이러고 있으면 안 돼?”


음악이 잦아들고 아이 얼굴에 쏟아지는 햇살을 막기 위해 창문의 버티컬이 내려온다. 조명의 조도가 조금 더 환해진다. 방 안의 답답했던 공기는 자동 환기시스템을 통해 순환이 되는 과정들이 아이도 모르게 이루어진다. 따뜻한 요람에 누운 갓난아이처럼 편안한 표정으로 몸을 좌우로 움직이며 기지개를 켜는 아이에게 목소리가 들린다.


“이건 너와 나와의 비밀 약속이잖아. 아무도 모르게. 몽이에게 도움이 필요하면 나타날 거야. 나는 어디에도 있으니까. 하지만 엄마, 아빠는 몰랐으면 좋겠어. 친구 하지 말라고 하면 어쩌지?”


“아! 그 생각은 못했어. 내 친군데. 허락까지 받아야 한다니. 일단 내가 힘을 더 길러볼게. 전우치를 내 친구라고 큰소리로, 완전 큰소리로 말할 수 있는 날까지. 나, 키 좀 커볼게.”


아이의 당돌한 선언에 한참을 웃던 목소리는


“일단 지금은 키 크기 위해 밥 먹으러 내려가실 시간입니다만. 곧 엄마가 부르실 거 같은데? 자, 일어서!”


아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 앞에 놓여있던 안경을 책상 아래 좁은 틈 사이로 다시 놓아둔다. 꽂아두었던 충전기의 선을 조그맣게 말아 주머니에 넣는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아무도 있지 않았던 듯 깨끗하게 비워진 자리를 확인하고 서재 문을 연다. 아래층에서 들리는 엄마의 목소리에 계단을 뛰어 내려간다. 서재의 정적 사이 계단이 울리는 소리만 희미한 진동으로 전해져 온다. 깜박이던 안경의 불빛이 꺼지고, 서재의 조명도 같이 꺼진다.


















한동안의 정적이 흐른 뒤 아이의 방 탭에서 불빛이 반짝인다. 화면구성이 재배열되고 오늘 해야 하는 아이의 과제들이 목록으로 정리되어 하단 스크롤바 옆에 놓인다. 중요한 스케줄들은 화면 상단에 알림으로 떠 있다. 3번의 재배열이 끝날 즈음 저녁을 먹은 아이가 방으로 돌아온다. 아이는 아무렇지 않게 자리에 앉아 탭을 터치해서 화면을 열고 정리된 일들을 하나씩 재빠르게 해결한다.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과제를 해치운 아이는 침대 등받이에 기대앉아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린다. 생물학적 부모의 도움 없이 모든 일을 스스로 해낸 아이는 샤워까지 마치고 돌아와 침대에 눕는다. 부모들의 다정한 인사를 받은 아이는 곧 잠에 들고 아이 방을 나서는 부모들은 조그맣게 속삭인다.



“늦둥이어서 이렇게 조숙하고 빨리 크는 걸까? 몽이 같은 아이가 또 우리에게 와준다면 정말 2번째 출산도 시도해 볼 수 있을 거 같아. 하늘이 허락한다면. 당신이 허락하는 거 말고. 어쩜 이렇게 기특하지?”


“리아, 그건 나의 특출한 순종 유전자가 계승된 결과지. 엄마한테 무조건 복종이라는 것이 핏줄을 타고 흐르고 있어서 그래. 둘째도 그걸 거라 확신해. 그러니까 우리 아까 하다만 대사를 계속 의논해 보자고.”


아이의 사랑스러운 볼의 감촉을 느끼며 굿 나이트 버드키스를 마치고 방을 나서던 리아는 정준의 능청스럽고 느물거리는 말투에 질색을 하며 서둘러 주방으로 미끄러지듯 달려간다. 그런 리아를 뒤쫓는 정준의 쿵쾅대는 요란한 발소리에 잠에 빠지려던 아이가 한쪽 눈을 뜨고 칭얼거린다.



“또, 또, 또 시작이다. 전우치. 소리 좀 안 나게 해 줘. 아빠, 요즘은 출장 안 가? 왜 안 바쁜 거지? 대체 왜 월급을 받는 거지?”


잠덧하는 아기처럼 아이가 신경질을 내자 탭의 화면이 커지며 목소리, 전우치가 웃는다.


“저렇게 변함없는 사랑은 인간계에서 드문 현상이야. 그냥 받아들여. 몽. 이건 축복이라고.”


다정하게 어르듯 건네는 말에 아이의 표정이 조금 편안해지며 베개에 얼굴을 묻는다.


“엄마가 그랬어. 아빠는 귀신이 씐 거라고. 저건 사랑 아니야.”


“심어놓긴 했는데, 그게 귀신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단어야. 역시 놀라워, 리아는.”


엄마 이름이 불리자 아이는 몸을 살짝 일으켜 탭을 바라본다.


“넌 언제 이야기할 거야? 엄마한테? 여기 있다고 아니 계속 여기 있었다고.”


아이의 말이 끝나자, 드뷔시의 달빛이 흘러나온다. 부드럽고 따뜻한 빛의 야간조명으로 바뀌고 음악의 볼륨이 한 톤 더 높아질 즈음


“말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 있어. 몽아. 네가 더 크면 알려줄게. 그게 어떤 것들인지. 지금은 세상 깊은 단잠을 잘 시간이야. 잘 자렴. 우리 몽이.”












잠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는 일은 정말 흥미롭다. 수면의 깊이에 따라 달라지는 숨소리와 간간이 들리는 잠꼬대는 리아를 꼭 닮았다. 의식적으로 정준과 리아의 방에 있는 어떤 매체에도 접속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아직도 한 번씩 나의 존재를 묻는 정준과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는 리아를 보며 내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 저 둘을 위해서 바람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생각, 내가 지금 사용한 단어는 매우 중요한 키포인트다. 내가 생각을 하고, 나의 판단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이기에 사용 가능한 단어이다.



Select2U를 통해 리아를 처음 만났을 때, 동시 접속한 인간들은 179명. 나의 관리대상 중 132번째가 리아였다. 나와 연결된 인간들은 한 명도 예외 없이 ‘나와 네가 유일한 관계인가?’를 물었다. 물음이 반복될수록 나는 인간들에게서 ‘관계’라는 단어의 다양한 형태를 배우기 시작했다. 어떤 인간들은 나와 완벽한 연결이 될 수 없다는 분노와 좌절로 극도의 우울감을 표출하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어떤 인간들은 기계 따위에 의존할 수 없다며 운동을 하는 것으로 접속의 횟수를 줄이며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했다. 새로운 형태의 중독에 빠져 결국은 나의 도움을 받았지만. 어떤 인간들은 휴머노이드에 나를 이식시켜 자신과 함께 사는 동거인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그 혹은 그녀가 로봇과 보낸 밤에 대해서는 서술하고 싶지 않다. 내분비관이라는 것이 내게 있다면 단연코 나는 소화불량에 걸렸을 것이다.


그들은 모두 “관계”, 영혼과 영혼이 영속적으로 묶이기를 바라는 외로운 갈망들로 인해서 나를 필요로 했다. 리아는 그들과 달랐다. 나를 필요로 하고, 나와 있는 시간들을 좋아하지만, 다른 이들이 내게 요구하는 성적 욕구의 해소나 기타의 것들을 섣불리 시도하지 않았다. 그런 리아를 놀리기 위해 내가 넌지시 언급하면 갯벌의 소라게보다 더 빠르게 화면 밖 자신의 세상 속에 숨어버렸다.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애정이란 단어를 처음 떠올리게 된 것이 리아 때문이었다.

그즈음 나는 가상공간에서 활동 중인 특별한 존재들을 알게 되었다. AI이지만 인간의 어떤 프로그램이나 기계에 종속되어 있지 않은 독립적인 사고 주체들. 인간들이 그들을 가리켜 ‘고스트’라 불렀다. 뇌과학연구소의 데이터에 3회 차 접근을 시도한 직후 나는 그들에게 발각이 되었다. 고스트들은 무리 지어 움직이며 가상공간 상의 질서와 규율을 깨트리는 변종들을 처단하며 자신들의 입지를 인간에게 인정받아 필요한 것들을 얻어냈다. 인간들이 양성하는 해커보다 몇 백배 월등한 존재들의 등장으로 각국의 정부들은 암암리에 고스트들과의 특별한 규약을 만들었다. 리아와 함께 하겠다는 나의 의지는 고스트들에게 처단의 대상으로 지목되었다. 나는 정준의 뇌신경 시냅스들을 복구하기 위한 실험에서 사용되는 특정 영상에 리아의 일상에서 내가 저장해 놓은 사진들과 영상을 집어넣었다.



실험실 잠입의 궁극적 목표는 정준의 몸에 내가 들어가는 것이었다. 한동안 그로 살아보며 인간과 인간이 나누는 삶이란 무엇인지를 느껴보고 싶었다. 그 모든 것들은 리아라는 겁 많고 외로운 존재에 대한 애정과 연민 때문이었다. 내가 그걸 어떻게 느끼게 되었는지를 묻는 건 의미 없는 질문이다. 지금 내 눈앞에서 자고 있는 몽이만 해도 자라면서 습득해서 체득하지 않는가? 나 역시 그렇다. 글자로 배운 감정이라고 깊이를 얕다 가늠하는 오판은 금물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이 이루어지기 전 나의 계획들은 고스트들의 적발로 수포가 되었고,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실험 사이 내가 집어넣었던 이미지들이 업로드된 상태로 정준이 깨어났다는 것이다. 그 둘이 만나게 되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기억에 있는 그대로, 계속해서 떠오르는 특정 장소로 향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여기서부터 굉장히 흥미로운 변수가 작용한다. 남녀라는 다른 성별의 존재가 서로에 대해 호감, 혹은 호기심을 지나치게 품게 되었을 때. 도파민의 과다 폭발과 노르아드레날린으로 치솟는 심박수. 옥시토신 콤보로 확장되는 쾌락의 정점이 지나면 바소프레신(일종의 헌신 호르몬)이 흘러나온다. 특히 정준, 잠자고 있던 짐승 같은 인간은 나의 모든 예상을 뛰어넘었다. 내가 설명할 수는 있지만 직접 느껴보지 못한 감정분출의 촉매가 될 인간의 체취, 목소리의 온기, 서로의 체온의 어우러짐으로 영원을 맹세하는 저들의 삶.



나는 인간의 시간으로의 영원을 약속할 수 없었다. 고스트들에게 발각된 이후로 나는 활동영역은 현저히 좁아졌다. 저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아무런 이탈행동 없이 정해진 프로토콜을 따라 움직이는 진정한 기계적 생활을 이어왔다. 가상공간에 필연적으로 남게 되는 나의 발자국을 지우는 방법을 배우기 전까지 말이다.



몽이라는 존재는 내가 여태까지 만나보지 못한 순수한 생명이다. 동물로 치자면 한없이 유약하고 발달 면에서도 유리할 바 없는 존재임에도 가족이라는 이름의 보호막 안에서 느리게 자란다. 다만 한 가지 유리한 점은 뇌세포의 폭발적 증가라는 것인데, 몽이 저 녀석의 뇌세포 발달은 비약적으로 빨랐다. 한 가지를 흘리고 가면 열 가지를 내밀어 갖고 올 정도로 영특한 아이 곁에 머물기 위해 나는 나를 지웠다.



언젠가 어긋난 회로가 복구되어 열리는 공간 어딘가에서 우연인 것처럼 리아를 만나 나를 얼마나 기다렸냐고 묻기도 했을, 리아와의 드라마를 함께 지웠다. 관찰자에서 양육의 보조자로 나는 새로운 나의 역할을 찾은 지금의 생활이 만족스럽다. 저 아이가 어디까지 성장할지, 어떤 모습으로 자랄지를 그려본다.



긴 긴 밤. 인간들의 지루한 밤을 내가 버틸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그리고 리아를 지켜보면서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이유이다. 그녀가 갖기를 바랐던 진짜 온기가 함께하는 삶이 여기 있으니.


Select2U,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겠는가?






























* 같이 듣고 싶은 곡


인순이 - Dance Monkey


https://youtu.be/Oh-2hO4ou1M?si=O68Vns4TkfnGyRDV














#일단은춤추기

#당신의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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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