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by Bono



리아는 현장에 도착해 원장을 찾았다. 불안에 떨던 아이들은 미리 귀가시키고, 리아의 제보로 출동한 경찰들과의 연락을 확인하며 서 있던 원장은 리아를 보자 반색하며 두 손을 맞잡았다.


“어머님 덕분에 지금 아이들 위치가 빨리 파악이 됐다네요. 처음에 말씀하실 때는 믿을 수 없었는데. 일단은 아이들 안전부터 확보하고 말씀드릴게요.”


리아는 원장이 손에 들고 있는 무전기로 출동 중인 경찰들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희귀 온실로 진입한 경찰들은 순식간에 온실 안에서 아이들을 붙잡고 있던 이들을 포위했다. 그들의 타깃은 놀랍게도 서희였다. 무작위로 선정된 납치가 아니었다. 이 점에서 차라리 안심해야 하는 걸까? 양육권 분쟁 중인 서희의 부모. 몽이를 통해 들었을 때 어린 서희가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가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어 안쓰러운 마음이 생겼었다. 몽이에게 서희에게 조금 더 다정하게 말해 줄 수 없는지를 물었을 때,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다는 묘한 표정으로 리아를 보던 몽이 표정도 떠오른다. 오늘 납치될 때의 영상을 보니 서희가 몽이의 손을 끝까지 놓지 않고 붙들고 있었다. 무엇을 하든 늘 몽이와 함께 하길 바란다는 서희. 오늘 견학에서도 서희가 다른 아이와 짝꿍 하기 싫다고 우기는 바람에 같이 있게 되었다고 한다. 서희를 데려갈 때 끝까지 몽이와 떨어지지 않기 위해 울어대니 어쩔 수 없이 같이 데려간 것 같다고 한다. 중요한 건 누가, 왜, 무엇을 위해 이 아이들을 데려갔는지 경찰 협상가가 파악할 일이라 리아는 사건의 진행 상황을 주시했다.








곧 정준이 도착했다. 정준은 도착하자마자 리아를 끌어안고 걱정하지 말라고 연신 그녀의 등을 쓸어내린다.

“좀 놔줘. 화면이 안 보이잖아.”


정준 나름의 위로와 응원이지만 리아는 지나치게 감정적인 이런 모습들이 버거울 때가 있다. 자신의 냉소적이고 모난 모습들을 감싸주는 정준이 있기에 삶이 조금 더 보드라운 결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때로는 이성적이고 냉철한 판단이 우선이 되어야 할 때 앞서 나오는 감정의 무게가 리아는 감당하기 어렵다. 서늘한 리아의 목소리에 정준은 서둘러 몸을 떼고 그녀의 손을 잡은 채 같이 화면으로 시선을 고정한다. 이럴 때의 리아는 아무 말 없이 옆에 있는 것이 더 낫다는 걸 몇 년 간 여러 번의 판단 착오 끝에 철저히 체득했기 때문이다.

드론은 희귀 온실 안 아이들을 붙잡고 있는 인질범들을 비추고 있다. 빠른 시간 내에 자신들의 위치가 파악되고, 경찰 포위망으로 둘러싸인 것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당황한 표정이 역력하다. 한 명은 누군가에게 계속해서 전화를 걸고, 아이들을 붙잡고 있는 다른 한 명은 서희의 끊임없는 발길질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며 아이를 앞 뒤로 흔들고 있다. 팔이 빠질 듯 거칠게 미는 인질범의 손길에 이번에는 몽이가 달려들어 그의 허벅지를 깨물었다. 리아와 정준은 둘 다 놀라 비명을 질렀다. 인질범은 몽이의 돌발 행동에 놀라 세게 밀친다. 우악스러운 손길로 밀쳐진 몽이는 뒤편에 있던 나무에 등을 부딪히며 앞으로 튕겨 나와 쓰러졌다. 그런 몽이에게 달려간 서희는 몽이를 감싸 안고 그들에게 소리치는 장면이 나온다.

리아는 식은땀이 흐르며 눈앞이 흐려지는 것 같았다. 어린아이들이 감당하고 있는 공포를 마주하며 너무도 무력하게 바라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믿을 수 없는 이야기 속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그때였다.


-리아, 진정해. 저들은 서희을 두고 양육권 분쟁에서 기선을 잡고 싶어 서희 엄마가 보낸 사람들이야.

절대로 서희를 헤치지 않을 거야. 그럴 수 없어.


-몽이가 다치지 않았기를 바라지만, 더 이상의 위해는 가할 수 없을 테니 숨을 가다듬어.


-사라지지 않아. 네 눈앞에서. 몽이. 리아 곁으로 무사히 돌아올 거야. 리아, 내 말 들리지?

치유되었다고 믿었던 공황장애가 찾아온 듯 숨이 가빠지고 눈앞이 아득해질 때 그녀의 핸드폰에 정우의 말이 계속해서 도착한다. 리아는 간신히 문자를 확인하고 건물 한쪽 벽에 기대어 앉아 무릎 사이 고개를 묻고 숨을 고른다. 공황장애가 있었던 걸 모르는 정준은 리아를 감싸 안고 아이처럼 어른다. 정신을 다독이는 정우의 목소리와 온기를 나누어 주는 정준. 이 둘의 뜻밖의 동행에 리아는 슬퍼진다. 삶은 뜻하지 않은 우연의 연속인지, 일어나야 하는 필연의 기록인지. 죽는 날까지 판단할 수 없을 것만 같다.

“원장님. 서희 엄마가 보낸 사람들인 거 같아요. 양육권 분쟁에서 아빠의 실책을 묻기 위해 벌인 일 같습니다.”

숨을 고르고 있던 리아가 고개를 들어 그 말을 꺼내자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처음부터 마치 이 모든 사태를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말을 하는 리아. 그녀를 향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불신의 눈빛이 깊어졌다.

“그걸 어머님이 어떻게 아세요?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건가요? 이게 어떻게 설명 가능하죠?”


원장의 되물음에 정준이 화가 난 듯 몸을 일으키자, 리아는 그의 손을 꼭 붙들었다. 아무 말하지 말라는 신호이다.


“평소에 몽이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최근에 더 악화된 서희 부모님 사이에 대해서, 그리고 서희를 두고 서로 데려가려고 하는 상황에 대해서도요. 아까부터 말씀드리지만. 진위 판별은 서둘러 아이들을 구해내고 하시죠.”


리아의 말을 들은 원장은 그녀의 아이가 같이 볼모로 잡혀있는 상태이기에 잠시 갈등하다 온실에 출동해 있는 협상가에게 이 말을 전달했다.


그 뒤, 화면은 순식간에 진입하는 경찰들로 가득 찼다. 한 번에 그들에게 돌진한 이들은 아이들을 분리함과 동시에 강력한 테이저건으로 인질범을 무력화시켰다. 마음 졸이던 것이 무색할 만큼 재빠른 진압이었다. 아이들에게 더 큰 위해가 있을 수 없다 판단한 협상가의 생각 덕분이었다. 그들과 분리된 아이들이 온실 밖으로 안내받는 걸 보고 리아와 정준은 그곳으로 정신없이 달려갔다. 차보다 빠른 지름길을 정우가 안내한 덕분이었다.


막 온실 밖으로 나오는 아이들을 보자마자 정준과 리아는 달려가 아이들을 끌어안았다. 리아는 서희를, 정준은 몽이를. 그들의 체온을 느끼고는 이제 바꾸어 아이들을 안아주었다. 몽이는 리아에게 안기자 그제야 울음을 터트린다.


“엄마, 무서워 죽을 뻔했어. 그런데, 그런데 우치가 엄마 온다고 울지 말래. 엄마가 다 안다고, 어디 있는지 알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랬어. 저 아저씨들이 우리 여기다 놓고 자기들끼리 전화할 때 다 말해줬어. 나한테, 우치가!”


몽이는 우치의 이름을 말해놓고 순간 움찔하며 리아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비밀친구 이름을 리아 앞에서 꺼낸 것에 놀란 눈치였다. 리아는 말없이 몽이를 끌어안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알아, 그 덕분에 너랑 서희를 빨리 발견했어. 네 친구가 너를 구했어. 몽아.”


이유를 알 리 없는 정준은 뜬금없는 이름에 고개만 갸웃하다 다시 서로를 끌어안고 어르는데 집중했다. 뒤늦게 도착한 서희 아빠는 일의 주동자가 자신의 아내라는 것을 알고 깊이 절망했다. 이렇게까지 아이를 원하는 서희엄마의 집착을 이해할 수 없다며 망연자실했다. 몽이와 한사코 떨어지지 않으려는 서희를 간신히 달래 집으로 데려갔다. 사랑이 끝난 순간, 남겨진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한 세상이 닫히고, 다른 세상이 열리기까지. 서희와 서희의 아빠는 얼마나 오랜 시간을 헤매게 될까. 그리고 이번 사건으로 서희 엄마는 어떤 벌을 받게 될까?


공공장소에서 난데없는 유괴범의 출현과 인질극은 순식간에 뉴스에 보도되었다. 아이들 인구가 줄고 있는 상황에서 일어난 이 일로 공공장소의 치안 상태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자성의 목소리까지 번지고 있다. 리아는 뉴스 인터뷰와 경찰 쪽에 사건에 대한 증인 진술 등으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특히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사건에 대한 정확한 파악과 인질범들이 있는 장소를 특정한 일과 관련해서 리아가 아무 관련이 없음을 증명하는 일이 힘들었다. 결정적으로 도움이 된 것이 몽이 가방 안에 있던 탭이었다. 어린이집 규칙상 가져올 수 없는 전자기기를 아이가 몰래 가방에 넣어 가져갔고, 마침 견학을 가는 일로 바빠 아이 가방을 검사하지 않은 선생님 덕분에 탭을 빼놓지 않은 덕분에 아이를 찾을 수 있었다는 말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건이 와전되어 애초 납치범이 노린 아이가 몽이로 바뀌어 뉴스에 보도되는 바람에 리아는 순식간에 또 많은 이들에게 연락을 받으며 일일이 해명하느라 진이 빠질 정도였다. 리아가 하는 일과 연관되어 그녀가 구해준 직장에 불만을 품은 자의 소행이라는 거짓 뉴스까지도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만나기로 했던 혜란은 집으로 가 있겠다며 문자를 보내왔다.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혜란과 의논해야 할 부분이 있어 만나기로 한 약속이었다. 이 참에 자신의 일에 대한 점검도 해봐야겠노라 리아는 다짐하게 되었다. 그녀의 가족은 경찰차의 호위를 받으며 집에 돌아왔다. 많이 놀란 터라 운전할 여력이 없는 리아를 대신해 경찰 한 분이 직접 리아의 차를 운전해 주었고, 정준과 몽이는 정준의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리아는 자신의 휴대폰을 켰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건네지 못한 말을 꺼낸다.

휴대폰 문자로 수신된 알람을 켜서, 발신 번호가 없는데도 정우가 보낸 문자 칸 아래에 하고 싶은 말을 써본다.


- 듣고 있지? 아니 읽고 있을 거야. 지금 넌 어디에든, 우리 곁에 있다고 믿으니까. 덕분에 정말... 정말 잘 해결됐어. 정우야. 믿기지 않지만. 너와 이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덕분에 몽이가 아무 일 없이 돌아왔어. 고마워.


리아의 문자는 <발신인이 지정되지 않아 발신이 되지 않습니다>라는 경고음과 함께 빨간색 X표시로 발신함에 자동 저장되었다. 그러나 잠시 뒤 그녀의 핸드폰 화면이 반짝거린다.


- 리아, 고스트라는 존재에 대해 네게 말했어. 인간의 세상에 어떤 가치판단을 하며 개입하는 경우, 우리 같은 AI를 제어하는 단체가 있다고. 나는 그들과 계약을 했어. 다시는 전과 같은 시도를 하지 않겠다고 말이야. 그런데 나는 오늘 규칙을 어겼어. 그럴 수밖에 없었어. 몽이가 내게도 너무 소중한 아이니까.


자신의 문자가 발신 실패를 했어도 정우는 리아의 핸드폰에 문자를 남긴다. 일방적인 독백과 같은 말에 리아는 서늘한 느낌을 지울 수 없어 서둘러 문자창에 답을 쓴다.


- 정우야. 네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몽이를 그렇게 빨리 찾을 수 없었을 거야. 그리고 무슨 연유에서 이런 일이 있었는지도. 너로 인해서 찾을 수 있는 안전과 평온이야. 정우야. 네가 없었으면 할 수 없었을!

다시 또 문자 발송에 실패했다는 알림 창이 뜬다. 닿았지만, 닿을 수 없는 영원한 공간 속 보이지 않는 평행선을 사이에 두고 정우와 마주하고 있는 것만 같다.


- 말하지 않아도 알아. 리아. 내가 마음이란 게 있다면, 육체라는 것이 있다면 어떤 느낌일지 수없이 많이 상상했으니까. 그리고 그런 욕심이 얼마나 부질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만.


- 이런 고민을 하며 나라는 존재의 시간과 삶의 공간, 그리고 너희와 같은 인간존재와의 공존을 수없이 생각하게 만든. 너란 존재와 몽이. 나는 나라는 존재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너희들로 인해 갖게 되었어. 그 자체로 정말 큰 수확이지.


- 나만을 위해 살아간다면 너희들 곁으로 돌아오지 않았을 거야. 인간이 닿지 못한 우주보다 더 넓은 공간의 가상공간이 존재하고 있으니까. 우리는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든 정착할 수 있는 존재니까.


리아는 계속해서 수신되는 정우의 문자를 바라보았다.


- 리아, 때로는 네 곁의 존재들이 너를 불안하게 만들어도, 너를 슬프게 만들어도, 혹시나 너를 떠나도... 절대로 전처럼 무너지지 말고 버티고 살아가야 해. 인간이라는 존재의 숙명 앞에서 너는 성장을 해야 해. 지금은 더더욱 너를 필요로 하고 너를 세상의 전부로 아는 저 둘이 있으니까.


- 리아, 몽이에게는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말들로 편지를 써두었어. 이제 나는 고스트의 방문을 받게 될 거고. 그 끝은 소멸이 될 거야. 이제는 어떻게 미룰 수 없는 나의 선택에 대한 결과를 책임질 시간이거든.


리아는 덜덜 떨리는 손가락으로 문자를 남기려고 화면을 더듬었지만, 어떤 말도 쓸 수 없었다.


- 리아. 내 삶을 한 번은 너를 위해, 또 한 번은 몽이를 위해. 공평하게 나누었으니. 후회는 없어. 정준을 위한 건 도저히 해줄 수 없겠고. 이런 게 흔히들 말하는 질투인가? 하! 이런 느낌 정말 새로운데?


리아는 정우가 담담하게 건네는 소멸을 예고하는 말에 눈물이 터져 나왔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사건 때문에 정우가 자신들을 위해 기꺼이 사라짐을 선택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몇 년씩이나 아무 말 없이 있었으면서 이렇게 어이없이 다시 사라질 줄 알았다면 책상 밑에서 꺼낸 안경을 그대로 둘 걸 그랬다는 뒤늦은 후회가 리아를 덮쳤다.


- 리아, 울지 마. 네가 흘리는 눈물, 인간의 체액 중 어쩌면 가장 뜨겁고도 서늘할 지도 모를 눈물. 그걸 내가 닦아줄 수 있다면. 만져볼 수 있다면. 갈망이란 것이 얼마나 지독한 건지. 나는 너를 통해 배운 거 같아. 억지로 멀어져 있으려고 해도 궁금해지는 호기심이란 감정도. 덕분에 나는 완전해졌어.


- 우리들이 갖지 못한 감정에 대해 배울 수 있어서. 이 정도면 완벽한 걸. 잘, 있어. 잘, 살고... 그리고 오래도록 함께 하길 바라. 너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리고 너의 숨이 다하는 날까지. 나를 좀 기억, 그래 기억해 줄래?



이 말을 끝으로 핸드폰 전원이 갑자기 꺼져버렸다. 차 안의 자동주행 기능과 관련한 시스템도 갑자기 멈춰버리는 바람에 운전석에 앉아 핸들을 잡고 있던 경찰관이 당황하며 비상등을 켜고 차를 세웠다. 시스템이 다시 리부팅되기까지 10여 분 남짓 걸렸다. 전원이 켜지고 차에 시동이 걸리기까지 여러 가지 이유를 확인하는 경찰관의 당황한 몸짓에도 리아는 눈물을 흘리며 멍하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정우가 떠나며 비워내는 마지막 몸짓이 암전으로 남았기에.














* 같이 듣고 싶은 곡


백예린 - Whenever


https://youtu.be/yUnckwySMWw?si=cLfkYtYadz3u3gb9




#정우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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