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이 꺾였다. 꺾인 것뿐만 아니라 분리됐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그대로 굳어버렸다.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움직여야 이 순간을 벗어날 수 있을지 눈을 굴려 공간을 살핀다. 방법이 없다. 탈골을 넘어선 완벽한 분리. 내 두 손은 분리된 형체를 들고 망연자실 서 있을 뿐이다.
로봇청소기가 닿지 않는 공간까지 깨끗하게 살균청소를 하기 위해 적어도 2주일마다 한 번씩 스팀청소기를 사용해 청소를 한다. 초미세모 걸레로 바꿔 스팀청소기로 바닥을 밀고 있었는데, 바닥 접지력이 너무 높아져 온몸에 힘이 들어간다. 힘찬 기합과 함께 청소기를 앞으로 내밀었는데. 힘차게 앞으로 한번 뻗었을 뿐인데 나의 힘과 바닥의 마찰력을 이기지 못한 청소기의 몸체가 분리를 선언한다. 황당한 일이라 사진을 찍어 동생에게 전송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꼬부라진 닭발이 연달아 행진을 한다. 곧이어 연달아 들어오는 이모티콘에선 양 귀를 펄럭이며 배를 잡고 웃고 있는 바둑이가 화면에 가득하다.
어찌어찌 분리된 몸통만 갖고 몸을 잔뜩 수그려 계속 걸레질을 한다. 뽀득뽀득 빛나는 결이 주는 기분 좋은 느낌을 맨발로 누리며 거니는 중 손목에서 워치의 진동이 요란하게 이어진다. 워치 화면을 확인한다.
"오빠, 응?"
"응응응응응???"
"응응응응응응???"
얼마 전 쿠팡이 해킹당했다고 했다. 쿠팡의 나름 vip라 자부한 난,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싶어 핸드폰을 열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스매싱이구나. 나를 낚으려 한 자는 누구인가. 테이큰의 리암 니슨의 독백을 읊조리며 화면을 확인한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내 너를 팥쥐로 만들 것이니. 로터리길 한가운데 장독을 만들어, 천일염으로... 옴팡 절여... 밟고 또 밟고.'
그러나 난 이내 내 눈을 의심한다. 두 아이를 내게 보내고 있는 어머님의 전화번호로 들어온 문자였다. 그럼 어머님께서 스매싱을 당한 것인가? 이 사실을 어머님께서는 인지하고 있으신 건가? 나 혼자 놀라 눈이 커지는데 애교 섞인 내용의 문자가 계속 들어온다.
문자 내용을 가만히 살펴보니 대충 아귀가 들어맞는다. 아마도 어머님께서는 남편에게 보내야 할 문자를 내게 보내신 것 같다. 연달아 계속 이어지는 문자 폭탄에 일단은 멈춤 사인을 보내야 할 것 같다. 나중에 확인하시면 얼마나 무안하실까 싶어서 잠시 고민하다 문자를 보냈다.
"어... 어머님? 접니다."
내 문자가 전송되자, 연달아 들어오던 물음표가 멈춘다. 정확히 5분 뒤 답이 온다.
"어머... 선생님. ㅋㅋㅋㅋ 제가 남편에게 보낸다는 것이. ㅋ"
꼬부라진 닭발이 여기서도 보인다. 나는 'ㅋ'을 싫어한다. 단음으로 찍힌 'ㅋ', 두 줄로 이어지는 'ㅋ'도 싫다. 하나의 자음으로 어떤 답을 대체하는 일은 상대에 대한 무례라고 생각한다. 'ㅎㅎㅎ' 정도는 갓 쓰고 점잖게 웃는 어르신의 미소를 떠올리게 되지만, 'ㅋ'은 조소라 생각해서 나도 모르게 이맛살을 찌푸리며 바라보게 된다.
그럼 이 상황에서는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싶어 한참을 바라보다 정말 소심하게 문자를 눌렀다. 발 밑에는 스팀 청소기에서 올라온 열기가 아지랑이처럼 퍼지고, 밖에서는 쓰레기를 비우러 온 트럭의 소음이 웅웅 울려 퍼지고, 귀에는 내내 듣고 있던 장기하와 얼굴들의 "ㅋ(키윽)"이 연속 재생 중이었다.
'문자로 콕콕 콕콕 찍어서 보낸다'라는 노래 가사에 맞춰 답을 한다. 어머님의 문자 위로 덧붙이는 소심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답.
(여러분은 어떤 답을 하셨을까요? 진심 궁금해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걸레를 떼어내고 목이 분리된 청소기를 수습하려다 저만치 밀어 두고 자리에 앉는다. 밀란 쿤데라의 <농담> 속 주인공 루드비크의 대사가 떠오른다.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 트로츠키 만세!"
관심 있던 여인에게 보낸 엽서 하나로 깊은 굴 속 인간 굴착기가 되었던 그의 호승심 가득한 말이 왜 떠올랐을까? 관계의 틀을 벗어나 내가 보낸 문자로 인해 심박수가 올라가서 인가보다.
나는 등록되지 않은 번호로 오는 전화가 부담스럽다. 마치 문을 갑작스레 왁 열어젖히고 대문을 지나 내 문칸방 앞에 서서 문 열라 소리치는 사람을 보는 기분이 든다. 갈수록 혼자만의 공간과 침묵에 집착하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ㅋㅋㅋ'와 'ㅎㅎㅎ' 사이, 자음과 자음의 형태의 변화 사이가 태평양보다 더 넓다. 그 사이 잠시 나는 표류 중이다. 어, 어지럽다.
* 같이 듣고 싶은 곡
장기하와 얼굴들 - ㅋ(키윽)
https://youtu.be/ASI6oGRvDak?si=PnjYO2D-6CcKCRU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