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수많은 생물의 멸종과 전 세계에 걸친 생물군계의 완전한 대격변, 기후 패턴의 중대한 변화를 보게 될 것이고….”
“인간이요.” 스트라트가 말했다. “나는 이 일이 인간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언제 그런 일이 일어날지 알고 싶습니다. 항문 세 개짜리 진흙 나무늘보의 짝짓기 영역이든, 다른 무슨 생물군계든 관심 없어요.” “우리는 생태계의 일부입니다, 스트라트 씨. 우리도 생태계의 바깥에 있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먹는 식물들, 우리가 기르는 동물들, 우리가 숨 쉬는 공기…. 이 모든 게 하나의 그림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모든 게 연결돼 있어요. 생물군계가 붕괴하면 인류에도 직접적인 충격이 옵니다.”
“네, 그럼 숫자로 말해주시죠.” 스트라트가 말했다. “나는 숫자가 필요합니다. 애매한 추측이 아니라, 분명히 실재하는 것들이 필요해요.” 르클레르 박사가 그녀를 노려보았다. “알겠습니다. 19년이요.” “19년이요?” “숫자를 원하신다면서요.” 그가 말했다. “숫자를 드린 겁니다. 19년입니다.” “네, 뭐가 19년이죠?” “현재 살아 있는 인간의 절반이 죽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을 추정한 겁니다. 지금부터 19년.”
- 프로젝트 헤일메리 | 앤디 위어 저
여기 한 남자가 있습니다. 오랜 시간 잠들어 있었는지 근육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일어나 앉기까지만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리죠. 자신의 이름이 무엇인지, 얼마나 오래 이 공간에 있었는지, 이 공간은 어떤 구조로 무슨 용도로 사용되는 곳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깨어납니다.
커다란 로봇팔들이 남자를 보살펴 줍니다. 옆에는 미라 상태로 죽어 있는 2명의 인간들이 있는데 남자는 곧 그들이 자신의 동료였으며 이름이 '야오'와 '일류키나'였다는 걸 떠올리죠. 로봇이 건네주는 튜브형 식사를 통해 천천히 기력을 회복해 가는 남자. 그는 곧 자신이 '헤일메리호'라는 우주선에 탑승해 타우세티란 항성을 향해 비행중이란 걸 기억해 냅니다. 그의 조각난 기억들이 서서히 맞춰지며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매끄러운 오버랩으로 머나먼 우주 위에 홀로 던져진 이 남자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앤디 위어의 신작 <프로젝트 헤일메리>와 우주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남들 몇십억씩 내면서 민간 우주여행의 최초의 인간이 되기를 꿈꿀 때, 저는 아포칼립스 상태의 지구를 구원하기 위해 강제로 비행기에 실린 라일랜드 그레이스 박사와 그의 친구 로키를 따라 시원한 아이스라테 오물대며 편하게 다녀왔죠. 상상하다 흘린 식은땀은 덤이었구요. 관람석 넉넉하니 요기 같이 앉아보실래요?
아마추어 천문학자들이 붉은 띠로 이루어진 우주의 독특한 선들을 발견하고 '페트로바선'이라 명명합니다. 독특한 대기현상이라고만 생각했던 띠가 태양의 활동을 멈추게 만드는 알려지지 않은 미생물들의 움직임이란 걸 알게 된 지구인들은 그 놀라운 생명체에 대해서 연구하기 시작해요.
물이 없이도 생물이 발생할 수 있다는 논문을 쓰고 전 세계 과학자들의 통념에 감히 도전장을 던진 주인공 '라일랜드 그레이스'는 그 논문으로 과학계에서 퇴출을 당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과학교사로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소시민입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도 이렇게 굴복당해 살 수밖에 없었다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면서요.
하지만 그의 논문 덕분에 '스트라트'라는 범지구적 위기대책본부의 본부장 격인 철의 여인에게 간택받아 실험실로 끌려옵니다. 학부모들이 화나게 할 때마다 양말에 동전을 넣어 그걸로 자신을 화나게 한 학부모를 한대 후려치는 상상을 하며(이 급진적 상상에 과한 공감을 하는 저, 양말 하나 꺼내서 콩 넣어 만들어 보았더랬죠. 음. 효과 있어요. 이 상상)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매진 중이었던 그에게 엄청난 장비들이 갖춰진 실험실이 열립니다. 아무도 귀 기울여 주지 않았고, 괘씸한 도전이라 여겨져 퇴출당했던 자신의 논문을 증명할 미생물을 발견했으니 라일랜드는 얼마나 신났게요. 며칠에 걸쳐 다양한 실험을 하게 되는데, 이 독특한 녀석들이 지구 위 생물과 동일한 미토콘드리아와 단백질 세포등을 갖고 있는 존재란 걸 알게 됩니다. 허당은 아니었어요. 꽤 똑똑한 인재지만 예나 지금이나 학계의 고정된 학설을 뒤엎는 일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와 같다는 생각을 그를 통해 또 해보네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산화탄소를 쫓아 이동하며 높은 온도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번식하며, 소량으로 어마무시한 에너지를 낼 수 있는 존재란 걸 알게 돼요. 이들은 태양을 감염시키고, 머나먼 우주 다른 곳의 별들도 감염을 시켜 우주를 빙하기로 만들어버릴 미생물로 라일랜드는 '아스트로파지'라 명명하죠. 다양한 실험들로 이들의 생애주기와 움직임등에 대한 연구를 통해 분자생물학의 권위자로 등극해 버린 라일랜드. 이들이 유일하게 번식하지 못하는 타우세티 행성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선발된 요원 둘이 갑작스러운 폭발사고로 사망하자 그들을 대신해 코마 상태로 우주선에 실려버린 라일랜드의 분투기가 정말 흥미로워요.
전작 "마스"에선 화성에서 감자 키우는 걸 실감하게 보여주더니 이번 작품에선 로키라는 에이드리언 행성의 외계인 친구까지 등장시켜 우주관을 더 먼 곳으로 확장시켜 우리를 이끕니다. SF공상과학 소설의 힘은 설득력이라고 생각해요. 과학적 지식들을 촘촘하게 연결해 얼마나 설득력 있는 상상가능한 공간들과 사건을 만들어내는지가 절대적으로 중요하죠. 그런 점에서 앤디 위어는 정말 천재입니다.
열순환계를 통해 모든 바이러스들을 혈액 속에서 태워버리며, 피부가 바위처럼 단단한 네모 납작하고 빛 대신 초음파로 세상을 인식하는 외계인 로키도 정말 실제 하는 존재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전문 용어들이 한가득 쏟아져 나와도 시의적절하게 들어가는 설명들이 무리 없이 글 속에 빠져들게 만들죠. 거기에다가 라이언 고슬링 주연으로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하니 벌써 기대 한가득입니다. 저는 영화 속 로키와 제노나이트란 신물질, 아스트로파지의 역동적인 움직임 등등이 어떻게 표현될지 두근거리네요.
'헤일메리'라는 용어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아주 낮은 성공률을 바라보고 적진 깊숙히 내지르는 롱패스를 뜻하는 미식축구 용어라죠. 엄청난 열에너지를 가진 아스트로파지를 연료로 지구를 구하기 위해 우주로 나선 주인공이 겪는 일들. 돌아올 수 없는 편도행 우주선에 올라, 해결책을 찾기 위해 나서는 이들을 태운 우주선 이름이 정말 절묘합니다. 자원하지 않았고, 탑승을 기를 쓰고 피하려다 코마 상태로 실리는 주인공이 탐험이 계속될수록 점점 성장하고 자신이 가르치던 아이들을 위해서 결국 선한 선택을 하고, 최선을 다해 결과를 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요 소심하고 투덜대기 잘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우리들 모습을 엿보게 됩니다.
또한 주인공이 결과를 알아내고 자신이 찾은 결과를 헤일메리호에 탑재된 '존, 폴, 조지, 링고'란 4가지 소우주선에 실어 지구로 다시 돌려보내기까지 핵미사일로 남극과 북극의 빙하를 녹여 메탄가스를 다량 방출시켜 지구의 온난화 현상을 극대화해 태양열 감소로 인한 빙하기를 막아야 하는 상황에 대한 역설을 통해 우리로 인해 죽어가고 있는 지구에 대한 관심까지 작가는 이끌어내고 있죠. 과연 우리 지구인들은 어떻게 될까요? 궁금하시죠?
급격한 지구 기후변화가 만들어내는 이상현상에 속수무책인 요즘, 2018년 송도에서 열린 IPCC 연구 보고서를 보면 2030년에서 2052년 안에 지구상 생명체의 반 이상이 멸종될 거라는 예측이 나왔던 걸 떠올려 봅니다. 올해 특히 지구상 일어나고 있는 폭염과 홍수, 폭우, 거대 허리케인 등등의 이상 변화들이 모두 지구 온도 1도가 올라서 일어나는 일이라는데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지구의 반격이 계속될지 예측하기 힘든 요즘이죠. 80년 안에 지구 온도 2도 이상 오를 것이며 그렇게 되면 생물다양성의 절반까지 사라질 수 있을 것이라는 예언이 나왔죠. 단계적인 질문 끝에는 우리들 호포 사피엔스들의 생존여부에 대한 예측에 대한 답이 매우 어두운 방향으로 제시가 되죠. 더군다나 빙하가 녹는 속도나 이런 여러 가지 변화들이 예측했을 당시보다 십 년 이상 앞당겨지고 있다고 합니다. 2022년 제6차 IPCC보고서에 의하면 말이죠.
이런 기사들을 접하면 위험을 코 앞에 둔 채 전쟁과 이권다툼에만 몰두해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영화 "돈 룩 업"을 보며 소름이 돋았던 이유도 현실 속 우리들의 모습에 대한 관찰자적 시점의 감독의 시선, 그 흐름을 통해 지금의 상황을 직시하게 되었기 때문이죠. 들여다보고 탐구하며 답을 찾는 이들을 통해 우리들의 눈도 열리게 됩니다. 이 책을 통해서도 다시 한번 기후위기와 인간들의 대처방법에 대한 여러 가지 대안책과 해결책을 떠올려 보게 됩니다. 영웅에 의해서가 아닌 우리에 의해서 시작할 수 있는 방법들이요.
결말은 언제나 책 속에 있습니다.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의 감동과 만족이 함께 하시길 바라며 결말은 절대 비밀이요. 상상도 못 한 결말, 기대해도 좋습니다. 소란한 날들을 보내고 오랜만에 눈을 감고 음악을 듣고 있습니다. '너의 바다에 머무네'. 토이의 오래전 노래를 김동률의 목소리로 만나는 지금이 참 좋습니다. 그리고 우주여행 다녀온 여운도 좋고요. 눈앞에 펼쳐진 인적 드문 바닷가를 거니는 상상을 하며 이대로 눈 꼭 감고 좀 더 있어야겠습니다. 깊이 잠수한 향고래처럼요. 남은 시간도 평안하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