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카라바조의 그림이었다. 세 방향의 빛이 밝히는 인물의 다양한 표정. 모두가 성탄절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시간, 나는 마지막 산상기도를 마치고 내려오던 예수를 유다의 밀고로 로마군이 체포하던 장면을 그린 카라바조의 <유다의 키스>란 그림에 매혹되었다. 체포당하는 급박한 순간에도 자신을 배신한 제자를 바라보던 침통한 표정의 예수, 초조와 불안함이 가득한 얼굴로 그런 예수에게 다가가 입맞춤을 하는 유다의 몸짓, 횃불을 비추며 그런 스승에게 닿기위해 애타게 손을 뻗는 베드로까지. 그리스도의 혹독한 여정의 시작을 알리는 그림 속에서 자신을 구원해 준 이를 배반한 유다와 그의 뜻을 알리며 끝내 순교한 제자들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걸까 계속 되묻게 된다. 세상을 바꾼 예수 옆에 있으면서 바뀌지 않은 유다의 마음, 감화 혹은 교화되지 않는 마음은 무엇으로 인한 것일까? 유다를 바라보는 그리스도의 눈빛이 마음에 남는다.
빛을 다루는 솜씨가 당대 최고라 칭송받는 카라바조는 젊은 날 로마에서 저지른 살인사건으로 인해 외국으로 도피해 성화를 주로 그려 자신의 죄에 대한 속죄를 받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마침내 사면이 결정되어 로마로 돌아가던 중 그 사실을 모르던 경비병에게 걸려 감옥에 갇히게 되고 열병으로 인해 사망했다는데 그가 저지른 죄에 대한 심판의 칼날이 예기치 못한 순간 끝내 찾아들던 순간 죽어가는 그의 눈 앞에 떠오른 마지막 이미지는 무엇이었을까? 결국 자신의 죄과를 벗어나지 못한 카라바조, 그의 그림으로 촉발된 "바뀔 수 있는 마음과 변하지 않는 마음". 개개인의 의지 혹은 속해있는 문화로 인해 형성된 생각의 틀이 만드는 삶 등에 대해 계속 생각 중일때 진저 개프니의 <하프 브로크>를 접하게 되었다.
다양한 색들로 칠해진 말의 얼굴을 보드란 손으로 쓰다듬는 표지, 파스텔톤의 색감이 보드랍게 어우러진 책을 열었다. 뉴멕시코의 목장에 조련사로 초대받은 작가가 1년간 만난 목장의 가축전담반(대부분이 형기가 남은 재소자들)과 목장에서 만난 말들에 대한 기록이다. 태어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목장에 버려진 루나라는 말을 붙들고 치료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쓰레기를 뒤져 먹고, 먹이를 주는 이들에 대해 강한 반감으로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는 상처투성이 루나. 얼굴은 깊게 패인 흉터로 썪어가고 있지만 어떤 누구도 그 말을 붙들지 못해서 치료는 엄두고 못내고 있던 중이었다.
"루나는 안에 부서진 부분이 있다. 그렇게 태어났거나, 아니면 다른 누가 그렇게 만들었다. 어느 쪽이든 루나에게는 돌아갈 집이 없다. 그러니 루나가 우리에게 오게 해야 한다. 부탁하지 말고, 애틋해 하지도 말고, 변화시키려 들지도 말아야 한다." - p. 67
자신이 만나는 말, 그리고 사람들의 공통점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내린 진저. 목장의 현관 옆 포치에는 길다란 나무의자가 놓여있다. 그 곳에 앉아 목장일꾼으로 새 삶을 살기를 원하며 면접을 기다리거나 목장에 있다가 끝내 규칙을 어겨 다시 교도소로 돌아가는 이들을 보며 그들이 담당하고 있는 말에 대해, 내면에 숨겨져 있거나 잊혀졌던 그들의 진정한 마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드는 작가의 세심한 지도력이 인상적이다.
끝내는 바뀌지 않는 이들도 있다. 다양한 마약과 알코올, 도박, 폭력 등 우리 사회 어두운 부분들에 오랜 시간 노출되어 자라온 이들이 자신의 어두운 내면과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들이 때로는 눈물겹게 다가온다. 어쩌면 덤덤한 어조로 그들의 고군분투를 그려냈기에 더 감정이입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작가는 6살이 돼서도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를 거부했다고 한다.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 힘든 시기도 보냈고 그로 인해 아직도 자신이 속해 있는 공간에 대한 부적응자라는 마음을 떨치지 못하고 살아오고 있었는데, 작가 또한 이 곳에서 자신의 삶에서 변화를 맞이한다.
"아직도 나는 내 언어를 찾으려고 노력중이다. 파티에서, 아니면 친구네 집에서 함께 식사할 때, 나는 이해가 느린 사람이 된 것 같다. 모두가 쉴새없이 말과 웃음을 쏟아내는데, 가끔은 따라잡기 힘들다. 한두 마디 끼어들기도 하지만, 내가 뱉는 말은 안에서 느끼는 감촉과 일치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느끼지도 않는 것을 말로 표현하려고 애쓴다. 어쩌면 수많은 이들의 목소리를 억누르는 것이 바로 그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내뱉는 말들이 텅 빈 껍질임을 감지하는 것. 내가 이 목장에서 뱉는 말은 전부 필요한 말이다. 필수적인 말이다. 그렇다는 걸 이제 알겠다. 내가 하는 말, 내가 말하는 방식이 누군가의 삶에 - 크든 작든 -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 p.277
이야기가 더욱 마음에 남는 건 회고록이기에 인물들이 갖고 있는 다양한 서사가 실제라는 점 때문이다. 헤로인에 절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 사이에서 멍한 눈으로 살아가는 플로르. 4대째 이어지는 약물중독으로 감옥을 들락거리는 폴, 한없이 쾌활하고 밝으나 무분별학 섹스나, 약물로 현실을 벗어나는 새라, 끊임없는 자해로 온 몸의 털을 뽑아대던 일라이자, 비아냥거리는 것 밖에 하지 못하던 토니, 지나치게 비대한 몸과 정신없는 말투로 사소한 일에도 격하게 흥분하는 랜디 등등 다양한 재소자들은 자신들의 새 삶을 꿈꾸며 찾아온 목장의 가축전담반에서 말과 진저를 만나 앞으로의 삶에 대한 선택권을 얻게 된다. 하지만 끝내 재활에 실패한 이들도 있기에 카라바조의 그림 속 인물들과 이 책의 인물들이 계속 겹쳐보이는지도 모르겠다. 같은 환경 속에 있으면서 변화하는 이와 변화하지 않는 이의 근본적인 차이, 변화를 시키는 말과 행동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이다.
"하프 브로크", 승마 용어로 반만 길들여진 말이라 한다. 우리 역시 우리를 둘러싼 사회 환경 속에 반만 길들여진 채 자신의 본성을 숨기고 주어진 시간을 살아내는 인물들이다. 저마다의 욕구와 언어, 갈망을 감추고 적당한 옷을 입고, 때에 맞는 적당한 말과 행동을 배워가며 살아가다 덜컥, 예기치 못한 순간들에 드러나는 진심들에 당혹스러움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럴 때 부서진 마음을 다시 이어붙여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찾는 법을 배우기 위해 어쩌면 우리는 평생을 노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세상을 향해 자신의 껍질을 벗고 나오는 사람들과 말을 지켜보며 일본의 도자기 수리법인 킨츠키(Kintsugi)가 떠올랐다. 깨진 도자기를 금가루나 다른 전분의 성질들로 이어붙여 아름다운 무늬를 가진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시키는 도자기 수리법. 때론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을 이어붙여 만들기도 하고, 때론 균열 간 그대로에 그림을 더해 만들어내기도 한다. 목장 안에 모여있는 사람들과 말은 세상의 기준에서 보면 실패자들이다. 모두 무언가에 중독되어 일상의 균형을 잃어버리고 비틀린 존재들이지만 진저의 세심한 지도를 통해 자신 안의 온전한 자신을 찾아 세상으로 걸어나오는 모습 속에서 킨츠키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떠올려 본다. 나 역시 그런 무늬로 채워갈 수 있는 사람이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