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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세비야 광장과 대성당에서

by Bono






스페인 광장에 발을 딛는다. 광장 자체가 갖고 있는 독특한 반원형의 구조가 우리를 향해 팔을 벌리고 있는 거인을 떠올리게 한다. 1929년 라틴아메리카 무역박람회를 위해 아니발 곤살레스란 세비야 건축가의 설계로 만들어진 이곳은 인근에 있는 마리아 루이사 공원과 함께 세비야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장소이다. 반원형의 구조로 만들어진 광장은 과달끼비르 강변 방향을 향해 열려있는데 이는 아메리카로 향하는 뱃길을 염원한 콜럼버스를 기리는 마음도 담겨있다 한다.







광장 안 인공수로 위 4개의 아름다운 다리가 있는데 까스티야, 레온, 아라곤, 나바라까지 스페인의 4대 왕국을 뜻한다 한다. 우아한 곡선을 그리는 다리 위를 지나 서로 반대편으로 갈 수 있게 만든 행선의 짜임을 따라 곳곳을 살핀다. 광장에서 가장 내 이목을 끄는 건 타일벤치이다. 아름다운 타일들로 스페인 각 주 도시들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세고비아에서는 대관식을 하고 있는 이사벨 여왕의 모습이, 바야돌리드에서는 페르난도와 이사벨 여왕의 비밀 결혼식 장면이, 톨레도에서는 까스티야 알폰소 6세에 항복하는 이슬람교도들의 모습이, 살라방카에서는 콜럼버스와 이사벨, 페르난도의 역사적인 만남 장면이 담겨 있다. 화려하고 따뜻한 색감의 타일들이 만들어내는 스페인 역사의 한 장면들이 정교한 삽화처럼 광장 아래쪽 벽면을 따라 펼쳐져있다. 이 그림들만 하나하나 살펴보며 걸어도 족히 1시간 이상 걸릴 규모이다. 타일 그림들을 따라 동생과 비를 맞으며 걷는다. 요소요소 눈에 담고 싶은 곳들을 마음껏 품으며 계단을 통해 오르락내리락하는 지금이 정말 즐겁다. 어릴 때 둘이 같이 미지의 세계처럼 보이던 해망산을 탐험하던 기분이 든다.



오늘 오전에는 스페인 약국에 가서 땀냄새가 나는 걸 싫어하는 동생을 위해 데오도란트도 구입해 오는데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다던 말을 잊고 호기롭게 영어로 말했다가 나중에는 한쪽 팔을 들고 열심히 겨드랑이를 문지르고, 거기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으며 행복해하는 표정을 짓는 걸로 데오도란트를 설명하는 가족오락관 몸으로 말해요를 찍고 말았다. 내 행동을 보고 필요한 품목을 알아챈 점원의 "유레카" 이 표정이 얼마나 환하고 밝던지. 내가 그녀에게 꽃 한 송이 건네준 기분이었다. 다음번에 온다면 반드시 스페인어 일상 회화 100개 정도는 외우고 오리라 다짐해 보는 아침이었다.


그 행동이 재밌었는지 지금 틈만 나면 내 얼굴을 보며 겨드랑이를 들어 올리는 동생의 장난스러운 표정이 꼭 어릴 때 나를 놀려먹으며 좋아하던 짱구 같던 그 얼굴이라 이 한 몸 우스워졌을지언정 기분만은 최고다. 웃음을 잊고 있던 녀석이 이곳에서는 무조건 많이 웃고 많이 먹고, 많이 보았으면 좋겠다. 어느 날 일상에서 지쳐 어둠에 잠식당할 때 그때 꺼내어 볼 수 있는 작은 화롯불 같은 이야기들이 바로 우리의 여행이었으면 좋겠다.















광장 탐험을 끝내고 우리는 세비야 대성당으로 향한다. 어젯밤에 보았던 히랄다탑과 더불어 이곳에 있다는 콜럼버스의 무덤도 볼 예정이다. 트램도 타보고 걷기도 하며 온전히 이 도시를 즐기며 간다. 세비야 대성당은 아부 야쿱 유수프가 1182년 지었던 이슬람 예배당이었다. 대지진으로 모스크가 무너지자 이를 보수하며 이슬람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1401년 성당으로 건축을 시작해 약 1세기 동안 축조해 1506년에 완성한 곳이다. 성당을 짓는 이들은 "사람들이 우릴 향해 미쳤다고 할 정도로 아름다운 성당을 지을 것이다."라고 공언했다고 한다. 스페인 건축물 속에 녹아있는 서로 다른 종교의 흔적들이 흥미롭다. 지우거나, 중화시키거나 그대로 두거나. 역사의 흔적들이 보여주는 서로 다른 문화권의 경계에서 그것들을 살펴보는 즐거움. 천천히 걸을 수 있어 누리는 이번 여행의 호사이다.



세비야 성당 벽면에 새겨진 조각들부터 우리를 압도한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여기에 매달려 있었을까? 하나하나 정교한 세공들로 만들어진 예수의 생애부터 예수 제자들의 삶까지 조각들을 살펴보는 데만도 한참이 걸린다. 간의 힘으로 했다기에는 어떤 광기까지도 느껴지는 조각들이 나를 내려다본다. 하지만 몰입도 잠시 2008년 대성당의 원본 설계도가 발견되면서 지속적인 보수작업이 이어지고 있어 어수선한 분위기를 피해 서둘러 육중한 철문을 지나 안으로 들갔다.



들어가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콜럼버스 무덤으로 향했다. 카스티야, 레온, 나바라, 아라곤까지 4명의 국왕들이 무덤을 떠받들고 있는 조각상이 보인다. 신대륙의 발견으로 스페인의 황금시대를 꿈꾸게 만든 그였지만 욕심을 버리지 못해 결국은 쫓겨나 다시는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겠다고 공언을 했다더니 그래서 이렇게 관이 떠 있는 걸까? 어릴 적에는 그저 신대륙의 발견자, 집념의 항해자, 용기 있는 여행가로 동경하던 콜럼버스였지만, 커서는 그가 발견한 땅에서 어떤 일들을 벌였는지 알게 되며 발견자가 아닌 그 땅 주민들에게는 테러리스트라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금시대를 열어 준 그의 관은 이렇게 번쩍이는 금빛 물결 사이 아직도 항해 중이다.







조금은 익숙해진 스페인 성당의 구조들을 살피다 히랄다탑으로 향한다. 꼭대기에 올라가 도시 전망을 살펴보자는 야심 찬 계획이었는데 높이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 관심 있게 바라보지 않았던 나의 불찰을 곧 후회하게 된다. 층마다 붙여진 숫자, 34층이 되기까지 좁다란 길을 올라가다 나는 동생에게 벽에 밀쳐져 그대로 박제가 된 개구리가 될 뻔했다. 종을 울리기 위해 말을 타고 올라가게 하느라 경사로로 만들어졌다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렇게 안 했다면 종지기는 무릎연골 관절이 1년 안에 사라지지 않았을까? 랄다 탑은 아래 2m는 로마인들이, 중간 82m는 이슬람인들이, 마지막 상층부 18m는 가톨릭인들이 쌓았다는데 그곳에 있는 24개의 종들은 각기 다른 이름들을 갖고 저마다 다른 소리로 시내를 향해 울려 퍼졌다고 한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도시 풍경이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을 나만의 캔버스 속 그림으로 남는다. 전망이 익숙해지자 눈에 들어오는 꼭대기에 있는 히랄디요 여인상의 아름다움도 인상적이다. 풍향계라는 뜻을 가진 히랄디요는 한 손에는 종려나무와 십자가를 갖고 있다. 독특한 복식의 여인의 모습을 바라보며 마지막 신의 한 수로 이 여인을 종탑에 올리며 탑의 완성을 자축했을 이들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탑에서 내려와 오렌지 정원으로 들어선다. 이슬람 문화의 흔적 위에 승리를 자축하듯 새로운 건물을 지었지만 이곳만큼은 그 아름다움에 반해 그대로 두었다 한다. 구불거리는 지붕의 선을 따라 짙푸른 하늘이 주르륵, 푸른 물을 머리 위로 세례식을 하듯 부어준다. 눈을 감고 만끽하는 바람과 희미하게 풍겨오는 오렌지 냄새, 감미롭고 달콤한 향신료 냄새에 샤프란 한줌을 손에 쥔 이국의 소녀가 된 상상을 한다. 아직 어린 소녀로, 아무런 걱정 없이 그저 옆에 선 동생과 내일을 꿈꾸며 천진한 미소를 지으며 이 곳을 달리는. 맞지 않는 어른의 옷을 입고 허덕이다 까무룩 잠들어 다시 아침을 맞는 내가 아닌 상상. 어쩌면 내가 누렸던 까마득한 생의 시간 한조각을 스치듯 만난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