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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 클로이 Aug 23. 2023

시작하는 말

10년 차 비개발자가 왜 스타트업 신(scene)으로 오게 되었냐고요?

우리나라 IT업계의 판도가 바뀐 것은 언제일까? 글을 시작하기 위해 나름의 정의를 내려본다. 아마도 블라인드(Blind; 직장인 대상 익명 커뮤니티 애플리케이션)에서 소위 대세 직장을 '네카라(네이버/카카오/라인)'가 아닌 '네카라쿠배당토(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민/당근마켓/토스)'로 명명한 때부터가 아닐까. 워라밸은 모르겠고, 일단 미래와 보상이 보장된 IT업계의 오아시스를 말이다. 그렇지만 내가 스타트업 신(scene)으로 오게 된 것은 '네카라쿠배당토' 뒤에도 몇몇의 회사들 이름이 붙기 시작한 2021년 겨울 즈음이다.


온라인 게임 업계 1위 A사에서 5년간 온라인 마케팅, 이벤트 기획, 플랫폼 기획, 오프라인 이벤트 운영 등 온갖 짬뽕 업무 담당

이커머스 예매 부문 1위 B사에서 4년간 프론트 및 백오피스 신규 기획, 운영 딥다이빙


스타트업에 관심을 두기 전 나의 이력이다. 다양한 업무를 맡았지만 만 9년의 직장 생활 끝에 나를 설명하는 최종 포지션 명은 '기획자'였고, 직책은 '과장'이었다.


그러니까, 판도가 변하는 것은 피부로 느끼고 있었지만 쉬이 옮길 용기가 나지 않았다. 원하면 정년까지도 보장해 줄 사기업, 강남3구에 위치해있고, 부모님이 아실 정도의 네임밸류, 초일류 대기업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정도면 제법 큰 회사에 다니고 있다는 자부심은, IT업계에서 '비개발자'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에너지 자원이 되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보기보다(?) 엉덩이가 무거운 탓에 한 직장에 정붙이고 오래 지내는 성향도 한몫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할 정도까진 아니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던 것도 있다. '문송한 와중에 이 정도 처우면 땡큐지.'라는 정신승리도 곁들이며 말이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고등학교 후배를 만났다. 그녀는 대학 전공으로 엄밀히 따지면 예체능 계열 출신인데, IT업계의 성지 중 하나인 인도에서 빡센 실무를 경험한 뒤 작은 스타트업에서 그로스 매니저(Growth manager)로 근무하고 있었다. 사실 만났을 때는 그로스 매니저라는 포지션 자체가 생소했다. 내가 맡았던 서비스 기획 외에 사업 기획, 전략 기획은 들어봤어도, 대뜸 그로스라니?


그녀가 들려준 스타트업의 일과 생활은, 내가 겪고 상상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그때의 내 심경을 빗대어 표현해 보자면- 나는 자전거를 만들기 위해 바퀴를 디자인하며 조립하고 있는데, 그녀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의 전체 설계를 맡고 있는 느낌이랄까. 뿐만 아니라 이 자동차를 누가 탈지, 어떻게 홍보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 차이는 비단 그녀와 나의 포지션의 다름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 <2020 우주의 원더키디>를 봤을 때만큼이나 쇼킹했던 스타트업 체험판을 끝내고 나니, 실제로 결제하는 과금 유저가 되고 싶어졌다. 현실에서는 내가 과금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돈까지 벌 수 있으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이직 준비는 마음먹은 지 두 달도 안 되어 끝이 났다. 원하는 조건을 모두 갖춘 스타트업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연봉 40% 인상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PO(Product Owner), Lead of the team

새로운 명함도 생겼다. 그렇게 스타트업에서 사계절을 보내고, 다시 봄이 올 즈음 나의 첫 스타트업 신에서의 여정이 끝났다. 모든 여정이 그렇듯 끝을 내고야 선명해지는 것들이 있다. 앞으로 스타트업 신에서 겪은 제품의 생애 주기 및 몇 가지 굵직한 사건 등을 통해 그간의 여정을 돌아볼 예정이다.


그렇지만 단지 자조적인 에세이를 쓸 생각은 없다. 이 글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기이면서 동시에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거나, 탐험하고 싶어 하는 미래의 동료들에게 보내는 애정 어린 안내서가 될 것이다.


이런 분들께 강력히 추천합니다.

1. 초기 스타트업에 종사 중이거나, 종사하고 싶은 예비 스타트업 신 스틸러들
2. 비개발자로 IT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전투원들
3. 처음 리더가 되어 어떻게 Z세대(Generation Z)들을 다뤄야할지 고민인 나의 동년배 초보 리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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