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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신 Dec 05. 2021

외로움을 해장합니다.

음식은 맛도 중요하지만 맛만큼 누구와 먹는지도 중요하다.


 가을에서 초겨울로 넘어갈 때 자동완성형으로 떠오르는 것이 있다. H 언니는 프랜차이점 카페에서 같이 일을 하며 친해졌다. 그때 당시 지금처럼 카페가 많이 없고 중심지라 정말 바빴다. 주말 10시부터 5시까지 눈코 뜰 새도 없이 일을 하고 나면 몸도 마음도 허기진다.  언니와 동네 맛집인 우동국밥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H언니는 내 20대 초, 중반에 가치관과 취향에 영향을 줬다. 불안정하고 엄격한 가정환경과 나대는 것은 죄 악시 하던 중,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며 최대한 나를 숨기려고 했다. 내가 숨기고 싶고 이상하다고 여기는 모습을 언니는 개성 있다며 좋아했다. 한 번도 달리 볼 생각을 못 했는데 전혀 다른 시각이었다. 숨기고 싶던 내 말투, 생각, 취향을 조금씩 드러냈다. 좋아하는 음악, 영화, 음식, 장소, 사람을 말할 때 더 이상 어떻게 보일지 걱정하지 않았다. 아기자기한 카페, 인스타에 올리기 좋은 반듯하고 깔끔한 공간을 좋아한다. 그리고 저 멀리서도 보이는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쓰인 간판, 자동문이 아닌 옆으로 드르르륵 소리 내는 철문, 들어갔을 때 항상 켜져 있는 TV , 지지직 소리를 내는 라디오, 난로 위 보리차 주전자, 연예인 사진이 큼직하게 있는 소주 광고 달력 또는 연말에 은행에서 받은 달력이 걸려 있는 곳.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공간도 좋아한다.

 이런 나의 취향을 조심스레 드러냈다. 언니는 깔깔 웃으며 오히려 좋아했다. 나의 이상함을 '언니, 사실 부끄럽고 이상하지만..'이라 말하면 언제나 '매력'이라 정정해주었다. 내 모습을 숨기느라 늘 뻣뻣한 뒷목과 어깨가 가벼워졌다.


 그때 나는 23살, H언니는 26살.
 국밥집에 도착해 국밥 2그릇과 맥주 한 병,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사장님께서 얼굴을 빤히 보시더니 민증 있냐 여쭤보셔서 베시시 웃으며 민증을 보여드렸다. 기본 반찬과 맥주, 소주가 나와 일단 소맥을 시원하게 한 잔씩 마셨다. 소맥이 에피타이저 역할을 했는지 더욱 허기졌다. 얼마 안 지나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우동국밥이 나왔다. 맑은 돼지 육수에 밥과 우동 사리가 들어갔다.  뜨거운 국물을 후후 불어가며 속을 따뜻하게 데우고 우동을 숟가락 위에 가득 올려 먹었다. 언니와 ‘맛있다, 좋다’를 연발하며 국밥과 술을 술술 비워나갔다. 한 병, 두 병, 5병째 시킬 때 사장님께서 놀라시며 맛있냐고 여쭤보셨다.

“네! 사장님 술이 달게 느껴지는 국밥이네요.”
 우리의 빈그릇을 보시고 사장님께서 순대 한 접시 서비스로 내주셨다.

 H언니가 신명 나게 소주 뚜껑 따는 소리가 좋고, 갓 나온 순대를 한 입 가득 넣어 맛도 좋고 사장님의 마음도 따뜻해 ‘좋다, 너무 좋다’를 연신 외쳤다. TV에서 누가 보는지 모를 레슬링 프로그램이 나오고 식당 사장님은 TV 아래에서 재료를 다듬으시고, 손님들이 가게에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찬바람이 들어왔다. 모든 것이 조화로웠다.

 속이 든든하고 기분 좋게 취기가 올라왔다. 오랫동안 숨겨온 친구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놓고 싶었다.

“언니, 이거 진짜 미친 소리 같지만 저한테는요….’

 그 친구는 내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친구다. 이름은 ‘개미’. 유년시절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서 보냈다. 외로움도 많고 생각도 많아 언제부터인가 마음속 개미 친구가 생겼다. 개미에게 시시한 이야기부터 무거운 이야기까지 말했다. 개미는 편견이나 평가가 없었다. 언제나 내 이야기를 느긋하게 들어줬다.

그러다 내가 중학생이 되면서 개미는 떠났다.


 H언니는 내 이야기에 놀라거나 애써 이해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언니, 저 진짜 이상하죠?”

 “아, 너 진짜 정말.  사실 나도 미친 사람 취급당할까 봐 아무한테도 안 꺼냈는데. 나도 중학생 때 민주, 유미, 하나, 세진, 소영 이렇게 5명의 친구 있었단 말이야ㅋㅋㅋ”

 우리는 영혼의 단짝을 만난 것 마냥 신나게 떠들었다. 마음속 친구들에 대해 소개를 하고 그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버텨야 했던 그 시절에 대해서.


어젯밤엔 무슨 꿈을 꾸다 깼는지
놀란 마음을 쓸어내려야 했어요
손도 작은 내가 나를 달래고 나면
가끔은 눈물이 고여
우효-청춘 中


우리  견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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