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 제대로 읽어 본 적 없던 내가 책 읽는 할머니를 꿈꾸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20살 이전까지 책 한 권 제대로 완독해본 경험이 없다. 중·고등학교 시절 독후감 숙제도 지식인과 블로그 글을 짜집기하여 제출했다. 대학 신입생 때도 책 읽고 감상평 쓰는 과제를 같은 방법으로 제출했다. 독서와 거리가 멀던 내가 책 읽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워준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바로 카라멜마키아또 할머니다.
22살 나는 이디야 커피에서 오픈 시간대에 근무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저가 프랜차이즈점이 없어 엄청 바빳다. 가게 근처에는 은행, 학원, 대형마트, 병원이 많아 출근 시간 커피 사 가는 사람이 많았다. 출근 시간이 지나면 물류와 우유가 산더미처럼 도착한다.
어느 날 체구가 작고 단발 파마머리에 갈색 안경을 쓴 할머니가 카운터에 서 계셨다. 창고에서 정신없이 정리하다 급히 나와 “주문 도와드릴까요?”하니 가게에서 제일 잘나가는 메뉴는 무엇인지 달지만 너무 달지 않은 커피는 무엇인지 이것저것 물으셨다. 할머니의 질문에 열심히 답하고 좋아하실 것 같은 커피를 추천했는데 주문은 카라멜마키야또를 주문하셨다. 그 이후로 할머니는 날씨가 춥던 덥던 비가 오든 맑든 언제나 늘 10시쯤 가게에 오셔서 따뜻한 카라멜마키야또를 주문하셨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책과 필통, 노트를 꺼내신 후 2~3시간 정도 독서하셨다. 책을 단순히 눈으로만 읽는 게 아니라 책에 밑줄도 긋고 노트에 메모도 하시면서 공부하듯 독서하셨다. 창고가 할머니가 늘 앉으시는 자리 바로 앞이라 어수선하고 시끄러웠을 텐데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으셨다.
어느 주말,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옆에 멋있는 사람이 서 있었다. 몸에 딱 맞는 무릎 위까지 오는 원피스에 굽이 있는 샌들을 신고 선글라스를 끼고 손에는 두꺼운 책 한 권이 있었다. 패션의 완성은 책이었나!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멋스러운 분위기. 파리에 가본 적은 없지만 파리 노년 여성들은 다 이런 분위기일까. 1년 후 내 모습도 그려지지 않지만 할머니가 된다면 책 읽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멋에 매료되어 힐끔힐끔 보는데 어? 익숙한 단발머리와 체구! 카라멜마키야또 할머니였다. 평소 체크 남방과 헐렁한 면바지만 입으시던 분이 완전 다른 스타일을 하고 계셔서 더 멋있었다. 매일 멋있게 옷을 입으셨다면 이렇게까지 인상적이지 않았을 것 같다. 그리고 원피스와 잘 어울리는 아이템은 다른 무엇도 아닌 책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책 읽는 할머니가 되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독서 스쿼트만큼 어려웠다. 한 번도 쓰지 않은 근육을 사용하고 만드려니 여간 힘든 일은 아니었지만 충격적일 정도로 멋있었던 마키야또 할머를 생각하며 매일 조금씩 읽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