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잡는 게 어려울 뿐, 친구를 만나면 최대한 오래 같이 있고 싶다.
에너지 방향이 내부로 향해 있는 나는 주로 혼자서 시간을 보낸다. 집에 누워 넷플릭스나 유튜브 보기를 좋아한다. 즉흥적인 재미도 장시간 지속되면 뭔가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싶어진다. 그럴 때 책상에 앉아 책을 읽거나 다이어리를 쓴다. 외출할 일이 생기면 미뤄둔 일을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한번에 해결한다. 그리고 집으로 오기 전 서점에 들려 책과 문구류를 실컷 구경하다 온다. 그렇게 하루, 일주일, 한 달, 한 계절이 지나간다.
내 삶에만 집중하고 있을 때 고마운 친구들이 먼저 연락을 준다. 서로 안부를 간단히 묻고 약속 날짜를 잡는다. 새해 인사, 생일을 제외한 보통의 날에 연락은 만남이다. 만나기 전 어디서 무엇을 먹을지 찾는다. 내 친구들과 나는 입맛이 까다롭지 않아 줄 서지 않아도 적당히 맛있는 식당과 소리치며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목소리가 잘 들리는 카페를 미리 찾아둔다. 약속날, 만나는 순간부터 서로 만나지 못한 시간 동안 각자의 에피소드를 신나게 턴다.
한낮에 만나 한밤중이 되면 편도가 따끔따끔 아프다. 그때마다 “한 달 치 할 말 오늘 다 했다. 역시 목이 아파야 제대로 만난 거지!” 말하고 친구와 깔깔 웃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언제나 아쉽다. 어릴 땐 너희 집까지 데려다줄게 하며 서로의 집을 계속 데려다주다 결국 중간지점에서 헤어졌는데 지금은 서로 사는 지역이 다르고 체력이 다르다. 그리고 이제 안다. 아쉬움이 있기에 다음을 약속할 수 있다는 것을.
다정히 서로의 이름 부르며
오랜만에 만난 내 친구
밀린 마음들 꺼내다 보니
아껴 간직하고 싶은 말들이 가득해
- 강아솔, <다 고마워지는 밤> 中
친구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쉬움 마음과 즐거웠던 순간을 복기하며 카톡 메시지를 보낸다. 첫 문장은 ‘오늘도 목 아플 정도로 신나게 떠들고 놀았다. 나는 잘 도착했어. 00 너는 잘 도착했어?’로 시작해 오늘 재밌었던 순간과 인상적인 대화를 적는다. 그리고 나는 멋있는 척하지만 사실은 열등감과 자의식으로 똘똘 뭉쳐 있고 찌질함이 가득한 사람인데 친구는 어째서 오랫동안 내 곁에 있어 주는지. 어떤 평가나 검열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해 줘서 이 고마움을 어떻게 표현할지 몰라 구구절절 적는다. 중간이 없는 나는 전체 보기를 눌러야 할 만큼 메시지가 길다. 평소 성격이라면 간단한 답장도 언제나 휴대폰 메모장에 한 번 쓰고 검열 후 보내지만 오늘처럼 고마운 마음으로 가득한 날엔 채팅창에 곧바로 내 마음을 전한다. 즐겁고 신나는 마음과 다음 만날 때까지 각자 자리에서 잘 지냈으면 하는 마음을 검열 없이 있는 그대로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