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쿠다 히데오,<공중그네> 서평
『공중그네』, 오쿠다 히데오, 은행나무, 2005
『공중그네』는 131회 나오키상 수상작이다. 표제작인 「공중그네」를 포함해 다섯 편의 연작 소설이다. 모든 단편에 등장하는 엽기적인 정신과 의사 이라부와 모든 환자에게 심드렁한 간호사 마유미가 있다. 단편마다 각각 다른 신경증 환자들이 나온다. 자칫하면 무거워질 수 있는 주제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낸다.
표제작인 「공중그네」의 주인공 고헤이는 서커스에서 공중그네 파트를 맡은 베테랑 곡예사다. 그는 공중그네 공연에서 파트너 우치다의 손을 잡지 못해 떨어진다. 공연 이후 연습에서도 계속 실수한다. 동료들은 쉬는 것을 권했지만 고헤이는 자신의 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계속 연습한다. 실수 횟수가 늘어날수록 우치다에 대한 오해가 커진다. 결국 과거 파트너였던 니바와 아내의 권유로 이라부 종합병원 신경과에 방문한다. 이라부는 서커스에 호기심이 생겨 서커스 공연장으로 왕진한다. 고헤이는 진료 때마다 비타민 주사를 맞고 이라부가 처방해준 불면증 약을 먹지만 공중그네 공연과 연습에서 여전히 떨어진다. 우치다가 의도적으로 자기 손을 잡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 고헤이는 증거를 남기기로 한다. 아내 에리가 캠코더로 찍어준 영상을 확인하니 허리가 굽어져 제대로 점프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이 있었다. 그제야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난 아무래도 허리가 굽어지는 병에 걸린 것 같습니다.”(중략)“다른 사람 가슴속으로 뛰어들 수가 없어요.”p.119
고헤이가 다른 사람 가슴속으로 뛰어들 수 없게 된 건 어릴적 그의 부모님도 서커스 단원이라 전학이 잦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학교에 적응 할 때 쯤 전학을 가고 전학 가는 곳마다 서커스 단원이라는 이유로 놀림을 받았다. 고헤이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타인을 경계하고 회피하게 되었다.
자신의 자리가 빼앗길까 편히 쉬지 못하는 모습은 고헤이뿐만이 아니다. 「3루수」의 주인공 신이치도 있다. 그는 올스타 고정 3루수지만 송구를 할 수 없게 된다. 「여류작가」의 아이코는 자신이 썼던 소설 속 인물들의 직업이 겹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구토한다. 신경 쓰는 순간 공포감을 느끼는 「고슴도치」의 야쿠자 세이지가 있다. 그의 일은 늘 사람들을 위협하는 거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는 이쑤시개만 봐도 호흡 곤란이 오고 식은땀을 흘린다. 세이지와 반대로 신경 쓰는 순간 파괴충동이 일어나는 「장인의 가발」의 다쓰로가 있다. 다쓰로는 장인의 가발을 볼 때마다 벗기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책에 나오는 환자들은 모두 자기 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사회적 지위가 있다. 기대 받는 위치인 만큼 지금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부담감과 자신의 자리를 빼앗길지도 모르는 두려움이 늘 가슴 속 한편에 자리 잡고 있다. 자신의 본 모습보다 사회적 페르소나를 쓰고 있어야 하니 스트레스가 크다. 하지만 페르소나를 쓰고 있기에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에도 예의를 갖출 수 있다. 사회적인 페르소나가 내 모습이라 여길 때 자아와 충돌이 생긴다. 칼 구스타프 융은 자아가 페르소나와 동일화하는 것을 ‘팽창’이라고 한다. 페르소나의 지나친 팽창은 정신 건강에 위험하다. 페르소나가 지나치게 발달한 사람은 기대한 모습에 도달하지 못할 때 열등감과 자책감에 몰리기도 한다. (칼 구스타프 융·캘빈 S.홀, 『칼 구스타프 융』, 스타북스, 36쪽) 신경과 의사 이라부는 페르소나에 사로잡히지 않은 사람처럼 보인다. 그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정신과 의사의 모습과 거리가 있다. 지성인의 모습보다 어린아이처럼 호기심이 많고 겁이 없다. 야쿠자를 만나도 전혀 긴장하지 않고 처음 시도해보는 공중그네도 겁 없이 뛰어내리고 대학 동기의 장인이자 학부 시절 교수님이었던 가발도 서슴없이 벗겨낸다. 이라부는 해결책만 내놓는 게 아니라 환자와 함께한다. 선단공포증이 있는 세이지가 다른 조직 두목과 교섭하러 갈 때 함께 그 장소에 간다. 곡예사 고헤이를 병원에 내원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서커스 공연장에 왕진하러 간다. 3루수 신이치가 악송구 고민으로 병원에 찾아왔을 때 함께 진료실에 나가 야구 연습을 한다. 장인의 가발을 벗기고 싶어 하는 다쓰로를 위해 함께 가발을 벗긴다.
이라부의 진료실은 지하 1층에 있다. 그는 병원 상속자라 얼마든지 쾌적한 공간에서 진료를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지하에 있는 건 환자들이 어두컴컴한 지하를 거쳐 진료실 문을 열기까지 작은 테스트 같은 게 아닐까. 그는 환자들이 왔을 때 예의를 갖추지 않고 비타민 주사 놓는 것에 집착한다. 그의 엽기적인 모습은 어떤 권위도 느껴지지 않는다. 때론 권위 있는 사람의 말보다 나보다 더 이상해 보이는 사람을 통해 깨달음과 힘을 얻을 때가 있다. 그래서 환자들은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웠던 자신의 문제를 말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라부는 엽기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너무 뛰어난 의사라 그의 말과 행동들이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계산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괴짜든 명의든 이라부는 외부의 영향을 신경 쓰지 않고 진짜 자기 삶을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성격이란 건 기득권이야. 저놈은 어쩔 수 없다고 손들게 만들면 이기는 거지.”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유쾌하게 이끌어가며 단편마다 나오는 환자들을 보며 자신을 들여다보게 한다. 책장을 덮고 나면 이라부 박사에게 진료받은 것처럼 후련해진다. 자신의 문제로 힘겨워하는 사람에게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를 권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