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별자리

그래요, 사랑이었어요 _<7>

by 김동하

중학생이 되던 해, 남몰래 자주 울었다. 졸업한 초등학교에 가서 철봉에 매달리고, 운동장을 뛰거나 하며 울고는 했다. 그 당시 친구들이 고스란히 같은 중학교로 진학했건만(여자 동창생들은 여중으로 진학했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지나간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주체할 수 없었다. 중학생이 된 친구들은 텃세를 부리는 읍내 아이들 틈에서 살아남고자 점점 거칠어졌고 나는 그런 변화가 슬펐던 것 같다. 어린 나이였음에도 돌아오지 않을 한 시절이 지나갔다는 사실에 감정이 복받쳤다.


그 무렵, 마음의 지도가 넓은 사람이 부자라는 글귀를 읽었다. 그때부터 내 마음의 헛헛함을 마음의 지도로 채워갔다. 맨손으로 천렵할 때 따라가며 보았던 물고기들의 유려한 유영과 다슬기가 손으로 쓸어 담을 정도로 많이 잡히는 보, 바람이 불면 갈치의 지느러미처럼 유려한 물결을 그리는 들판, 엄마의 손바닥 같은 혀로 나를 핥아주던 반려견을 마음의 지도에 새겼다.


더 커서는 화병에 꽃인 화초의 옅은 그림자와 구동 공원에서 본 지팡이 짚은 노신사의 뒷모습, 매일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자기 터를 비질하는 버드나무를 추가했다. 이탈리아로 신혼여행을 갔을 때는 올리브나무의 청자색을 그려 넣었고, 월산동에 자취하던 시절 좁은 골목의 벽에서 본 원색적인 낙서들도 빠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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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면 내 마음의 지도에 새겨지는 목록은 대체로 내가 사랑하는 풍경과 존재들이었지만 때론 슬프거나 눈물겹고, 직접 겪지 않은 것들도 있었다. 그건 사랑의 속성에 슬픔과 눈물이 섞여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가장 최근의 것으로는 아빠의 삼우제를 지내고 돌아오며 본 보는 이의 속도 모르고 황홀한 노을이 있고, 그보다 오래된 거로는 동생들이 들려준 부모님 이야기가 있겠다.


때론 직접 겪지 않고도, 누군가의 입이나 글을 통해서 들어도 내 체험인 것처럼 온몸을 저릿하게 만드는 체험들이 있다. 가령 해양경찰을 준비하던 첫째 동생이 체력 검정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작은 체구로 사내들에 섞여 테스트를 치러야 했던 동생은 따로 체육관도 다니지 않고 집에서 운동했다. 그런 동생의 운동 파트너 역할을 아빠가 해주고는 했단다.


만성이 되어 버린 관절염 때문에 그냥 걸을 때도 부자연스럽던 아빠는 체력 검정을 앞둔 동생의 러닝메이트가 되어 노을 속을 같이 달려주고는 했다. 나는 그 장면을 직접 보지 못했지만 자주 상상했다. 내가 자란 마을은 석양이 끝내주는데 그 장엄한 빛 사이로 부녀가 함께 달리는 모습을 떠올릴 때면 내 심장도 빨리 뛰는 것 같다.


막냇동생의 이야기도 있다. 고부갈등에 지친 엄마는 해서는 안 되는 생각을 수시로 했던 것 같다. 아마도 그런 날 중 하루였을 터, 엄마는 내 마음의 지도에 가장 많은 지명을 올린 개울에서, 내가 내 개인 어항이라 명명한, 그 개울에서 수심이 유일하게 사람 키를 넘는 곳에서 수면에 비친 당신의 얼굴을 보며 풍덩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때 멀리서 당신의 막둥이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그러나 또렷하게 들렸다고 한다. 화들짝 정신이 들더란다. 막 아이가 생긴 나는 이제야 그 미약한 울음이 가진 인력을 이해한다. 엄마는 달의 인력만큼이나 거대한 울음에 이끌려 곧장 집으로 달렸다. 좀처럼 내 부모의 달리기를 본 기억을 떠올릴 수 없는 나로서는 두 사람의 달리기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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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군가를 향해 숨 가쁘도록 달려본 적이 있던가. 도리어 누군가를 등지고 달리지 않았나. 돌이켜보면 가슴이 터지도록 달려갈 수 있는 대상이 많을수록 행복한 삶이란 생각이 든다. 비록 그 대상이 지나간 한 시절에 남겨져 있더라도, 얼른 보기에는 달리는 폼이 우스꽝스러울지라도, 누구도 그 기울어진 몸뚱이를 비웃지는 못할 것이다. 최소한 절박하게 달려본 사람이라면 말이다.


고요한데 숨이 차는 새벽이다. 누운 채로 어딘가를 달려가는 마음이다. 내 마음의 지도에 내가 닿고 싶은 존재들이 늘어가길, 그렇게 슬프도록 사랑스러운 존재들이 많아지길. 떠나갔으나 남아있는 당신들을 떠올리며 깜깜한 천장에 수(繡)를 놓는다. 어쩌면 내가 마음의 지도라 생각했던 건 사실 마음의 별자리였는지도 모르겠다. 내 마음이 길을 잃고 헤맬 때 이정표가 되어주는 북두칠성 같은 별자리 말이다. 그래서 죽은 사람은 별이 되나 보다. 남아있는 사람들의 길잡이가 되어주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