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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신지 Dec 01. 2017

내 마음에 드는 인생

나는 이제 다가올 나이가 기다려진다



  

1

‘몇 밤이나 자면 어른이 될까?’


어렸을 땐, 그런 생각으로 손꼽아 기다릴 만큼 얼른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지금은 어려서 불가능한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뜻했다. 부모와 함께가 아니면 지방 소도시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했던 나이, 무엇을 하고 싶든 허락과 지원이 필요했던 나이, 서툴러서 저지른 실수들로 며칠 밤을 뒤척였던 나이. 그 모든 제약과 미숙함이 어른이 되는 순간 사라질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곳을 떠나면, 스물이 되면, 마침내 내가 기다려온 인생이 시작되겠지. 하루에 버스가 몇 번 다니지 않던 시골 마을 끝집, 물려 입은 옷의 보풀을 뜯으며 어린 나는 기다렸다. 어른의 나이를.        


   



그리고 마침내 그 작은 마을을 떠나 스무 살이 되었을 때, 나는 더 이상 아무 것도 기다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떤 나이를 손꼽아 기다린다거나, 오지 않은 미래에 설레어 하는 일은 이상하게도 교복을 벗는 순간 함께 끝나버렸다. 


스무 살의 내가, 서른을 기다렸던가? 서른에 대해 이야기하느라 친구들과 상기된 뺨으로 마주앉곤 했던가? 아니다. 그 시간은 현재로부터 너무 멀리 있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고작 이런 것이 전부였다. “그때쯤 우린 다들 뭐하고 있을까?” “지금의 우리를 웃으며 돌아보는 날이 올까?” 


꿈꾸며 설레어 하는 대신, 우리는 그 나이를 걱정했다. 취업은 했을까, 어렵게 들어간 직장에서 정작 하나도 행복하지 않은 건 아닐까, 미뤄둔 효도는 하고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은 만났을까, 자주는 아니더라도 친구들과 여전히 함께 얼굴 보며 살고 있을까. 


더 이상 다가올 나이를 기다리지 않게 된 마음엔, 그 나이가 되어 할 수 있게 될 일들에 대한 기대보다 그때 가서도 못하고 있을 일들에 대한 걱정만 들어차 있었다. 한해가 지날 때마다 우리는 초조해졌다. 세상의 보폭에 발을 맞춘다는 것은 그런 것을 뜻했다.       


    

3

한편 그런 불안감과는 별개로, 세상은 나이 드는 것을 흔한 농담의 소재로 삼곤 했다. 떠도는 농담을 내 것처럼 입에 담던 나이에 그래서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고작 스물다섯인 우리가 ‘반오십’이나 ‘꺾였다’는 표현을 서슴없이 할 때, 재수나 삼수로 들어온 동기의 나이가 우스개나 놀림거리가 될 때, 우리는 그 나이 듦을 무의식적으로 피하고 싶어 했던 게 맞다. 


나이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잃어버릴 것들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빛나는 청춘을 잃고, 밤샘을 해도 거뜬한 체력을 잃고, 세상일에 기민하게 반응하던 감성을 잃고 필연적으로 별 볼일 없는 어른이 될 순서만 남은 것처럼. 잃은 자리를 채우며 비로소 얻게 될 것, 그 나이에 이르러서야 가능해질 것들에 대한 생각은 그리 해보지 못했다.        



   

4

언젠가 <뉴스룸> 스튜디오에 나온 한석규는 “나도 점차 구닥다리가 되어가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 같은 걸 배우로서 느끼지 않느냐”는 손석희 아나운서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배우의 좋은 점을 조금 거창하게 말씀드린다면, 나이 먹는 걸 기다리는 직업이 배우입니다. 젊었을 때는 그런 생각 안 해봤어요. 나이를 조금씩 먹으면서 배우라는 게 정말 좋구나 하는 점 중에 하나가 60이 되어서 70이 되어서 제가 하고 싶은 역할, 또 그때를 기다리는 즐거움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게 있어요.” 



꼭 배우가 아니어도, 우리는 모두 역할로 산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게는, 나로 산다. 그러니 어떤 삶을 살고 있든, 직업과 무관하게, 우리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서른이 되어서, 마흔이 되어서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며 그때를 기다리는 즐거움이 있다고. 


그럴 때 나이는 기꺼운 변화가 된다. 어린 날의 우리가 몇 밤이나 자면 어른이 될지 그토록 손꼽아 기다린 것처럼, 지금은 할 수 없는 것들을 그때엔 할 수 있게 되리라는 기대로 다가올 나를 기다려볼 수도 있는 일이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던 그의 말 또한 기억에 남는다. 흔히 말하는 전성기를 이미 지나온 배우, 그 이후의 작품이 줄곧 오르락내리락 했던 배우, 그리하여 누군가에게는 과거로만 기억되는 배우는 ‘인기란 건 곧 젊음인 것 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젊었을 때의 제 젊음을 생각해 보면, 좋은 건 알겠는데 늘 좋지만은 않았던 것 같아요. 뭔가 늘 달떠 있고, 불안하고, 우울하고… 제게 젊음은 그런 편이었어요. 지금은 그 젊음을 겪어낸 후의 또 다른 평온함도 참 좋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그렇다면 아마, 앞으로도 내가 나이를 먹어갈 때마다 ‘또 다른 무엇’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걸 기대할 수 있고요. 그것을 기다리는 일이 참 좋습니다.”    


      


‘또 다른 무엇.’ 

아직 오지 않았으니 당연히 알 수 없는 그 무엇. 

그렇다면 걱정하거나 두려워하기보다 기다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한 계절에 한 번씩 두통이 오고 두 계절에 한 번씩 이를 뽑는 것
텅 빈 미소와 다정한 주름이 상관하는 내 인생!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  이근화의 詩,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中     



이 시를 만난 건 스물여섯의 가을이었다. 전문은 곰곰이 읽을수록 쓸쓸해지는 시였지만,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명랑한 어조가 문득 삶을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다. 시의 한 구절처럼 ‘내가 마음에 들고 나를 마음에 들어하는 인생’을 산다는 건 얼마나 근사한 일일까. 여태껏 그런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사람처럼 나는 이 시 앞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렇게 살 수 있을 때, 나와 내 인생은 가장 마음 잘 맞는 친구가 될 것이다. 




시인은 또한 말한다. ‘아직 건너보지 못한 교각들 아직 던져 보지 못한 돌멩이들/ 아직도 취해 보지 못한 무수히 많은 자세로 새롭게 웃고 싶’다고. 그렇게 말하는 것은 분명, 나이를 기다리는 일이다. 내 마음에 드는 인생을 살아보겠다는 다짐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제 다가올 나이를 말할 때, 아직 가보지 않은 여행지에 대해 말하듯 말하고 싶다. 분명 멋진 곳일 거라고, 거기 도착하면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보고, 하지 못했던 얘기를 나눌 수도 있을 거라고. 


그리하여 그곳에서라면, 


내가 마음에 들고, 

나를 마음에 들어하는 그런 인생을 살아볼 수 있을 거라고.      





글과 사진 _ 김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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