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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신지 Mar 22. 2018

마음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표현하지 않는 마음은 사실 세상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가끔 기분 전환을 하러 꽃시장에 간다. 마음에 드는 화분을 하나 고르고, 어떻게 키우면 될지 물어본다. “반그늘이 제일 좋아요. 물은 일주일이나 열흘에 한 번 겉흙이 말랐다 싶을 때 주시면 되고.” 아, 반그늘, 겉흙, 쉽네… 일 리가 없고, 전혀 알아듣지 못한 채 되묻는다.


“그러니까 물은 일주일에 한 번이요?”
“네. 겉흙이 완전히 말랐다 싶을 때 흠뻑 주는 게 좋아요.”

    


그리고 두어 달 뒤, 화분 앞에서 또다시 상심해 있는 나를 발견한다. 새로 들인 화분이 맥없이 죽고 나면 마음도 축 처진다. 분명 꽃집에서 배운 대로 일주일에 한 번씩 물도 주고, 햇볕도 적당히 쬐어주었는데…. 하라는 대로 다 했는데도 이 모양인 걸 보면 나는 어쩔 수 없는 연쇄 살초마인가 보다고 스스로를 단념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몇 개의 식물을 떠나보내고 난 뒤, 깨달은 게 있다. 가만 되짚어 보면 꽃집 주인들의 말은 기계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 물을 주란 게 아니었다. “겉흙이 완전히 마른 게 보이면 주세요.” 그건 이 나무가 과습에 약한 편이므로 조금 건조하게 키우라는 말. “잎 가장자리가 쪼글쪼글해지면 물이 필요하다는 뜻이에요.” 물 주는 날짜를 딱 정해놓기보다 계절에 따라 습도에 따라 달라지는 잎의 상태를 살피라는 말. “햇볕이 너무 강하면 붉게 변해요.” 볕이 너무 세진 않은지 때때로 식물의 안색을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말.     


그러니까 가까이 두고 꼬박꼬박 물을 주면서도, 정작 그 식물이 잘 크고 있는지 관심을 두지 않기란 얼마나 쉬운지. 그 정도 관심도 못 기울이면서 나는 내가 식물을 키운다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 너무 목마르거나 햇볕이 뜨겁다고 내내 말을 걸고 있었던 식물을 모른 채 지나치면서.   


  

예전엔 ‘마음이 있으면 되지’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마음을 옮겨놓은 행동이 훨씬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내 돈 주고 식물을 사서 집안에 들였으니 내겐 당연히 식물을 아끼는 마음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생각일 뿐이었다. 아끼는 마음도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으면 그다지 소용이 없었다. 표현하지 않은 마음은 사실 세상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그건 궁색한 변명과 자기 합리화가 필요할 때 꺼내 드는, ‘나만 알고 있던’ 마음에 그칠 때가 더 많으므로.     

그렇게 생각하고 돌아보니 자주 그랬다. 생일 잊어서 미안해, 근데 마음은 그런 게 아니었어. → 진짜 마음이 있었다면 잊지 않았을 것이다. 섭섭하게 해서 미안해, 그러려고 했던 게 아닌데. → 애초에 섭섭할 일을 만들지 않는 게 어땠을까. 나 원래 이런 거 잘 못 하는 거 알잖아. → ‘원래’라니… 그냥 내가 그러지 않는 게 편하니까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뿐이다.     


그러니까 그런 말 뒤에 숨어서, 보이지도 않는 ‘마음’ 뒤에 숨어서, 보이는 행동을 자꾸 변명하는 내가 보였다. 어느 날은 엄마의 생일 케이크를 고르려다 한참을 서 있었다. 엄마가 좋아하던 게 고구마 케이크였더라, 생크림 케이크였더라? 내가 고민하는 줄로만 알고 옆에 있던 친구가 말했다. “그냥 엄마가 좋아하시는 걸로 사.” 그러니까… 그걸 모른다는 게 내 문제야….      



내 마음이란 고작 그런 것이었다. 생일을 챙기려고만 할 뿐 정작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도 모르는. 더 나쁜 건 다음 해에도 같은 고민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잘도 “내 마음 알지?”라고 말한다. 그런 마음을 누가 알겠는가.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 누군가에게 마음을 쓴다는 건, 그 사람에 대해 더 많은 TMI(Too Much Information)를 가지고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이 지금 어떤 마음 상태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또 무엇을 가리는지, 요즘 무엇이 필요하다고 했었는지, 이것 둘 중에 그 사람이라면 무엇을 고를지. 사소하지만 사실은 제일 중요한 그런 것을 알려고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물도 잘 줬는데 왜 시들어버린 거냐고 애꿎은 식물만 탓하는 사람이 되겠지.     


“내 마음을 궁금해하는 사람을 곁에 둬야 한다. 그리고 나도 상대의 마음을 궁금해해야 한다. 나에 대한 마음을 궁금해하는 것 말고 그냥 상대의 마음이 궁금해야 한다. 우리는 궁금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우지 않았다. 그게 얼마나 따뜻한 경험인지.”     



언젠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서천석님의 SNS에서 보고 옮겨 적은 말이다. 누군가를 궁금해한다는 건,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그 중간에 있을 것이다. 나는 당신의 안부가 궁금하다. 궁금해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말을 걸어 묻는다. 그만큼을 건너가기도 사실은 어렵다. 마음은 있지만 표현하지 못하고, 잘해주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는 그런 게 우리에겐 더 흔한 일이기 때문이다. 바쁘니 누구나 그럴 수 있다지만, 다 같이 바쁘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더 귀해지는 것인지도.     



그러니까 이런 얘길 하고 있는 게 얼마나 소용이 없느냐면, 이런 글 쓸 시간에 마음 있는 사람에게 연락이라도 한 번 더 하는 게 낫기 때문이다. 엄마한테 전화하러 가야지…. 마음만 있어서는 아무래도, 되지가 않으니까요.



Writer _ 김신지

Illustrator _ 키미앤일이

대학내일 8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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