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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신지 Apr 26. 2018

‘되고’ 싶어서 말고
‘하고’ 싶어서

잘되지 못하리라는 걸 예감하면서도 우리는 좋아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대학에 왔을 때 지금부터야말로 내가 기다려온 인생이 시작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전까지는 마치 지금을 위한 준비 시간이기만 했던 것처럼,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겠지 하고. 당연한 얘기지만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세련된 서울 아이들 틈에서 나는 촌스러운 시골 쥐 같았고, 쟤는 뭘 해도 하겠구나 싶은 남다른 재능들에 비해 나 정도의 재능은 널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연히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관련된 활동이나 강의들을 기웃댈 때였다.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드라마 창작 수업에 들어갔을 땐 현업에서 드라마 작가로 일하시던 교수님으로부터 내 재능은 70점짜리라는 말을 들었다. 성실하게 쓰는 게 장점이니 평타는 치겠지만 기막힌 작품을 써내진 못할 거라는, 그런 요지의 말이었다.


서운하다기보다 그동안 막연히 나를 답답하게 하던 뭔가의 정체가 걷히는 것 같았다. 아, 그래서였구나. 꿈속의 달리기처럼 늘 제자리에서 헛돌던 기분이. 정말 ‘재능 있는’ 친구들과 비교해보면 나는 딱 그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한다니 딱히 말리진 않겠지만 한다고 잘될 것 같지도 않은.


오히려 재능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어서 다행이라고도 생각했던 것 같다. 지망하는 업계 선배로부터 너는 다른 걸 해보는 게 어때? 라는 말을 듣는 것보다야 70점짜리 재능이란 말을 듣는 게 나은 일이니까. 


졸업 후 2년 여가 지난 뒤에 그 수업에 100점짜리 극본을 가져오던 친구가 드라마 작가 공모에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되어야 할 사람이 됐구나, 하는 생각을 제일 먼저 했던 것 같다. 그 애가 쓴 시놉시스는 다른 모든 아이들의 것과 달랐다. 작품으로 만들어지는 걸 꼭 보고 싶어지는 글이었다. 어쩌면 인생은 그런 것일까. 재능 있는 친구 뒤에서 박수를 치는. 


한번은 후배가 집에 내려가면 부모님이 자꾸 “그래, 다른 데 준비는 하고 있고?” 물어본다는 얘기를 한 적 있다. 갓 입사한 회사이니 그럴 법도 한… 게 아니라, 회사 다닌 지 3년째라는 게 문제였다. 자식이 기대에 못 미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에둘러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다. 하긴 내가 졸업 후 작은 잡지사에 출근하게 되었을 때, 엄마는 축하한다는 말 대신 “그래서 방송국은 언제 갈끼가?” 물었다.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면 최소한 뉴스에 나와서 에스비씨 김신지입니다, 라고 말하거나 이거 우리 애가 만드는 거잖아, 자랑할 수 있게끔 엄마가 즐겨 보는 TV 프로그램의 감독이나 작가쯤 될 거라고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런 엄마에게 인디 뮤지션들을 인터뷰하고, 제주에 다녀와서 여행기를 쓰는 내 일에 대해 설명하기란 힘들었다. 그 후로도 엄마는 내가 옮겨 다니던 회사의 이름을 좀처럼 외우지 못했고, 기다리다 지친 어느 추석에는 이렇게 물었다. “…니 그냥 MBC 다닌다카믄 안 되나? 마이 다르나?” 어쩌면 인생은 그런 것일까. 엄마가 보았을 때 ‘별다른 것이 되지 못한’ 삶을 사는.     




70점짜리 재능은 자라지 않았고 별다른 것이 되지도 못했다. 그럴 때 이런 질문은 자연스럽다. 잘되지 못하리란 걸 예감하면서도 우리는, 좋아하는 일을 계속해 나갈 수 있을까? 오랫동안 나는 이 질문을 품고 둥둥 떠다녔던 것 같다.     


쓰는 일을 좋아하지만 늘 한 발짝 물러선 자세로 “지금이라도 다른 일을 찾는 게 나을까?” 고민하기도 했고, “그래도 넌 좋아하는 일 하잖아” 말하는 친구들 앞에서 변변한 매력 발산도 못 하고 늘 꽁무니만 쫓아다니는 이 짝사랑에 대해 설명하지 못해 답답하기도 했다. 그런 시간을 충분히 보내고 난 뒤, 내가 닿은 뭍이란 이런 세계다. 무엇이 되려고 하기보다 무엇을 하는 게 더 중요한 세계.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대개 ‘하다’와 ‘되다’를 혼동하는 데서 온다. 어느 독립영화 감독을 인터뷰할 때다. 보통은 영화를 하고 싶으면 시험 쳐서 영화과 진학부터 하던데 당신은 무슨 배짱으로 덜컥 월세 보증금 빼서 영화부터 찍었냐고 물었다.

“그 사람들은 영화가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영화감독이 되고 싶은 거겠죠. 하고 싶으면 어떤 식으로든 하면 됩니다. 그런데 되고 싶어 하니까 문제인 거예요. 성공한 누군가를 동경하면서요.”

– 이숙명, 『혼자서 완전하게』 중     



스물다섯에 함께 살았던 룸메이트가 신세 한탄이나 하며 매일 글쓰기로부터 도망치던 내 책상 앞에 붙여주었던 쪽지가 있다. “작가란 오늘 아침 글을 쓴 사람이다.” 그것은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세계였다. 단지 오늘 아침 일어나 글을 쓰면 되므로. 물론 늦된 내가 그 말의 진짜 의미를 깨달은 건 몇 년 뒤의 일이었지만.     


그리하여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삶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최고의 작가가 되는 것은 어렵더라도, 매일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동네 수영장에서 제일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 되긴 힘들겠지만, 일주일에 세 번 수영 수업을 빠지지 않고 가는 것, 그래서 자유형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그 세계에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오늘의 일을 마치고 만족감 속에 맥주 한 잔을 마실 수 있었다. 대단한 성취를 좇거나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지 않아도, 나와 약속하고 조용히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되다’와 ‘하다’를 혼동하지 않으면 70점은 문제가 되지 않는 거였다. 그러니 좋아하는 일 앞에서 우리가 물어야 하는 건 성공 여부가 아닐지 모른다. 되고 싶어서인가, 아니면 하고 싶어서인가 하는 것. 우리를 지치게 하는 것은 되려는 욕심이지, 좋아하는 일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Writer 김신지

Illustrator 키미앤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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