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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롬 Jun 27. 2017

회사를 떠나는 사람들

떠나는 사람이 있으면 남는 사람이 있다

무릇 회사일이란 죄다 귀찮고 하기 싫은 것 투성이라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괴롭게 하는 일들이 있다. 이런 일들은 단순히 머리 아프고 지겨워서가 아니라 정말 내가 맡은 직무 자체에 회의를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힘들다. 인사 업무를 맡고 있는 나의 경우엔 퇴직과 관련된 일련의 일들이 그렇다.


딱히 가깝거나 친했던 사람이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함께 공유했던 공간을 떠나는 것은 상당한 여파를 남긴다. 떠나겠다 결심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좋은 조짐은 아니다. 조직의 입장에서도, 남아야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도.


그들의 결정을 되새겨본다. 같은 공간에 함께 했던 우리는 어쨌든 비슷한 상황을 공유했으니까. 비슷한 상황 속에서 그는 떠나겠다 결심하였고 나는 여기 남아있다. 갈림길이다. 오만 가득한 시선이지만 판단해 보기도 한다. 저 사람은 나아가고 있구나, 멈춰섰구나, 아니면 뒤처지려는건가. 어찌 되었든 그 순간 나는 여기 정지해 있다는걸 실감한다. 인생이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고행길처럼 묘사되는 건 참 싫지만 우리의 사고는 자꾸 이렇게 수직선을 그리고 좌표를 찍는다. 나는 여기, 너는 저기.




내가 속한 팀엔 좋은 사람들이 많다. 내가 그닥 착하고 순한 팀원이 아님에도 자주 배려받고 양해받는다.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뜬금없게도 내가 이 회사에 들어와 처음 마음을 연 것은 나와 전혀 마주하고 함께 일할 일 없는 부서의 한 팀장님이셨다.(나는 박사님이라 부른다.)


박사님은 많은 것을 좋아하고 그만큼이나 많은 것을 싫어하는 분이셨다. 그래서 편했던 것 같다. 싫어도 좋아야 하는 사회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싫은 건 싫은 사람이 있다는 게 위로가 됐다. 나도 그런 사람이라서겠지.


아마도 내가 하는 고민을 훨씬 잘 이해해 줄 팀 선배들에겐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종종 박사님껜 힘들다, 짜증난다 털어놓곤 했다. 그러면 박사님은 ‘이 회사에서 팀장이란 직책을 달고 있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니지만서도’로 운을 뗀 후 우다다다 욕을 쏟아내며 함께 분노해 주시곤 했다. 그게 웃기면서도 감사했다.


올해 들어 내가 가장 힘들었던 날, 나는 박사님께 메일을 보냈다. ‘회사에 제가 너무 아까운 것 같기도 하고, 너무 부족한 것 같기도해요’. 유치한 말이지만 나는 정말 그날 머리를 쥐어 뜯으며 괴로워하던 중이었기에 진심이었다. 곧 모바일에서 쓴 짧은 답장이 왔다. Love yourself. 이 짧은 한 줄을 보고 나는 뚝뚝 눈물을 쏟아냈다. 그 말이 뭐라고 위로가 되더라.(나중에 들으니 박사님은 출장 중 차 안에서 메일을 확인하고 짧게나마 답장을 보내신거라 했다.)


박사님이 회사를 떠난다 하셨을 때 나는 약간 서운함을 느꼈다. 너무해요. 박사님 떠나시면 전 누구한테 하소연하라고. 그러나 늦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시도해 보고 싶다는 말에 그냥 응원합니다, 할 수 밖에 없었다. 잘되시길바라요. 꼭.





어제 또 누군가 떠난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의 업무이므로 퇴사 절차를 안내하고 퇴직 서류를 작성하고 이것저것 챙겨야 한다. 너무 많은 생각이 드는 일이라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늑장부릴 겸 이 글을 쓰고 있다. 떠나는 사람의 얼굴을 자꾸 생각한다. 밝으면 밝은대로 흐리면 흐린대로 나는 슬플 것이다. 아마도 끝까지 이 일을 좋아할 수 없겠지. 나는 여기 남아 있으므로 꾸역꾸역, 다시 일을 해야만 한다.


영화 <더 컴퍼니 맨>의 포스터. 좋아하는 포스터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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