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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롬 Oct 24. 2017

Hello. Heath Ledger. Again.

아이 앰 히스 레저 I Am Heath Ledger(2017)

절벽 앞에 왔으면, 뛰어 내려야지


존 레논은 이런 말을 하곤 했다. 폴 매카트니는 그를 회상하며 존 레논은 실제로 그런 사람이었다 말했다. 그리고 자신은 그런 존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나 역시 폴 매카트니와 같은 생각이다. 절벽 앞에 섰으면 당연히 돌아서야 하는 것 아닌가. 저 미지의 아래에 무엇이 있을 줄 알고. 


그런데 뛰어내려야 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그들의 인생에서 절벽은 뛰어내리기 위해 존재한다.



천수를 다 누리지 못한 채 갑작스런 비보를 전한 스타들이 있다. 가장 아름다울 시기, 무엇보다 가장 재능이 충만하여 그 빛을 강하게 내비칠 시기에 거짓말처럼 사라진 이들의 이야기는 씁쓸하면서도 긴 여운을 남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인생은 거대한 비극으로 끝을 맺음으로써 가장 매혹적인 '이야기'가 되어 우리를 유혹하기도 한다.


죽음을 미화하다니, 이건 분명 불경스러운 태도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존 레논의 비극적인 죽음은 그를 신화로 만들었고, 커트 코베인은 그 미스테리한 죽음으로 불멸의 아이콘이 되었으며,  4월 1일 누군가가 만우절의 유쾌한 장난을 생각할 때 어떤 이들은 장국영의 거짓말같은 죽음을 생각한다. 레이 존슨은 아예 죽음을 그의 마지막 작업으로 삼아 삶 자체를 예술화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 앰 히스 레저>는 외려 그의 죽음이, 더 아름다울 수 있었던 이야기의 가능성을 완전히 거세시켰음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살아 움직인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영화 속 그가 내내 증명해보이기 때문이다.



스물 여덟. 그는 정말 가장 환히 빛나던 시절에 멈춰섰다. 그의 부재는 너무 당황스러운 사건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져야만 했던 어떤 이유를 찾고 싶어 했다. 잘못된 소문들이 만들어졌다. 숨 막히도록 압도적인 캐릭터를 완벽하게 구현해냈던 조커가 하필이면 그의 마지막 배역이었다.(미처 촬영을 다 마무리하지 못했던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을 제외한다면.) 많은 이들이 이 희대의 악역에 완전히 몰입한 것이 그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 믿었다. 배역에서 빠져 나오지 못해 히스 레저가 괴로워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오랫동안 그를 괴롭혀왔던 불면증 역시 어쩐지 조커 배역에서 기인한 것인냥 소문 속에 끼워 맞춰졌다. 자살이라는 얘기도 신빙성있게 퍼져 나갔다. 이렇게 만들어진 말들은 아픈 이들을 더욱 아프게 했고 상처를 헤집었다.


그럼에도 이같은 소문들이 만들어져야만 했던 것은 그렇게라도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처럼 눈부신 가능성을 가진 청년이 이토록 허무하게 이 세계를 떠났다는 것이 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너무 사랑했다.



<아이 앰 히스 레저>가 다큐멘터리로서 특별한 지점이 있는 것은 아니다. 히스 레저가 찍었던, 혹은 그를 찍었던 홈비디오들을 중심으로 그와 가까웠던 이들의 인터뷰가 삽입돼 있는 평이한 형식이다. 영화는 호주에서 온 이 청년이 어떻게 할리우드의 별이 되었는지, 그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찬찬히 짚어가는 평범한 다큐멘터리다. 이 영화의 매력은 그래서 '히스 레저'라는 사람 그 자체에서 길어 올려진다. 사람들을 좋아하고 예술을 사랑했던, 꿈 많고 재능 많았던 배우. 내내 카메라를 몸에서 떼어 놓을 줄 모르던 장난기 어린 눈 속엔 그가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하다. 타고난 중저음의 목소리와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 카메라 속 세상에 대한 진지함. 영화를 보다보면 새삼 그가 얼마나 훌륭한 배우인지, 또 얼마나 매력적인 사람이었는지 지나치게 생생하게 와닿아 기분이 이상해진다.


자꾸 아쉽다, 는 말이 나온다. 조커가 그의 정점이었을까. 그는 이제 막 물이 오른 스물 여덟 청년이었는데. 부질없어진 상상이지만 그에게 조금 더 시간이 있었다면, 다른 미래가 이어졌다면 우리는 어쩌면 그를 통해 무언가 더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죽음으로써 그 인생의 드라마가 완성되었다고 말하기엔, 나는 여전히 그의 연기가 더 많이 보고픈 욕심 많은 관객인 것이다.



파도가 다가온다면, 쓰러지는 걸 두려워하지마.


히스 레저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는 정말로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그는 27 club*에 매료되어 있었고 특히 닉 드레이크**에 사로잡혀 있었다. 어쩐지 그의 이른 죽음을 예감하게 하는 취향이라 괜히 마음이 시큰거린다.


* 27 club : 27살에 세상을 떠난 예술가들. 지미 헨드릭스, 재니스 조플린, 짐 모리슨부터 커트 코베인, 에이미 와인하우스까지 포함한다.

** 닉 드레이크 Nick Drake : 영국 출신 포크 가수. 줄곧 우울증에 시달리다 단 세 장의 앨범만 남긴 채 항우울제 과다 복용으로 26세에 요절한다.


영화가 끝나고 그가 친구들과 나누는 장난기 어린 대화까지 끊어진 뒤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을 보며 정말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이란 게 실감났다. 역시 죽음보단 삶에 남아있는 가능성이 더 아름답다고, 우기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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