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생활을 하면서 많은 일들이 오갔던 신입사원 1년 차.
첫 월급으로 부모님 맛난 거 사드리고, 할머니 디카도 장만해드리고, 동기들이랑 밤새도록 회사 욕하면서 술 마셔보고, 그동안 고마웠던 분들께 선물도 해보고, 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지만 학자금 대출을 일괄 청산하던 날은 잊히지가 않는다.
나는 대학을 가면 장학금을 다 받고 다니는 줄 알았다. 철없는 생각이었지.
"대체 학비는 왜 이렇게 비싼 걸까? "
그렇다고 내가 열심히 공부한 것도 아니라 부모님께 미안하긴 하다. 20살 이후 경제적인 도움은 딱 3번만 주겠다는 아버지의 철저한 지침 아래. 처음에는 학생회 활동으로 장학금을 받기도 하고, 학교 도서관 등에서 일을 하면서 학비를 충당했고, 마트 알바를 하면서 학비를 내었는데. 점점 다른 무엇인가를 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지 못했다. 그리고 한국장학재단(다른 곳에서는 절대 하지 말라는 조언을 들음)을 통해서 학자금 대출을 2년 받았다.
학자금 대출을 받을 때는 클릭 몇 번으로 이렇게 돈을 쉽게 빌릴 수 있다고 생각하니 몰랐는데. 학자금을 갚을 때가 되니. 내가 엄청난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필 공대 아름이를 꿈꾸며 공대를 가서 학비는 왜 이리 더 비싼지.
나의 1년 치 월급의 반 이상을 저금하고 아꼈고, 1년 후 장학 재단에 전화해서 일괄적으로 다 처리하고 싶다고 했다. 내가 저축한 돈보다 이자 때문에 잔액은 조금 있었지만, 나의 1년 치 저축한 돈은 다시 0원이 되었다.
은행에서 학자금 대출을 갚던 날 은행 창구 직원은 “정말 고생하셨어요"라는 말로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그 말에 알 수 없는 눈물이
주르륵.
어머니는 그저 미안하다는 말만 하셨다.
사실 부모님이 미안할게 아닌데. 대학은 내가 가고 싶어서 선택했고, 물론 당시 사회가(2005년) 대학을 안 나오면 안 된다는 분위기였으니까. 부모님이 20살까지 키워주면 그 이후에는 스스로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철저한 지침도 있었다. 아버지는 20살 이후에는 경제적인 도움은 딱 3번뿐이라는 지침.
다시 통장의 잔고는 0이 되었지만
눈물을 흘리면서도
다시는 빚을 지지 않아야겠다는 생각과.
그냥 속이 후련했다.
목이 걸린 사원증이 가끔 족쇄처럼 느껴지긴 하지만
가끔은 스스로에게 대견하고 잘하고 있다고
위로와 응원을 보내고 싶다.
아쉽고, 시원 섭섭하고
우리는
획일화된 초등학교,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 수학능력시험이라는 단 하루 만의 짜릿한 서열 성적표를 통해. 이리 눈치, 저리 눈치를 보며 입학을 하고
새내기 대학생의 달콤함도 잠시
스펙이라는 어두운 그림자 아래
영어공부, 학점관리, 봉사활동 등등
왜 해야 하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무엇 때문에 하는지 모른다.
그렇게 살다 보면
취업이라는 또 다른 문턱 아래 좌절을 맛보기도 하지만.
그 힘들었던 순간도 합격을 하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 잊고 산다.
그러곤 꿈에 그리던 직장이라고 말하면서
꿈은 개나발
버티고
버틴다.
대한민국 현실의 20대의 모습이다.
우린 이제 사회로 나간다.
10년 뒤 우리가 어른이 되었을 때.
지긋하고 썩어빠진 사회 환경을 후배들에게 마주하지 않게 우리가 잘 만들어 보자 다짐한다.
남은 것은 학자금이라는 '빚'이었다.
나보다 자식이 우선이었던
대한민국 어머니께
이 사진을 바친다.
이제 진짜 끝
2014년 학자금 대출 청산하던 날을 잊지 않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