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앙코르와트 3박 5일
여행의 시작은 언제부터라고 할 수 있을까. 여행의 설렘은 계획 단계부터 시작되니 가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여행은 시작되지 않을까. 여행을 좋아하는 나지만, 어떤 날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을 때가 있다. 여행 계획은커녕 팀장님의 휴가가 곧 나의 휴 가일 때도 있다. 그렇게 귀찮음을 핑계로 생애 첫 패키지여행을 결심했다. 캄보디아는 패키지여행으로 다녀와도 좋다는 주변의 조언이 나의 결심을 굳혔다.
여행 앞에서 게으름 피우지 않는 나인데 그때는 왜 그렇게 모든 게 귀찮았을까.
좋아하는 여행도 귀찮아질 만큼 삶이 팍팍했던 것일까.
1달러가 뭐라고
전 세계에서 빈부 격차가 심한 나라로 손에 꼽히는 나라, 캄보 디아. 이곳에서는 비자 수속을 밟을 때 여권과 1달러를 내면 보다 빨리 처리된다고 한다. 그 말이 사실인지 궁금해 친구와 나는 모험해 보기로 했다. 친구는 1달러를 내고 나는 내지 않았다. 그러자 비행기에서 같이 내린 사람들이 여권을 다 받아 갈 때도 나는 받지 못했다. 정말이지 맨 마지막에 여권을 받았다. 기다림에 지친 나는 화가 났지만 이것도 경험이려니 하고 꾹 참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입국 심사대에서 1달러를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 대체 왜? 그렇게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을 빠져나오는데 진이 다 빠졌다. 가장 먼저 나를 반긴 것은 텅 빈 벨트에 혼자서 돌아가고 있는 짐 가방 하나. 패키지여행은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여행이라 시간 약속이 중요한데 1달러 때문에 버스도 가장 늦게 타게 되었다. 어찌나 민망하던지…….
지쳐 멍하니 있는 내 게 가이드가 다가와 말한다.
- 1달러 안 냈죠?
- 네, 그런데 왜 우리나라 사람들만 1달러를 내는 거죠? 다른 외국인들은 안 내던데…….
그랬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소지한 초록색 여권은 그들에게 1 달러나 마찬가지였다. 무엇이든 ‘빨리빨리’를 외치는 우리나라 사람들 탓에 그들은 습관처럼 1달러를 요구하게 된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이기는 하지만, 정말이지 그곳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외 없이 1달러를 손에 쥐고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이는 여행
같이 여행하는 사람들 중에 유독 한 꼬마가 눈에 들어왔다. 꼬마는 캄보디아의 역사, 앙코르와트에 관한 책을 들고 다니며 가이드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처음에는 방학 숙제인가 싶었는데 보통 열성이 아니라서 말을 걸었더니 다른 나라에 오는데 이 정도는 공부해야 하는 거라며 할 말을 잃게 만든다.
하루에도 수만 명의 관광객들이 앙코르와트를 보기 위해 캄보디아를 찾는다. 그중에 저런 꼬마도 있는데 역사책 한 권 읽지 않고 온 나라니. 시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역사를 공부해 흐름이 아닌 정답만 꿰고 있는 내가 부끄러웠다. 앙코르와트의 해자부터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데 수천 년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한때 아시아 최고의 왕족이었던 이들은 언제부터 이렇게 빈부 격차가 나기 시작했을까.
우기(雨期)
내가 갔을 때 캄보디아는 우기였다. 매일매일 비가 온다기보다는 갑자기 쏟아지는 스콜과 만날 때가 더 많았다. 여름휴가를 보낸다며 샀던 예쁜 원피스는 쏟아지는 스콜 앞에서 무용지물이었다. 앙코르와트를 중간쯤 보았을 때였을까. 엄청난 스콜이 쏟아졌다. 순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데 내 앞으로 한 무리의 꼬마들이 우비를 들고 뛰어다녔다.
- one dollar!
- one dollar!
갑자기 내린 비를 피하기 위한 사람들과 그런 비가 반가운 아이들.
비를 맞으며 천진하게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니 어쩐지 나도 비가 반가워진다.
내게는 잊지 못할 순간들
내가 여행지에서 감동을 느낄 때는 화려하고 특별한 순간이 아닌 평범하고 일상적인 순간과 마주할 때다.
고동치는 심장 소리가 아닌 느리게 전해지는 박동이 순간순간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한다. 앙코르와트 주변은 네모 모양으로 유정들이 다 모여 있는 느낌이다. 툭툭이를 타고 희미한 바람을 맞으며 달려가다 보면 옛 도시가 눈앞에 펼쳐진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믿지 않았는데, 여기 와서는 그 말을 믿지 않을 수가 없다. 패키지여행이라 자유롭게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닐 수는 없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알차다. 방학 숙제 계획을 짜 놓고 동그라미를 그려 넣는 기분이랄까. 매체가 전해 주는 감동은 실제를 뛰어넘지 못한다. 실제로 보면 어떤 말로도 형언할 수 없는 가슴 깊은 곳에서 감동이 밀고 들어온다. 내게는 앙코르와트가 그랬다.
톤레삽 호수(Tonle Sap Lake)
톤레삽 호수(Tonle Sap Lake) 캄보디아 여행을 계획하며 앙코르와트 외에는 다른 곳을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그래서인지 톤레삽 호수는 내게 뜻밖의 감동을 주었다.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내륙 어장 중 하나인 캄보디아의 톤레삽 호수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호수이다. 호수에는 베트남전 당시 공산 정권을 피해 캄보디아로 피난 온 베트남 난민들과 극빈층의 캄보디아 사람들이 수상 마을을 이루어 살고 있다. 우기가 되면 수면이 평소의 6배로 불어나는데 호수의 진면목을 보려면 우기에 와야 한다. 하늘과 호수의 경계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신비롭다.
잊지 못할 장관이었다.
다른 의미로 잊지 못할 풍경도 있다.
황홀했던 톤레삽 호수와 대비되는 난민들의 삶은 두고두고 지워지지 않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육지가 아닌 물 위의 삶이 이제는 익숙한 듯 자연스러운 그들의 일상을 신기하게 보고 있는 내가 미안했다. 여행자의 눈을 빌려 유랑하듯 그들의 삶을 훔쳐보고 있는 것이 못내 미안했다.
생애 첫 패키지여행
패키지여행의 장점이라면 굉장히 편리하다는 것.
국내 식당에 버금가는 한식을 먹을 수도 있고
일정 걱정도 없으니
부모님과 함께 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1년을 꼬박 기다린 휴가는
비가 많이 와서 수영도 한 번 해 보지 못했고
비가 많이 와서 거리를 자유롭게 다니지도 못했고
비가 많이 와서 앙코르와트 일출은 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비가 많이 와서 캄보디아의 우기도 경험했고
비가 많이 와서 카페에 앉아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멍도 실
컷 때렸고
비가 많이 와서 모처럼 제대로 쉬는 여행을 했다.
휴가를 마치고 귀국하는 비행기에 오르자 메시지가 뜬다.
메신저 프로필 사진이 바뀐 것을 보고 엄마가 보낸 것이었다.
- 니 캄보디아가? 엄마 거기 윽씨 가고 싶었는데 니만 갔나
-
사진·글 엄지사진관
필름. 미놀타 dynax5 & 미러리스. 올림푸스 OM-D E-M5 Mark Ⅱ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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