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고마웠던 너에게
매일 아침 울리는 메신저 알람
출근길에 어디 인지, 아침에 커피는 무엇을 마시면 좋을지 물어보는 말들
점심은 무엇을 먹었는지
오늘 회사일은 힘들지 않은지
그리고 내가 가끔 생각나지 않은지
퇴근 시간이 맞으면 잠깐 얼굴이라도 보며 헤어지고, 영화를 볼 때도 있었던 우리
이제는 이럴 필요가 없다.
일상을 함께 하고 싶던 사람과의 이별은 처음에는 두렵다가
슬프다가
힘이 없다가
그러기를 반복한다. 젠장 그런데 배는 고프다.
어디서부터 잘 못되었는지 '잘못'이라고 말하기는 싫다가
어디서부터 문제였는지 라고 말하기에는 '문제'라고 정의 하긴 싫다가
'서툴렀다'는 말로 결론을 내려본다.
오늘도 나는 멍하니 강남 한 복판에 서있어본다.
수많은 사람들이 내 곁을 지나가고, 연인들도 있고, 혼자인 사람들도 있다.
다시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까?
한때 모든 게 아름다워 보였던 세상도 조금은 쓸쓸하다.
나는 캐럴송이 나를 더 쓸쓸하게 만들었다.
자주 갔던 카페, 음식점, 들었던 노래, 여행 등
자주 갔던 혜화동에는 겨울이 왔고, 자주 갔던 일본 라멘집에서 나는 혼자 라멘을 먹었다.
자주 갔던 길거리에서 혹시나 마주치지 않을까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이제는 우리가 함께가 아닌 내가 혼자 가서 예전에 추억을 그리워하고 있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힘들고,
이별에도 예의가 있다는 것
그래서 '있을 때 잘해'라는 다섯 글자가 왜 이리도 내 마음을 툭툭 치고 가는지 모르겠다.
누가 더 사랑했고, 내가 더 잘해줬고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떠나보면 보이는 빈자리에 대한 그리움만 남을 뿐이다. 감정적이었긴 하지만 이번 사랑에 누구보다 솔직했다.
참 신기하다.
4년 동안 매일 같이 울리던 대화창을 삭제하는 데는 5초도 걸리지 않았고,
외장하드에 있는 우리의 사진을 지우는 데는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내 마음도 이렇다면 좋겠다.
20대 후반을 나와 함께 해줬던
그 사람에게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나는.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아
그런데 이런 글을 쓰는 내가 찌질 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