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가 물렁해진 것 같다.
허리
1 사람이나 동물의 갈빗대 아래에서부터 엉덩이까지의 잘록한 부분
2 사물의 가운데 부분
중심이 물렁해서인가. 나는 똑바로 서지 못한다. 허리가 물렁하니까… 당연한 것이다.
침대에서 흐느적 일어나 소파에 흐느적 앉는다. 허리가 물렁한데 어떻게 앉을 수 있냐고? 그야 당연히 물렁하게……. 물렁한 허리로는 물렁하게 앉으면 된다. 물렁하게 앉는 게 어떻게 앉는 것이냐고? 그건 그냥… 그런 것이다.
어느 날 프랜차이즈 카페의 창가 자리에 앉아 있는 나를 본 남자가 저 사람 물렁하게 앉아 있네, 라고 말하고서는 그 카페를 그냥 지나쳐갔다. 이상하고 불쾌한 남자이다.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멋대로 특성을 쥐여주는 것은…. 하지만 가끔은 생각한다. 그 이상하고 불쾌한 남자가 나를 꿰뚫어 보았다고. 그맘때 나는 나의 허리가 단단하다고 생각했다. 굽이 있는 신발을 신고서도 허리를 펴고 똑바로 걸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허리가 물렁해진 것이다. 구태여 만져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느껴진다. 나의 물렁한 중심이…. 그때부터인 것 같다. 무엇도 제대로 정하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처음으로 물렁하다는 말을 들은 그 카페에서, 무엇을 마실지 한참 동안 서서 고민하다 죄송합니다 하고 꾸벅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에 얼굴 좀 보자는 엄마의 말에 어디서 만나야 할지 몰라 온종일 시내 곳곳을 뒤졌으나, 결국 질려버린 엄마가 내 집의 문을 열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게 되었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을지조차 정할 수 없어 이제는 아무 곳에도 나설 수 없다. 누군가 나를 보고 이상하고 물렁한 여자네, 라고 할 일도 없게 되었다. 혼자서 물렁하게 살았다. 단단한 사람은 나와 태초부터 다른 종족 같아서.
허리가 물렁해지자 팔도, 다리도, 목도 물렁해졌다. 더 이상 아무것도 잡을 수 없다. 손가락도, 발가락도, 머리도 물렁해졌고 급기야 마음마저 물렁해져 버렸다. 나는 이제 사랑도 할 수 없고 증오도 할 수 없다. 클레이 덩어리, 잘못 만든 반죽, 그런 것이 되어버렸다. 여전히 36.5도 정도로 따끈한 검붉은 색 피가 유연한 혈관을 타고 흐르고 말캉한 심장이 뛰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사람이냐 물으면 글쎄……. 그냥 물렁한 여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