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울의 근원은 무엇인가. 모부의 기대? 그 기대에 부응하려는 욕심? 주변의 무례한 평가? 어쩌면 나 자신? 하지만 이제 와 뿌리를 파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뿌리를 탓하기에 나무는 이미 너무 커버렸다. 여기저기 파 먹힌 나무에게 삶은 무엇인가. 껍질은 다 들떠 살짝만 건드려도 힘없이 떨어지고 잎은 이제 봄이 돌아와도 다시 피어나지 않는다. 아마 뿌리도 곪아있을 것이다. 파내야 하나?
몇 날 며칠을 고민했다. 저 나무를 그냥 둘지, 베어 버릴지. 아니면 옮겨 심을지. 처음에는 그냥 두겠다 마음먹었다. 어쨌든 살아있으니까. 그런데 자꾸 눈에 밟히고 신경이 쓰였다. 힐끔힐끔 쳐다보는 시간이 늘어났고 그러자 갑자기 그냥 저걸 베어 버려야겠다는 충동이 들었다. 생각난 김에 해버릴까. 두 손으로도 완벽히 감싸지는 앙상한 나무는 작은 톱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다.
창고 구석에서 톱을 찾았다. 가볍게 손에 쥐자 묘한 스산함에 전신에 소름이 오소소 돋는다. 기분 나빠. 얼른 치워버려야지.
그때 다시 나무의 몸통이 눈에 들어온다. 상처를 하나하나 손으로 짚어보았다. 나무는 아픔을 느끼지 못하나? 나무는 누구도 해하지 않았다. 해할 수 없었다.
옮겨 심어야겠다. 그렇게 다짐하고 삽을 찾아왔다. 나무 주변을 한참 파내고 나니 희끗하게 뿌리가 보인다. 조금 더 삽질한 뒤 잔뜩 엉켜있는 가느다란 뿌리를 조심스레 들어 올리자 흙이 우두둑 떨어진다. 다행히 뿌리까지는 곪지 않아 보였다. 아직 속은 괜찮구나. 안도하며 나무의 무게를 가늠하기 위해 살짝 더 들어 보았는데...... 가볍다.
나무가 이렇게 가벼울 수 있나. 이상했지만 옮겨심기에는 잘 된 일이었기에 더 이상 의심하지 않고 나무를 쑤욱 뽑았다. 흙이 반 정도 찬 커다란 화분에 나무를 옮겨 심고 흙을 마저 덮어 주었다. 밖에 두기보다는 실내에 두는 게 좋을 것 같아 조심스레 집 안으로 옮겼다. 거실의 피아노 바로 옆 햇빛이 바로 들어오는 자리. 나무는 비로소 제자리를 찾은 것 같아 보였다. 그러다 제자리로 돌아온 생각. 나의 우울도 옮겨 심을 수 있을까. 그러고 나면 괜찮아질까. 나의 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나무에게 물을 줬다. 어쩌면 다시 잎이 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