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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May 07. 2024

그대 평안한가

 

사랑하는 선생님들께 


아침부터 때 이른 여름비가 내렸습니다. 오늘따라 귓가에 울리는 빗소리에 마음이 가더군요빗소리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 같았습니다. 가냘프고 미숙했던 시절의 상처. 그 상처를 돌아보는 애잔한 눈빛. 그런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어 쉽게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빗소리에 귀 기울이듯 오늘 만난 선생님들의 마음에 귀 기울이며 물었습니다. "그대, 평안한가"를. 


한동안 정적이 흘렀습니다. '평안하다'는 말의 의미부터 되새겨봐야 했으니까요. '평안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걱정이나 탈이 없는 상태 혹은 무사히 잘 있다.'입니다. 


우리는 걱정이나 탈이 없기는커녕 걱정거리에 둘러싸여 살아갑니다. 하나를 해결하면 또 다른 걱정거리가 생기고, 하나를 생각하면 열 개의 생각이 따라오지요. 그래서 우리는 생각을 놓을 수 없게 되고, 매일 생각을 해결하는 데 온 마음을 씁니다. 그 과정에서 괴로워지는 마음은 돌볼 새도 없지요. 


진실로 평안하다는 것은, 애쓰지 않는 것입니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는 어떤 것도 나를 괴롭히려고 오는 게 아닙니다. 때로는 괴로움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실은 내가 맞닥뜨린 현실을 정확하게 일깨워주고, 그에 맞는 선택을 하게끔 일러주는 것이지요.


작은 묘목이 아름드리나무가 되기까지는 긴 세월이 필요합니다. 세월의 풍파를 견디는 동안 나무에는 온갖 상처의 흔적이 남습니다. 그리고 흔적은 단단한 옹이가 되지요. 옹이는 상처를 덮어줄 뿐만 아니라, 파인대로 물이 흘러 나무가 썩지 않게 합니다. 결국 상처가 나무를 더 잘 살 수 있게 돕는 셈이지요.

 

우리에게도 이러한 옹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 옹이가 되지 못한 상처도 있지요. 하지만 너무 빨리 아물게 하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자연스레 단단해져 우리를 더 잘 살 수 있게 돕는 옹이가 될 테니까요. 지금은 그저 나뭇잎에 퍼져나가는 계절의 색을 관찰하고, 귓가에 울리는 빗소리에 기울여 보세요.


나는 지금 여름비가 내리는 풍경 속에 있고, 빗소리에 담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요. 내가 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들릴지도 모르지요. 나는 지금 어떤 이야기를 건네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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