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요 May 08. 2024

산다는 것은 변화하고 있다는 것

사랑하는 선생님들께


한동안 산 위로 하얗게 피어나는 이팝나무 꽃을 즐겨 보았습니다. 날마다 조금씩 번져가는 하얀 꽃무리. 그 풍경을 바라보는 기쁨을 어디에 비할까 싶다가 그저 가만히 미소 짓고 돌아섰지요.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이팝나무길을 찾아가곤 했어요. 온통 하얀 구름으로 뒤덮인 듯한 아름다움에 절로 탄성이 나왔었지요. 올해도 어김없이 가보았는데, 며칠간 쏟아진 비 때문에 꽃이 모두 떨어진 뒤였답니다. 잠시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곧바로 웃을 수밖에 없었어요. 싱그럽게 돋아난 푸른 잎과 그보다 더 푸른 하늘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거든요.



자연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주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꽃을 봐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지요.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꽃이 피고 지는 게 그렇게 기쁘고 또 서러울 수가 없더군요. 흘러간 세월을 기억하며 상실을 마주하게 된 덕분일까요.


잃어버린 것에서 느끼는 애절함은 상실을 대변하는 것 같지만, 기억하는 한 그것은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닙니다. 다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흘러갔을 뿐이지요. 무언가 지나간 자리에는 언제나 흔적이 남습니다. 썰물이 지나간 자리에 가득한 생물들처럼. 기쁨, 슬픔, 즐거움, 괴로움…. 온갖 형태의 기억이 남게 되지요.


때때로 우리는 기억이라는 덫에 붙잡혀 세월을 덧없이 흘려보냅니다. 행복한 기억을 지속시키기 위해 노력하기도 하고, 불행한 기억을 지우기 위해 노력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기억은 기억일 뿐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곳은 기억이 아니라, 지금이라는 각자의 현실입니다.


지나간 것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변화할 뿐이지요. 산다는 것은 변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피어나는 꽃잎의 기쁨과 떨어지는 꽃잎의 서러움은 동일한 삶의 표현입니다. 그러니 기쁨을 붙잡거나, 서러움을 떨쳐내려 하지 말고, 그저 살아있음을 만끽해 보세요.


우리는 변화 속에서 살아갑니다. 이팝나무 꽃잎이 지고 나면, 아카시아나무와 산딸나무가 꽃을 피우지요. 그리고 어김없이 떨어집니다. 다시 피어날 계절을 기약하면서. 누구도 변화를 피할 수 없어요. 찬란한 순간도, 다정한 눈빛도 한 철 꽃처럼 피어났다 떨어지고, 아련한 기억만 남게 되지요.


떨어진 꽃잎이 땅의 양분이 되어 나무를 자라나게 하듯, 우리의 기억도 마음의 양분이 되어 우리를 자라나게 합니다. 철마다 피고 지는 꽃잎의 기쁨과 서러움을 기억하며, 무수한 미소와 눈물을 머금고 우리는 자라납니다. 그렇게 살아갑니다.

이전 17화 그대 평안한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