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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May 29. 2024

자기만의 방

사랑하는 선생님들께 


대면수업을 하는 공간은 전주의 정갈한 찻집입니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듯한 공간이지요. 새하얀 건물의 2층. 문을 열고 들어서면 편안한 느낌의 고가구, 그에 걸맞은 단정한 소품과 다기들이 우리를 반겨줍니다. 계절에 맞는 차와 디저트를 즐길 수 있고, 일상의 쉼이 필요한 이들에게 안식처가 되는 곳입니다. 



이곳에 앉아 있을 때마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떠올리게 됩니다. 음료를 마시며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은 많지만 ‘자기만의 방’이란 느낌을 주는 곳은 흔치 않기 때문이지요. 버지니아 울프는 시를 쓰는데 필요한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연간 500파운드의 고정 수입이고, 또 하나는 자기만의 방이라고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독립된 공간. 그 공간에서 우리는 오롯이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요. 


“나는 그저 다른 무엇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되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간단명료한 사실을 말하고 있을 뿐이지요.”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에서


자기만의 방에서 자기 자신이 되는 일. 대면수업 공간을 이곳으로 정한 이유입니다. 차 한잔, 노트 한 권, 연필 한 자루가 놓인 자기만의 방에서 선생님들은 오롯이 자기 자신을 마주하며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됩니다. 


일상 속에서 잠시라도 자기만의 방을 갖는다는 것은, 단절되었던 자기 자신과 다시 연결되는 시간입니다. 또 자신을 확실하게 인식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지요. 이 공간에서 우리는 자기인 줄 몰랐던 자기를 마주하고, 자기라고 인정하기 싫었던 자기를 가만히 품어봅니다. 그렇기에 균일하게 주어진 시간일지라도, 깊이는 저마다 다릅니다.


오늘 이 공간에서 만난 선생님은 아기새 같습니다. 자기만의 알을 깨고 나와 그간의 일을 어미새에게 조잘거리는 아기새. 그 생동이 그대로 전해지는 우리만의 방이 참 따스합니다. 자기만의 방은 어느새 우리만의 방이 되어갑니다. 그 방에서 우리는 다시 삶으로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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