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대여성 Aug 16. 2023

서울살이 하는 친구들 돕고 남은 것








영하로 뚝 떨어진 기온인데

마땅한 겨울 점퍼 하나 없이

대충 얇은 외투 몇 개 껴입고

장갑에 목도리로 보온 하던 친구가 있었다


타지에서 와 서울살이 하던 친구였는데

모 드라마 대사처럼

가난은 겨울에 더 티가 많이 난다더니

그 추운 날에 그 추운 꼴을 하고 있으니

괜히 짜증이 나면서 짠한 마음이 올라왔다


'서울 왔는데 내가 좀 챙겨줘야지' 하는

쓸데없는 책임감도 들었다





당시에 여유가 있던 상황은 아니었지만

너스레를 떨며 매번 괜찮은 척하길래

돈을 쥐어주는 건 좀 웃긴 것 같고 해서

만날 때마다 고기를 사줬다


먹고 싶은 게 있냐 물으면 늘 고기였기에

맛집들을 찾아뒀다가 한 번씩 데리고 갔다


태국음식, 곱창, 막창, 주먹고기, 숯불고기,

중식당, 수제버거 수제피자 전문점 등

지금 대충 생각나는 식당들만 이 정도





밥을 먹고 나면

커피 한잔 정도는 그 친구가 사곤 했는데

만원 정도를 결제하려다

잔액부족으로 결제가 거절된 적이 있었다


'일을 하는데 이 정도로 여유가 없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결제하기 전에

은행 어플 들어가서 잔액 얼마 남았는지 확인하고

언제 돈이 이렇게 빠져나갔나 싶어

다른 통장의 돈을 옮기던 시절이 떠올라

그냥 그러려니 했다


이후로 커피는 아예 마시지 않은 적도 있다





그리 저렴하지만은 않은 밥을 얻어먹으며

그 친구는 불편하면서 고마워했을까

아님 꽁밥 먹을 기회라며 마냥 좋아했을까


지금은 연락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으니

후자가 좀 더 맞으려나





괜히 마음이 쓰여서

친분의 깊이와는 상관없이

내가 좋아하는 정도와는 상관없이

이렇게 몇몇을 챙겨준 경험이 있다


동정에 휩쓸려

여우짓을 눈감아주면서

조금이라도 여유 있는 사람이 쓰는 거지~

마인드로


당시에는

더 좋은 음식 사주지 못한 게 미안했는데

지금은

그 돈이면 백 하나는 샀겠다 시ㅍㅏㄷ





누군가의 현재 모습이

과거의 본인 모습을 떠올리게 했을 때

그들이 받았던 정을 베풀어주면 좋겠다


그리고

여우짓은 작든 크든 티가 나니까

이왕 할 거면 대차게 했으면





이런 경험들을 통해서 배운 건


남을 도우려면 내 배가 가장 불러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굳이 개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전혀 되돌려 받을 생각이 없다면 양껏 베풀고

'다음엔 알아서 사겠지?'란 생각이 들면

"이번에는 내가 살게, 월급 타면 네가 사"

라고 대놓고 말해야 한다


안 그러면

정말 끝까지 얻어먹고 떠나더라고?





서울살이 친구들 돕다가

엔빵주의자가 된 썰을 주절주절 써보았다





작가의 이전글 탈출은 지능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