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우 Jul 26. 2018

능소화

완성된 청첩장을 받아 들고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은 민성이었다. 머지않아 외동딸을 시집보내야 하는 부모님도 아니고, 십 년 넘게 남자친구였다가 곧 남편이 될 영훈도 아니고, 내 결혼 소식에 선뜻 청첩장을 디자인해 준 절친 선주도 아니고 민성. 그러니까 꼭 십 년 전 이맘때, 능소화가 캠퍼스 담벼락을 가득 메울 무렵 군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대학 동기. 


동기라고는 해도 민성과 나는 전혀 가깝지 않았다. 아니, 민성은 나를 비롯해 과 사람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았다. 조용히 풍경 안에 머무르다 또 소리 없이 사라지던 아이였기에 누구나 민성을 알았지만 누구도 민성을 몰랐다. 


정물화 속 사과 같던 민성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건 우리가 2학년이던 해 오월 끝자락이었다. 봄망초가 캠퍼스 곳곳에 멍석처럼 깔렸던 그때 민성을 둘러싼 소문도 과 구석구석에 깔리듯이 퍼져 나갔다. 누군가는 종합강의동 뒤꼍에서 민성이 사학과 남자애와 손을 잡고 있었다고 했고, 누군가는 도서관 비상구에서 민성이 건축과 남자애와 키스하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 누군가는 피부가 하얗고 몸매가 호리호리한 민성을 두고 어쩐지 그럴 것 같더라고 말했고, 누군가는 역겹다고 말했다. 그 즈음 민성이 지나는 길목 길목에는 가을날 은행잎 지듯 그런 수군거림이 오소소 떨어졌지만 민성은 제 주변에 떨어진 소문이 정말로 낙엽이라도 되는 양 그저 가만사뿐하게 밟고 지나갈 뿐이었다. 


전공 필수 강의가 끝난 뒤 조교가 들어와 기말고사를 대신할 발표 수업 조 명단을 불렀을 때 과 사람들 시선을 한 몸에 받은 건, 그래서 민성이 아니라 나였다. 소문 당사자인 민성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으니 꿩 대신 닭이었는지 민성과 같은 조가 된 내게로 사람들 관심이 쏟아졌다. 이후 나는 꽤 오랫동안 동기는 말할 것도 없고 선후배에게서까지 민성과 관련한 수많은 질문을 들어야 했지만 그 가운데 내가 답할 수 있는 건 단 하나도 없었다. 함께 발표 수업을 준비하면서 내가 민성에게 들은 말이라곤 발표에 관한 것뿐이었고, 내가 민성에게 한 말도 그뿐이었으니까. 

사실 나는 민성 일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선주에게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그렇구나 하고 고개만 몇 번 끄덕이고는 말았다. 할머니는 생전에 입버릇처럼 “우얄라꼬 우리 강새이가 목석같은 즈 애비를 그래 쏙 뺐드노”라며 혀를 차곤 했다. 아버지를 빼다 박은 무덤덤한 성격 때문에 나는 연애하는 동안 영훈에게도 곧잘 지청구를 들어야 했다. 어쩌면 그래서였는지도 모른다. 발표 준비 마지막 날 밤 민성이 내게 그런 말을 한 것은.


그날 밤에는 영훈이 나를 데리러 오지 못했다. 집안 어르신 한 분이 돌아가셔서 장례식에 가야 했기 때문이다. 발표 준비를 하는 내내 영훈은 내가 한사코 괜찮다는데도 끝나는 시간에 맞춰 나를 데리러 왔었기에 민성과 나는 늘 인문대 건물 앞에서 눈인사만 하고 헤어졌다. 물론 영훈이 그러지 않았더라도 상황은 딱히 다르지 않았겠지만. 그래서 그날도 나는 민성에게 가볍게 목례만 하고 돌아서려는데 민성이 말을 걸었다. 


“오늘은 남자친구 안 오니?”


성격이 성격인지라 나는 웬만한 일에는 잘 놀라지 않는데 그때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대답은 않고 민성만 빤히 바라봤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이 주 남짓한 기간 동안 함께 발표 준비를 하며 많은 말을 주고받았지만 사적인 이야기는 일절 나누지 않았으니까. 민성도 그런 나를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처음으로 깊숙이 들여다본 민성의 눈은 물안개 서린 호수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 흐릿한 물가 너머에서 수양버들 가지처럼 흔들리는 한 소년을 봤다. 물끄러미 그 소년을 들여다보다 퍼뜩 정신이 든 나는 그제야 “응”이라고 짧게 대답했다. 민성은 나지막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나도 정문까지 나가야 해.”


언덕배기에 있는 인문대에서 정문까지는 걸어서 20분쯤 걸렸다. 민성과 나는 말없이 함께 걸었다. 막바지 아까시나무 꽃이 만발한 학교 뒷산에서부터 촉촉하고 달짝지근한 바람이 불어 왔다. 밤 10시가 넘은 시각이었지만 시험 기간이어서인지 학교 건물 이곳저곳에서는 손톱에 들인 봉숭아물빛 같은 불빛이 새어 나왔다. 그 불빛들을 모두 지나칠 즈음, 민성이 다시 내게 말을 걸었다. 


“남자친구 많이 좋아하니?” 


어찌 보면 이는 처음보다 더 갑작스럽고 놀랄 만한 질문이었지만 나는 그저 담담히 “응”하고 대답했다. 자욱한 물안개 뒤편에서 하느작거리던 소년을 본 뒤로 내게 민성은 더 이상 고요히 풍경 속에 머물다 사라지는 ‘누군가’가 아니라 나지막하게 그러나 또렷이 자기 생각을 말하고 다른 사람 말에 진지하게 귀 기울일 줄 알며 이따금 사과 꽃처럼 말갛게 웃기도 하는 ‘동기’였기 때문이다. 민성은 잠깐 걸음을 멈추고서 나를 다시 지그시 바라봤다. 그리고는 “너는 좋겠다……. 그렇게 말할 수 있어서”라며 읊조리듯 말했다. 그때 어디선가 뻐꾸기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허무하게 스러지는 짧은 봄을 애도하기라도 하듯 구슬픈 소리였다.  


이튿날, 민성과 나는 제법 발표를 잘 마쳤고 꽤 높은 점수를 받았다. 발표 수업이 끝난 뒤 우리는 서로를 잠깐 바라보고 눈인사를 한 뒤 헤어졌다. 이후 우리가 따로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없었다. 민성을 둘러싸고 작달비처럼 쏟아지던 소문도 시나브로 부슬비처럼 맥을 잃어 갔다. 민성은 다시 풍경 속 정물로 스며들었고 그렇게 2학년 1학기가 끝났다. 대부분 남자 동기가 그러하듯 민성도 그 무렵 휴학을 하고 군대에 갔다. 


계절이 네 번 지나가고 이듬해 여름, 능소화가 학교 골골샅샅으로 달리듯이 번져 가던 어느 날이었다. 방학이 가까워지면서 강의실은 한여름 오후, 혀를 쭉 내밀고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개처럼 맥없는 공기로 가득하기 마련인데 그날은 달랐다. 태풍이 오기 전에 부는 바람처럼 묘하게 달뜬 웅성거림이 강의실 사이사이를 떠다니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두리번거리는 나를 보고는 선주가 달려와서 말했다. 


“조민성 알지? 걔 군대에서 자살했대.” 


민성이 목숨을 끊은 이유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구나 민성을 알았지만 누구도 민성을 몰랐으니까. 그런데도 아니 어쩌면 그렇기에 민성의 죽음은, 생전 민성을 둘러싼 소문이 그랬듯 온갖 추측과 억측을 등에 태우고 천리마처럼 퍼져 나갔다. 


제멋대로 날뛰는 천리마를 뒤로한 채 나는 민성 가족과 연락이 닿을 만한 길을 찾고자 과 사무실과 교무처를 오갔다. 민성이 가는 마지막 길에 국화꽃 한 송이라도 건네고 싶어서였다. 우리가 함께 걸었던 그날 밤, 그러니까 내가 민성 눈에 어린 소년을 본 뒤부터 민성은 내게 ‘누군가’가 아니라 ‘동기’였으니까. “너는 좋겠다”와 “그렇게 말할 수 있어서” 사이에서 서성거리던 모습에서 민성도 나를 그리 여긴다고 믿었으니까. 발표날 이후로 민성과 내가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지만 오고가며 스치던 눈빛에서, 어렴풋이 올라가던 입꼬리에서 언젠가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겠구나 하고 느꼈으니까. 그리 덧없이 우리 시간과 연이 끊길 줄은, 정말 몰랐으니까. 그러나 며칠 동안 이곳저곳을 오가며 내가 알아낸 정보라고는 민성이 휴학하기 전까지 살다가 떠난 자취방 주소와 이제는 없는 번호가 되어 버린 민성의 옛 전화번호뿐이었다. 


그해 여름, 나는 추억하지도 못할 기억 한 조각, 슬퍼하지도 못할 마음 한 움큼을 손에 쥔 채 그저 망연히 서 있었다. 


민성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까지도 몰랐으리라.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이, 그렇다고 말하는 일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일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무척이나 어렵고 숨겨야 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환하게 웃는 영훈과 내 사진 아래로 우리 결혼 소식이 예사로이 담긴 청첩장을 손에 쥐고서 민성이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그래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좋아했지만 그 마음을 쉬이 꺼내 보일 수 없었을 소년, 자신을 둘러싼 소문 사이를 담담히 걸어갔지만 실상은 늘 수양버들 가지처럼 흔들렸을 소년, 자기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를 기다렸을 소년, 이따금 사과 꽃처럼 말갛게 웃던 소년. 그런 민성을 떠올리자 가로 16센티미터에 세로 11센티미터짜리 청첩장이 어쩐지 무겁게 여겨졌고, 청첩장을 쥔 손끝도 조금 아렸다. 

매거진의 이전글 라일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