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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 Feb 07. 2020

우유 배달 공작 일지

우유 배달 공작 일지 #. 1


늦여름 일요일 오후였다. 하늘이 낮게 걸리는 시간, 일요일의 공기가 아파트 단지 안에 퍼져있었다.

나른함, 따뜻함, 무료함, 늘어짐.

평소처럼 길고양이들을 만나러 아파트 화단 근처를 어슬렁 거리고 있었다. 912동 앞에 사는 코가 까만, 블랙이라 부르는 녀석이 며칠 째 보이지 않는다.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기기에는 거주 기간이 긴 녀석인데, 어쩌면 로드 킬을 당했거나 혹은 산 밑 어딘가, 차바퀴 어딘가에 누워있는 것은 아닌지.

고양이는 죽을 때가 되면 집을 떠난다. 편안한 곳,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몸을 돌보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그러다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블랙에게 그런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죽음을 자주 접하는 일상이지만 이렇게 기별 없이 떠나는 것은 겪을 때마다 어렵다. 그래서 더 애써 블랙을 찾았다. 오래된 아파트, 작은 평수가 아래, 위, 양 옆으로 블록처럼 연결된 아파트 1층 베란다 아래로 구석진 공간이 있다. 노인들은 그곳을 창고처럼 쓰기도 하고 아파트 실외기를 내놓기도 하는데,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동물들이 자기 집 삼아 자주 드나든다. 달궈진 실외기의 뜨끈함과 내려앉는 서늘한 그늘을 그들은 알고 있다.

912동 화단 앞 감나무 밑을 지날 때였다. 처음 시작은 작은 흐느낌이었다. 그것은 마치 아기 울음소리, 고양이 울음소리와도 비슷해서 또 다른 길고양이가 나타났나 싶어 가까이 다가갔는데 소리는 점차 커지더니 휘몰아치듯 쏟아져내렸다.

308호. 한참을 그 아래에서 내리는 울음소리를 맞으며 서 있었다.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저 사람은, 나른함이 먼지처럼 부유하는 일요일 오후에 폭포수 같은 울음을 쏟아내는가.

벨을 눌러볼까, 도움이 필요한 건 아닐까, 고민하며 계단을 올랐다.

분명 308호였는데, 회색빛 철문 앞에 서자 모든 것이 잠잠해졌다. 소나기가 내린 후, 바삭하게 마른하늘 아래 서 있는 고요와 적막.

여름이 끝나가고 있었다. 매미는 끝을 향해 있는 힘을 다해 울고 있고, 블랙은 자취를 감춘 여름.



우유 배달 공작 일지 #2.


그 사람이었다. 경비아저씨가 고양이를 구해달라고 급하게 불러 찾아간 곳에 있었던 사람. 흰색 4륜 구동 SUV 차량  바퀴 휠 속에서 갈색 줄무늬를 한 새끼 고양이가 울고 있었고, 차주와 함께 그 사람이 자동차 바퀴 쪽으로 허리를 깊숙이 숙이고 고양이에게 무어라 말을 걸고 있었다. 자동차 바퀴 휠은 실외기처럼 따뜻하기도 하고 차갑기도 해 특히나 새끼 고양이들이 좋아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휠 사이에 들어간 고양이가 놀라서 보닛 속에 숨어버리면 그때부터는 일이 복잡해진다. 장갑을 껴고 고양이의 머리 위로 손을 넣었다. 대게 고양이들이 자란 정도를 가늠하는 척도이기도 한데, 머리 위에 물체에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아직 어미와 떨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끼 고양이다.

이런 설명을 이어가는데, 그 사람 입에서 떨어진 말이 원을 그렸다.


‘왜 울었니’


고양이는 무사히 휠에서 케이지로 장소를 옮겼다.


‘휴우, 308호 아가씨 아니었으면 큰 일 날 뻔했네요. 나는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잘 안들 리더만. 세상에 생명 하나 구하고 사는 게 쉬운 일이 아니야. 내 목숨 하나 잘 간수하기도 쉬운 게 아닌데 말이에요. 큰일 했어요. 고마워요, 수의사 선생님.’


경비아저씨는 나와 그 사람에게 연신 인사를 건넸다.


‘고양이 키우시나 봐요?’

‘아니, 나는 뭘 안 키우는데. 그게 그렇잖소.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도 죽는 것도 내 뜻은 아닌데, 그래도 누가 이렇게 손 잡아주고 내밀어주면 그 생명이 다만 얼마라도 더 온기가 이어질 수 있다는 게, 나이 먹을수록 참 귀하고 신기하고 그렇습디다. 다들 길고양이들 귀찮아하는데, 그들이 그렇게 태어난 것도 세상 인연이겠지. 우리가 뭐라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은가 싶어요.’

‘그러게요. 저분이 말 안 해주셨으면 제가 그냥 차를 뺐을 텐데. 아유, 생각만 해도.’

차주는 미간을 찌푸리며 만약을 상상하는 듯했다.

우리가 구한 생명. 갈색 줄무늬 고양이를 데리고 나는 그 사람과 함께 병원으로 갔다.


- 고양이나 개 키워보신 적 있어요?

- 아뇨. 저는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어서 가까이 잘 못 가요. 그리고 좀 무서워요. 눈이 너무 반짝여서요. 특히 밤에.

- 그런데 어떻게 옆에 가셨어요? 보통 그런 분들은 들어도 모른 척하고 가던데.

- 고양이가 울더라고요.


그런데 왜 우느냐 물었는지, 나는 되묻지 못했다. 그날 오후, 나도 그 사람이 울어서 그 집 문 앞에 서있었다.


- 고양이 알레르기는 털이 아니라 침 때문이에요. 아무래도 털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여기저기 고양이가 묻히고 다니는 침에서 알레르기 반응이 오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실 안 만지는 게 가장 좋기도 하죠. 고양이는 깨끗한 동물이긴 하지만 자기 침으로 자기를 닦아내기 때문에 만지면 즉각적으로 반응이 오거든요. 자기 몸에서 나온 것들로 자신을 방어하는 셈이기도 하죠. 사람은 자꾸 자신 외 것들로 자기를 방어하려 하지만요. 그렇게 보면 가장 깨끗하고 아낌없는 동물 아닌가 싶어요.


당신은 왜 울었냐고, 스콜을 만나 오도 가도 못하게 된 나는 그날부터 그게 참 궁금했다고 말하지 못하고 고양이 이야기만 했다.


우유 배달 공작 일지 #3.


갈색 줄무늬 녀석에게 우유를 따라주는 날 보며 그 사람이 물었다.


- 고양이는 정말 우유를 좋아하나요?

- 영화에서 그렇게 많이 나왔지만, 사실 고양이는 사람 우유를 먹으면 안 돼요. 특히 어린 고양이는요. 유당을 분해하는 효소가 사람보다도 적기 때문에 잘못하면 장출혈로 죽을 수도 있거든요.

- 아기들이 배앓이하는 거랑 비슷하네요.

- 저도 어릴 때 많이 했어요. 하도 울어대서 동네에서 다 알 정도였대요. 저 집 애 분유 먹을 시간이 되었구나, 하고요.

- 난 안 울었다는데. 흰 우유를 접해보지 못해서 그런가? 먹어 본 놈이 울 줄도 아는 뭐 그런 건가 봐요.


마지막 남은 우유 한 방울까지 날름거려 우유병을 비우고 사료 그릇을 핥는 고양이에게 이유식 한 스푼을 덜어주었다. 어미가 떠난지는 꽤 된 모양이다. 스스로 몸을 닦을 힘도 없어  털 여기저기가 듬성듬성하다. 피부병에서 회복되려면 두어 달은 걸릴 것 같다.

그 사람은 고양이가 이유식 먹는 걸 보다 돌아갔다.

먹어보지 못해 울지 못하는 사람. 한껏 물이 고일 때까지 기다렸다 터뜨리는 사람.

여름 낮에 마주치는 스콜은 지열의 후끈함을 끌어올려 공기를 더 습하게 할 뿐이다. 물기를 가득 머금기만 한 마음은 공기 중으로 흩어질 수도 없고, 바닥으로 꺼질 수도 없다.


우유 배달 공작 일지 #4.


308호 문고리에 우유를 걸어 둔 지 30일이 지났다. 가끔 편의점에서, 마을 버스정류장에서 그 사람을 마주치지만 별다른 티를 낼 수 없다. 우유는 잘 드시냐고(울음은 좀 생겼냐고) 묻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인사한다.

갈색 줄무늬에게는 ‘라잉’이란 이름을 지어줬다. 동물 병원에 자주 들르는 젊은 부부가 곧 입양할 것 같다. 울어서 제 몸을 살렸던 녀석 답게 애교 또한 삶의 기술임을 알았는지, 아니면 제 살 곳의 집사를 선택한 모양인지 젊은 부부가 올 때마다 갸르릉 거리며 몸을 비빈다. 그렇다고 개들처럼 배를 보이고 눕거나 만져달라고 채근하는 것은 아니다. 라잉은 젊은 부부 옆으로 걸어가 제 옆구리를 상대 다리에 슬쩍 스치며 지나간다.  

고양이가 제 몸을 비비는 것은 친밀함의 표시다. 생각보다 곁을 안주는 동물이 와서 몸을 비빈다는 것은 당신을 인정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삶 속으로 발을 디딜 때, 그의 인정을 바라고 징표를 받고자 하는 사람에게 나도 같은 제스처를 취하고 싶다.  슬쩍, 어깨를 맞대며 찰나의 온기를 나누는 것으로.

과연, 소화가 잘되는 우유는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인가.


우유 배달 공작 일지 #5.


치얼스.


초록색 하이네켄과 퇴근길 IPA를 나란히 간이 테이블에 올려두고 조용히 외친다. 치얼스.

당신의 하루와 나의 하루에.

그 사람과 마주 앉았다. 캔을 부딪히다 손등을 스쳤다. 찰나의 온기를 얻었다.

짙은 청색의 가을밤이 흘러간다. 달이 밝다.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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