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피아니스트의 마지막 인터뷰>를 보고 온 날
현대음악에 BTS가 있다면 클래식에는 BCS가 있다. (산책 피셜)
며칠 전 영화 한 편 보고 나와서 오늘도 이렇게 하루 종일 유튜브를 뒤지며 베토벤(바흐까지)과 쇼팽, 슈만의 (세계 각국 유명 연주가들의 각기 다른 연주) 곡을 듣고 있다.
출처:판시네마
<피아니스트의 마지막 인터뷰>를 보고 나왔다. 겨울을 앞에 둔 11월 마지막 월요일 한낮의 공기는 차갑다 못해 시렸고, 하늘은 그만큼 파랐다. 마스크를 쓴 얼굴 안으로 뜨거운 김이 올랐다. 뿌옇게 흐려진 안경 알 만큼 눈동자 역시 물에 잠겼다. 세계적인 거장, 노년의 피아니스트 헨리가 다시 무대 위에 서고 쏟아지는 음들이 마치 그의 나이만큼 묶여 터져 나오는 시간 같아서, 비애와 사랑, 환희와 슬픔, 상실과 희망이 뒤섞여 한 줄기로 내리는 폭포 같은 시간들이 어려웠다.
슈만이 그의 10대에 의지할 곳이었다면 은퇴를 선언해도 의아할 일 없는 지금 그는 베토벤과 바흐, 쇼팽과 슈만에 의지한다. 음표를 따라 묵묵히 걷는 일일 뿐이라고 하지만, 그는 알게 되었다. 서 있어야 할 곳, 해야 할 일을.
젊음과 늙음 사이에 무엇이 있나, 음악이 있다.
상실과 환희, 기쁨과 슬픔, 비통과 사랑 사이에도 음악이 있다.
세상으로 다시 걸어 나아가게 하는 힘, 재능을 가졌기 때문에 감당해야 한다고 말하기엔 잔인하기까지 한 현실이지만, 피아니스트라는 존재로서 헨리는 끈이고, 검은건반이다. 나와 당신, 시간과 시간을 잇는 단단하고 아름다운 끈.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동안 눈물이 났던 것은 살아온 세월만큼 감당해야 하는 비애가 뭉치로 느껴져서였다. 그가 겪은 숱한 고통의 시간들에 갈채가 있었고,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행복한 하나의 기억’으로 잊고 무대 위에 설 때, 눈부신 고통과 눈물 나는 환희가 함께 걸어 나왔다. 끝과 시작이 하나인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코다, 그리고 다시.
음악이 어떻게 삶을 위로하는가. 니체는 '음악이 없다면 인생은 실수일 뿐'이라고 단언했지만, 음악이 없다면 내가 눈물을 흘릴 수 있는 날도 그만큼 줄었겠단 생각이 든다.
오래 전 부터 자리에 있었던 바위 같은 음악, 세월을 보내는 동안 누군가에게 위로와 기쁨, 벅참과 아름다움, 슬픔과 평안이었을 음악이 시간을 걷는다. 끝과 시작, 경계없이 서 있는 우리들 사이를, 우리들 곁을.
영화의 원제는 coda. 악곡이나 악장의 종결 부를 뜻하는 음악 용어다.
베토벤 소나타 No.23 in F minor, op.57 "Appassionata" , 손민수 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