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다, 2

시간을 짓다

by 산책

헤어지고 계절이 두 번 바뀌었다. 아니 두 번 반이라고 해야 하나. 겨울과 봄 사이, 그 어느 쯤 이었다. 계절이 달을 표시하는 숫자처럼 딱 맞아 떨어지는 게 아니라고, 그때에 그녀가 말했다. 지금은 겨울과 봄 사이 어디쯤이라고. 손에 모아 쬐고 싶을 만큼 햇살이 따뜻하지만, 창밖으로 내 민 손끝이 아리게 시린 계절. 봄을 바라고 산 얇은 원피스 위에 아직 세탁소에 맡기지 못한 겨울 외투를 걸치는 계절이라고. 마치 드라마 속 배우들의 계절과 어긋난 옷차림 에 묻어나오는 하얀 입김을 보는 것처럼. 우리는 그 계절에 헤어졌다. 사랑 역시 그렇게 계절에 어색한 옷차림을 한 모양새였다. 그건 사랑이었나, 나는 그녀를 사랑한 것인가 아니면 그녀의 언어를 사랑한 것인가. 이제는 그 구별조차 모호해졌다. 그녀와 헤어지고 많은 시간 많은 밤 많은 술잔과 함께 자주 우리의 연애의 시간을 되새김질했지만 하면 할수록 굵은 덩어리가 쪼개지고 쪼개져 결국 작은 입자조차 남지 않게 되었다. 나중엔 그녀의 말과 그녀를 분리하는 게 어리석다는 결론이 났다. 분명 나에게 그 둘은 다른 것이었는데 생각이 생각을 낳다가 결국 이렇게 유산되는 것이다. 그녀의 어느 말들이 그렇게 남았다. 핏덩이는 떠내려가도 흔적은 남는 것처럼.


여의도부터 올림픽 도로를 지나 세 개의 작고 큰 시를 가로 지르는 빨간 광역 버스를 탄 건 그녀와 헤어진 이후 처음이었다. 버스는 일종의 상징이었다. 운행 구간이 길어 한 시간에 한 대 다닐까 말까 하는 버스를 타고 그녀를 바래다주던 길. 버스는 나와 그녀의, 한때 우리라고 지칭했던 그 '우리'의 공간이었다. 겨울에는 강한 히터 열기에 창문 없는 버스 안에서 멀미를 하곤 했지만. 겨울 햇살을 놓치기 싫다며 창문에 머리를 기댔던 그녀의 말이 맨 뒤에서 세 번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아니 거기에만 남아 있던 건 아니었다. 그 자리를 부러 피해 앉은 뒷문 앞자리에도 그녀가 있었다. 기억 속 버스 커튼의 노랑은 황금빛이었는데 계절이 두 번 반 바뀌고 다시 탄 버스 커튼은 옅은 노랑이었지만, 거기에 그녀의 말은 바래 지 않고 있었다.


'아깝지 않아? 겨울 햇살이. 천 조각으로 가리기에는, 너무 아까워.'


햇살까지 소중했던 그녀에게 나는 왜 등을 돌려야 하는 사람이었을까. 그녀의 계절은 겨울, 나의 계절은 봄 이어서였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걷어냈던 차창 커튼을 다시 쳤다. 아직은 뜨거운 햇살, 나는 그게 귀한 줄 몰랐던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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